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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영 기자]
▲ 땅끝마을 제1조망점 땅끝마을을 벗어난 언덕 첫머리에 제1조망점이 있다. 해남 땅끝마을에 왔음을 알리는 표식이기도 하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땅끝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땅끝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온통 산지로 형성된 땅끝에 삶의 터가 허락된 소중한 땅이 있스탁시티
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의 땅끝을 지키는 땅끝마을이 있다는 것은 보기 드문 행운이다. 다른 나라의 많은 경우 땅끝은 자연지형이 막고 있어 마을이 같이 있기가 쉽지 않다. 비근하게 아프리카 대륙의 테이블마운틴, 유럽 대륙의 호카곳은 마을에서 10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지구의 땅끝인 남미 대륙의 땅끝은 접근할 수조차 없대한화섬 주식
어 인접한 최남단 도시(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나 칠레 푸에르토윌리암스)를 땅끝으로 삼고 있다. 우수아이아는 19세기 중엽, 푸에르토윌리암스는 1953년에 취락이 형성돼 지역 역사가 100년 대에 그친다.
우리의 땅끝과 함께 있는 땅끝마을은 약 400여 년 전 김해김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며 16대를 이어왔다. 그런데 미황사 사적주식사기
비엔 신라 때인 749년에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사자포는 땅끝마을 앞바다를 지칭하는 것이어서 이때부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한반도의 땅끝은 땅끝을 지킨 수백 천년 된 마을과 함께 한, 그 자체로 삶이 숨쉬는 살아있는 지역 역사이며, 단 몇 시간이 아니라 1년 365일이라도 기거하며 땅끝을 느끼고 새 차트분석
시작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땅끝의 소중한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땅끝마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조망포인트
해남의 해안을 두르고 있는 77번 국도인 땅끝해안로가 땅끝마을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해남반도 서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땅끝해안로로 갈두산을 넘어야 하고 동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땅끝해안로로 연포산 기슭의 바릴게임 정보
닷가를 따라 가야 한다.
동쪽 오른편으로 올라선 첫머리에 제1조망점이자 포토존이 있다. 언덕 위에서 땅끝마을과 앞바다를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포토포인트 조형물에 적힌 지역 사투리 "여그가 땅끝, 해남이여라"라는 말이 정겨우면서도 떠나는 아쉬움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한다.
날은 흐려도 길가의 땅끝 남해안의 풍경이 유난히 청아하다. 땅끝마을에서 길을 따라 1km 남짓 되는 곳에 제2조망점 겸 쉼터가 있다. 땅끝마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땅끝에서 외로이 우리의 땅끝을 지키고 있는 마을을 눈에 담으며 '고맙다'고, '잘있으라'고 마음 속 작별 인사를 전해 본다.
▲ 해남 땅끝마을 제2조망포인트에서 땅끝마을이 온전히 내려다 보인다. 사자봉 아래 포근히 안긴 땅끝마을과 땅끝항의 모습을 보는 순간 벌써 그리움이 느껴진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숨겨둔 남쪽 바다 끝 마을들
왼편으로 산 끝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땅끝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움푹 포켓비치처럼 들어가 땅이 허락된 곳에 조성된 마을이 나타난다. 통호리이다. 앞쪽만 제외하곤 산이 마을을 깊이 안고 있는 형상으로, 마치 속을 파놓은 나무 속에 마을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름도 통桶에 바다 포浦를 붙여 원래 이름은 통포리였다. 일제 때 '통호'桶湖로 바뀌어 지금은 통호리이다.
▲ 통호리로 가는 길 해안 절벽에 남쪽 끝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 쉼터가 마련돼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통호리는 사구마을과 통호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통호마을은 18세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이전 신라 말에 제주 양씨가 처음 통호마을을 열었다는 구전도 전해온다. 해드렌드 하나를 넘어서면 사구마을이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1592년) 창녕조씨를 입향조로 삼는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쉽게 닿을 수 없던 남쪽 바다 끝에서 척박한 터를 일구며 삶을 가꾸어 온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민족의 삶의 의지와 그 저력을 전달받는다.
최남단 땅끝 바다에 손때 묻지 않은 해변
사구마을 앞 해변엔 사구미 해수욕장이 있다. 교통과 편의시설이 부족해 덜 알려졌지만 자연 여건으로만 보자면 최고로 손꼽을 만하다. 축대나 인공 조성물이 없어 해변 뒤로는 해안사구가 잘 발달해 있고 넓은 곰솔밭이 있는, 시원한 자연 그늘과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존된 해변이다.
▲ 사구미해변 뒤로 곰솔밭이 넓고 고운 모래, 완만한 경사, 투명한 바다의 청정 해변이 돋보이는 숨겨진 청정 해변이다.(올2월 촬영)
ⓒ (사)사람길걷기협회
백사장은 유난히 고은 모래로 반짝이고 해변의 완만한 경사와 바닥이 보이는 맑은 바다는 이만한 아름다운 해변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앞바다에 떠 있는 백일도, 흑일도 등의 섬으로 아늑하기까지 하다. 해 질 무렵엔 땅끝 마지막 봉우리인 사자봉으로 해가 지며 땅끝 바다와 다도해의 작은 섬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도 연출한다.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아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해변이자 자연 조건을 모두 갖춘 천혜의 해변이다. 청정 자연의 바다 풍광 속에서 한적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야영지나 휴가지로 딱인 것 같다.
국토종주 단원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사구미 해변을 보자 신이 났다. 만조 때라 곰솔밭 둔덕 아래의 비탈진 해변에서도 저절로 붕붕 뛰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에너지엔 체력이 문제일 뿐 나이가 없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지만 체력이 안 받쳐줘 즐기지 못하는 것이지 국토종주를 할 만큼 체력이 된다면 순간순간이 즐길 투성이이다.
그러나, 이제 점재를 넘어야 하는데 과연 힘든 것도 즐길 수 있을지 약간은 궁금해진다.
▲ 사구미해변에 도착해 땅끝 최남단 바다를 배경으로 점프샷을 찍었다.
ⓒ (사)사람길걷기협
▲ 땅끝마을 제1조망점 땅끝마을을 벗어난 언덕 첫머리에 제1조망점이 있다. 해남 땅끝마을에 왔음을 알리는 표식이기도 하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땅끝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땅끝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온통 산지로 형성된 땅끝에 삶의 터가 허락된 소중한 땅이 있스탁시티
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의 땅끝을 지키는 땅끝마을이 있다는 것은 보기 드문 행운이다. 다른 나라의 많은 경우 땅끝은 자연지형이 막고 있어 마을이 같이 있기가 쉽지 않다. 비근하게 아프리카 대륙의 테이블마운틴, 유럽 대륙의 호카곳은 마을에서 10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 지구의 땅끝인 남미 대륙의 땅끝은 접근할 수조차 없대한화섬 주식
어 인접한 최남단 도시(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나 칠레 푸에르토윌리암스)를 땅끝으로 삼고 있다. 우수아이아는 19세기 중엽, 푸에르토윌리암스는 1953년에 취락이 형성돼 지역 역사가 100년 대에 그친다.
우리의 땅끝과 함께 있는 땅끝마을은 약 400여 년 전 김해김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터를 잡고 살며 16대를 이어왔다. 그런데 미황사 사적주식사기
비엔 신라 때인 749년에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닿았다는 기록이 있다. 사자포는 땅끝마을 앞바다를 지칭하는 것이어서 이때부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한반도의 땅끝은 땅끝을 지킨 수백 천년 된 마을과 함께 한, 그 자체로 삶이 숨쉬는 살아있는 지역 역사이며, 단 몇 시간이 아니라 1년 365일이라도 기거하며 땅끝을 느끼고 새 차트분석
시작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땅끝의 소중한 장소가 되어주고 있다.
땅끝마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조망포인트
해남의 해안을 두르고 있는 77번 국도인 땅끝해안로가 땅끝마을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해남반도 서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땅끝해안로로 갈두산을 넘어야 하고 동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땅끝해안로로 연포산 기슭의 바릴게임 정보
닷가를 따라 가야 한다.
동쪽 오른편으로 올라선 첫머리에 제1조망점이자 포토존이 있다. 언덕 위에서 땅끝마을과 앞바다를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포토포인트 조형물에 적힌 지역 사투리 "여그가 땅끝, 해남이여라"라는 말이 정겨우면서도 떠나는 아쉬움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한다.
날은 흐려도 길가의 땅끝 남해안의 풍경이 유난히 청아하다. 땅끝마을에서 길을 따라 1km 남짓 되는 곳에 제2조망점 겸 쉼터가 있다. 땅끝마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땅끝에서 외로이 우리의 땅끝을 지키고 있는 마을을 눈에 담으며 '고맙다'고, '잘있으라'고 마음 속 작별 인사를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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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람길걷기협회
숨겨둔 남쪽 바다 끝 마을들
왼편으로 산 끝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땅끝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움푹 포켓비치처럼 들어가 땅이 허락된 곳에 조성된 마을이 나타난다. 통호리이다. 앞쪽만 제외하곤 산이 마을을 깊이 안고 있는 형상으로, 마치 속을 파놓은 나무 속에 마을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름도 통桶에 바다 포浦를 붙여 원래 이름은 통포리였다. 일제 때 '통호'桶湖로 바뀌어 지금은 통호리이다.
▲ 통호리로 가는 길 해안 절벽에 남쪽 끝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 쉼터가 마련돼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통호리는 사구마을과 통호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통호마을은 18세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이전 신라 말에 제주 양씨가 처음 통호마을을 열었다는 구전도 전해온다. 해드렌드 하나를 넘어서면 사구마을이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온(1592년) 창녕조씨를 입향조로 삼는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쉽게 닿을 수 없던 남쪽 바다 끝에서 척박한 터를 일구며 삶을 가꾸어 온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민족의 삶의 의지와 그 저력을 전달받는다.
최남단 땅끝 바다에 손때 묻지 않은 해변
사구마을 앞 해변엔 사구미 해수욕장이 있다. 교통과 편의시설이 부족해 덜 알려졌지만 자연 여건으로만 보자면 최고로 손꼽을 만하다. 축대나 인공 조성물이 없어 해변 뒤로는 해안사구가 잘 발달해 있고 넓은 곰솔밭이 있는, 시원한 자연 그늘과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존된 해변이다.
▲ 사구미해변 뒤로 곰솔밭이 넓고 고운 모래, 완만한 경사, 투명한 바다의 청정 해변이 돋보이는 숨겨진 청정 해변이다.(올2월 촬영)
ⓒ (사)사람길걷기협회
백사장은 유난히 고은 모래로 반짝이고 해변의 완만한 경사와 바닥이 보이는 맑은 바다는 이만한 아름다운 해변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앞바다에 떠 있는 백일도, 흑일도 등의 섬으로 아늑하기까지 하다. 해 질 무렵엔 땅끝 마지막 봉우리인 사자봉으로 해가 지며 땅끝 바다와 다도해의 작은 섬들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도 연출한다.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아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해변이자 자연 조건을 모두 갖춘 천혜의 해변이다. 청정 자연의 바다 풍광 속에서 한적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야영지나 휴가지로 딱인 것 같다.
국토종주 단원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사구미 해변을 보자 신이 났다. 만조 때라 곰솔밭 둔덕 아래의 비탈진 해변에서도 저절로 붕붕 뛰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에너지엔 체력이 문제일 뿐 나이가 없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지만 체력이 안 받쳐줘 즐기지 못하는 것이지 국토종주를 할 만큼 체력이 된다면 순간순간이 즐길 투성이이다.
그러나, 이제 점재를 넘어야 하는데 과연 힘든 것도 즐길 수 있을지 약간은 궁금해진다.
▲ 사구미해변에 도착해 땅끝 최남단 바다를 배경으로 점프샷을 찍었다.
ⓒ (사)사람길걷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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