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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22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들이 깃발과 응원봉을 든 채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언니 오늘 조심 ㅋ”


메신저에 첨부된 사진을 눌러 이리저리 확대해본다. 한 종이신문 귀퉁이에 실린 ‘오늘의 운세’가 찍힌 사진이다. 오늘 나의 운세에는 ‘사소한 일로 다투면 손해 황금성나비
보니 참아야’라고 적혀 있다. 며칠 전에는 ‘품위 유지하고 고행 참으면 길운 온다’ ‘현인 말 받들어 바르게 처신해야 길하다’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가 일하는 오래된 미용실에는 여전히 종이신문이 배달된다. 매일 종이신문을 읽지만 이전까지는 주의 깊게 본 적 없던 그 지면을 나황금성게임설명
는 친구 덕분에 유심히 보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 부분을 굳이 찍어 보내는 친구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모습에는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오늘의 운세’를 배달받은 친구 몇몇과 서로의 운세를 살피며 대화를 나누는 아침의 잠깐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들과 이야기 윌클럽
나누면서 혹시 모를 불운에 함께 대비하고, 다가올 행운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태도를 배운다.




한 일간지의 ‘오늘의 운세’ 코너. ⓒ시사IN 장일호



띠·혈액형·별자리·MBTI현대건설 주식
따위를 ‘비과학’으로 요약하긴 쉽다. 하지만 나는 ‘과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삶임을 이제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같은 운세를 뽑더라도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운명은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간섭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와 무관하지 않은 우리의 운명은 개인의 의지 혹은 준비에 언제나 맞서며 역동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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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내야 하는 망가진 나라를 이해해보려고 애쓰던 남미의 한 소녀” 노나 페르난데스에게도 ‘나’의 삶은 ‘우리’와 별개일 수 없었다. 1971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그의 성장기는 악명 높은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대와 궤를 함께했다. “테러가 낯설지 않고 총소리에 민감하지 않은, 총격전 속에 성장”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 〈보이저〉는 독재의 역사 위에 개인의 삶을 겹쳐 읽으며 “개입하지 않은 채 관찰하고 기록하는 호기심 많은 드론의 소명”을 따라간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기억을 이어가려는 아들, 그 사이에서 노나 페르난데스는 기억을 연결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아름답고 서늘한 문장으로 ‘기억의 별자리’를 그려낸다.


별자리에서 운명을 읽어내려는 오래된 인간의 습관을 과학은 때로 비웃는다. “어떤 고대인이 임의로 이은 별들의 집합이 특정한 의미를 지닌 채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천문학자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이야기에도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별의 위치를 잊지 않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들려준 최초의 사람들처럼, 그들의 밤길을 인도한 별자리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오래도록 구전되어온 그 이야기들처럼, 부모와 조부모가 전해준 기억들은 우리가 세상의 어디에 있는지, 세상의 어디가 우리 자리인지 알려준다. 우리가 가야 할 경로의 출발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그저 잠시 지나치는 정거장일 뿐”

노나 페르난데스는 HD89353이라 이름 붙은 별의 대모를 자처한다. 마리오 아르구에예스 토로의 별이다. 1973년 10월19일 피노체트 정권이 군사 쿠데타 직후 조직한 군 특수부대 카라반에 의해 사막에서 처형당한 희생자 중 한 명이다. 마리오는 “다르게 생각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매일 아침 그의 시신 일부라도 찾기 위해 사막을 나섰던 아내 비올레타는 자신을 “시공간의 괄호 속에 갇혀 멈춰 있었다”라고 소개한다. “나는 마흔이 된 것도 몰랐어요. 쉰이 되었을 때도. 예순이 되었을 때도, 일흔이 되었을 때도 깨닫지 못했어요. (···) 삶이 내 주변에서 흘러갔지만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어요.”


별에 대해 묻는 어린 시절 페르난데스에게 어머니는 “먼 밤하늘에는 거울로 우리와 소통하려는 작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라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었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여전히 그 이야기를 믿는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여기 있답니다. 우리는 작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는 목소리를, “과거의 빛이 현재에 자리 잡아 무시무시한 어둠을 등대처럼 밝혀주고” 있음을 믿는다. 나는 이 믿음을 그저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나는 마리오의 이름 옆에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이어 쓸 수 있다. 생생한 현재로 기억해야 할 이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안다. 또 “배제된 이름들,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 집단들, 숨겨진 참사들, 제거된 의견들. (···)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행주를 던지며 비속어를 아끼지 않았던 노나 페르난데스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동시에 제도의 힘을 믿는 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국민투표가 정당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는 것처럼 옷을 갖춰” 입고 걷기도 힘든 몸을 움직여 투표장으로 향했다. 17년 폭정 끝에 어렵게 얻어낸 제도적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노나 페르난데스의 아들 D는 이렇게 쓴다. “(당시의) ‘반대 투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돌이켜본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반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기억하려는 것. 우리가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독재는 ‘겉으로’ 끝났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가담한 자들은 여전히 칠레 사회 유력 인사이며, 군부가 만든 헌법은 아직 굳건하다. 독재는 자주 옹호와 추억의 대상으로 소환된다. 오늘날 D는 자신의 세대가 제대로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치러야 할 ‘누락의 대가’를 두려워한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피노체트 집권 당시 정치적 이유로 살해된 이는 3200여 명,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는 4만여 명으로 알려졌다. 약 20만명이 추방당하거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공식’에 기록되지 않은 목숨과 그에 얽힌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칠레의 역사가 하나도 낯설지 않다. 노나 페르난데스의 기억은 이 같은 역사의 기록이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서 써 내려간다. “수첩에 적힌 수수께끼 같은 꿈, 낡은 쿠션에 남은 흰머리,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코골이” 같은 순간을 통과하며 과거를 오늘과 잇는다.





〈보이저〉는 역사를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을 우리에게 선보이는 책이다. “책이라는 별자리 지도에서, 그 지식과 학문, 내용과 이미지, 빛과 그림자의 계주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로 얽혀 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시작된 이 여정에서 우리는 그저 잠시 지나치는 정거장일 뿐”임을 가르친다. 별이 홀로 반짝이지 않고 별무리를 이루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그런 이야기. 지난겨울 비상계엄을 마주한 우리가 길 위에 새겼던 빛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덕분에 얻은 사소한 하루들을 ‘오늘의 운세’에 띄워 보낼 수 있다. 내일의 운세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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