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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전문가가 답합니다.

오늘(3일)부터 최장 10일의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이번 명절은 연휴가 긴 만큼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함께 만나는 건 좋지만 남편의 가족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분들 있지 않으신가요? 실제 가족 호칭엔 성별과 나이에 따라 불균형적인 용어가 많습니다. 부부가 상대방의 동생을 부르는 호칭이 대표적입니 제2금융권 이자 다. 남편의 남동생은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라 높여 부르지만, 아내의 남동생은 ‘처남’, 여동생은 ‘처제’라고 높이지 않죠. 남성이 여성보다 서열이 높다는 전제가 깔린 차별적인 표현입니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 가족에게 ‘∼님’을 붙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 남편의 매제(여동생의 남편)는 ‘서방님’이라 불러야 하죠. ‘아 원금균등상환vs원리금균등상환 주버님’,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여성을 부르는 호칭은 뭘까요? 아주버님한텐 ‘제수씨’로, 서방님한텐 ‘처남댁’이나 ‘아주머니’라고 불립니다. 기혼 여성이 ‘시댁’에서 거의 유일하게 ‘~님’이란 존칭을 듣는 사람은 또 다른 며느리, 남동생의 아내(동서)에게 ‘형님’이란 호칭을 들을 때뿐이죠.
불평등한 호칭은 조선시대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에 연봉 실수령액표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호칭은 단순히 누굴 부르는 말이 아닌, 위계와 신분을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였죠. 도련님은 비혼 남성을 높여 부른 ‘도령’에 ‘님’을 붙인 말입니다. 과거 계급 사회에서 양반 집안 아들을 귀하게 부르는 말로 쓰였습니다. 아가씨도 지체 높은 양반 집안의 딸을 부르는 ‘아씨’에서 유래했죠. 도련님과 아씨라고 꼬박꼬박 부르던 사람들은 찜머니 집안의 아랫사람, 하인들이었고요. 하인이 사라진 현대사회에 한국의 며느리들만 그 말을 대물림해 쓰고 있는 겁니다.
호칭의 어원에서도 과거 차별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며느리’는 덧붙어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를 합친 말입니다. 남편에 딸려 기생하는 존재란 뜻이 담겨 있죠.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올케’는 ‘오라비의 만원대출 겨집(계집의 옛말)’에서 왔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성을 ‘집에 속한 사람’으로 한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 호칭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여성가족부의 가족 호칭 관련 설문 조사를 보면 응답자 약 98%가 성별에 따라 불균형적인 가족 호칭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남성도 불편한 건 마찬가집니다. 2017년 국립국어원 조사에선 기혼 남성 30%가 아내의 오빠·언니가 본인보다 어릴 경우 호칭이 곤란하다고 응답했고요.
정부에서도 조금씩 불균형적인 가족 호칭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결혼·출산·육아와 관련해 바꿔야 할 용어에도 가족 호칭이 포함됐습니다. 2020년 국립국어원은 가족 호칭의 변화를 담은 언어 예절 안내서를 냈는데요. 공통으로 ‘도련님·아가씨·처남·처제’ 대신 이름에 ‘○○씨’를 붙여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바꿔볼 순 없을까요? 책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를 쓴 배윤민정 작가는 지난 2018년 ‘시댁’에 평등한 가족 호칭을 부르자고 제안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호칭 투쟁’에 뛰어들게 됐다는데요. 왜 불편한 호칭에 침묵하면 안 되는지, 그럼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The 1] ‘시댁’에 호칭을 바꿔보자고 제안했을 때 반응은 어땠어요?
배윤민정 작가: 처음엔 호칭을 바꾸는 제안이 아주 사소한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잘하면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바꿔보자고 생각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형이 제안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였어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의견을 내고 무언가 제안한다는 걸 굉장히 무례한 태도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남편 형의 아내도 마찬가지였고요. 불합리한 호칭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보기보단 일종의 가족 내 파워게임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호칭 변경 제안에 동의하면 자신은 제게 지는 사람이 되는 거고 반대로 저는 이기는 사람이 되는 식으로요. 이렇게 문제에 접근하니 갈등을 풀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The 2] ‘호칭 투쟁’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뭐였나요?
배윤민정 작가: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1인 시위도 하면서 인터넷 댓글을 보게 됐습니다. 공통적인 말은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집착하냐’였어요. 아이러니한 건, 그러면서도 ‘호칭을 바꾸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이중적인 반응을 보인단 사실이었죠. 아무것도 아닌데 바꾸면 안 된다니, ‘호칭이 대체 뭘까’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긍정적인 반응도 많았습니다. 당시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란 여성단체 누리집에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원고 일부를 연재했거든요. 그때 굉장히 많은 분이 호칭 문제에 공감한다는 말을 메일이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보내줬어요. 본인들도 호칭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호칭을 바꿔보려고 제안한, 저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도 있었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상황이 벌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충격적이면서도 ‘얼마나 이런 이야기를 할 창구가 없으면 만난 적도 없는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보낼까’란 생각이 들어 슬펐어요.



가족 호칭 체계도


[The 3] 호칭 중에 가장 싫었던 건 뭐예요?
배윤민정 작가: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 아가씨... 하나를 꼽긴 어렵네요. 특정 호칭 하나가 문제라기보단 한국 가족 문화의 남성 중심 위계 서열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호칭들도 굉장히 불편했지만, 남편 형의 아이에게 저를 ‘작은 엄마’라고 부르게 한 것도 껄끄러웠어요. 한국에선 ‘큰아버지’, ‘큰어머니’란 호칭을 아버지의 가족을 부를 때 쓰잖아요. 반대로 어머니의 가족은 ‘외삼촌’, ‘외숙모’라고 하죠. 같은 아버지의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의 형은 ‘큰아버지라’ 불리는데, 아버지의 누나는 ‘고모’라 불리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이런 가족 호칭 전반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계기가 있어요. 결혼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할 때입니다. 책에 실린 그림을 문장으로 설명하는 일을 맡았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책에서 게임과 노래로 가족 호칭 체계를 가르치는 대목이 나와요. 호칭 문제는 특정 단어를 쓰고 안 쓰고 문제가 아니라 한국 가족 문화 전반의 문제라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The 4] 그럼 가족끼리 서로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배윤민정 작가: 여성단체나 다양한 종류의 모임을 가보면 이름이나 별명을 그대로 부르는 문화가 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제 이름인 민정 또는 청오리(청개구리+오리)라는 별명으로 불려요. 이렇게 부르면 나이, 학력이 드러나지 않거든요. ‘가족 안에선 왜 이렇게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수평적으로 부르면 역할이 아닌 개인으로 만날 수 있고 가족의 이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칭을 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호칭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 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누구 한 사람이 호칭을 ‘이렇게 하자’고 정해버리면, 애초에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했던 취지랑 어긋나잖아요. 호칭 문제를 개선하는 건 위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건데 함께 얘기해 정하는 게 의미가 있죠. 호칭에 대해 주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냥 부르기 싫어서 아예 부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안타까운 것 같아요. 호칭을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The 5] 처음에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는 게 좋을까요?​
배윤민정 작가: 우선 가족이 어떤 분위기인지 살피는 게 좋아요. 이런 대화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라면 용기를 내 시도해보면 좋겠죠.
정말 대화가 안 통할 것 같다면 가족 밖에 있는 집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가깝게는 친구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 말이죠. 호칭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내가 이상하거나 예민하다’며 꾹 참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이야기가 흐를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이 하나 둘 모여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절대로 입을 꾹 다물지 말자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The 5]에 다 담지 못한 ‘가족 호칭의 뿌리와 대체어’를 휘클리에서 읽어보세요.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 구독하기. 검색창에 ‘휘클리’를 쳐보세요.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