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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현 ‘반전의 세계사’] 지중해 vs 대서양









    독일 포츠담에 위치한 프로이센 왕국의 상수시 궁전은 독일의 지중해 콤플렉스를 잘 보여준다. 궁전 외곽에 자리한 ‘폐허의 언덕’ 위에는 반원형 극장 벽, 토스카나식 원형 신전 등 고대 로마 유적을 모방해 1748년 축조된 가짜 로마 유적이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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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바이에른의 뮌헨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북해보다 지중해가 더 가깝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 뮌헨에서 독일 북해 해안까지의 직선거리가 650~700㎞ 정도이고, 지중해 연안의 가장 가까운 도시인 베네치아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05㎞이니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행간에는 그래서 뮌헨이 베를린이나 함부르크보다 더 문명화 정부학자금대출 된 도시라는 자부심이 숨어있다.

    북해보다 지중해에 더 가까운 게 자랑스럽다니, 의아하기도 하다. 대서양의 일부인 북해는 오늘날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북독일·덴마크·영국·노르웨이 등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2024년 기준 5만 달러에서 9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대학생 생활 의 부자 나라들이다. 대서양 저편의 미국까지 포함하면 우리가 흔히 ‘서양’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다.
    대서양 국가들에 비하면 지중해 국가들은 가난하다. 북아프리카 나라들을 빼고 유럽의 지중해 국가들만 쳐도 그렇다. 이탈리아·그리스·터키·스페인·포르투갈 등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가장 낮은 터키가 1만5000달러, 중간인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2 기업미소금융재단 만5000달러,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3만~3만5000달러에 달한다. 북해 나라들의 30~50%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다는 아니지만, 적다고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다.
    서유럽, 지중해 문명 납치해 ‘아리안화’ 뮌헨 사람들의 지중해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글거리는 태양과 바다, 포도주와 올리브, 풍부한 해산물과 신선한 오렌지 등 창업중소기업대출 지중해가 주는 감각적 즐거움이야 누구도 뿌리치기 어렵겠지만, 뮌헨 사람들의 지중해에 대한 동경에는 더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다. 1786~88년 독일의 문호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그 감동과 맞닿아 있다.
    괴테에게 로마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젊은 시절의 꿈이 실현된 곳’이었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본 괴테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감격했고, 이탈리아에서 접한 고대 로마 문명과 르네상스 예술에 무한한 경탄을 보냈다. 그의 『이탈리아 기행』은 ‘고귀한’ ‘위대한’ ‘장엄한’ ‘순수한’ ‘환상적인’ 등등의 형용사로 가득 차 있다.
    이탈리아에 대한 그의 찬탄은 르네상스 대가들의 진품을 직접 접한 피렌체나 로마, 베로나와 베네치아 등에 그치지 않고 이미 구조적 빈곤과 정치적 쇠락의 기운이 역력한 남부의 나폴리와 시칠리아 등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나폴리에서는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는 감탄사를 남기는가 하면, 시칠리아에서는 신비롭고 독특한 자연의 영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이고, 또한 모든 것이 새롭다’는 문장을 보면, 괴테는 이탈리아를 보기 전부터 미리 감동하려고 마음먹은 사람 같다. 괴테만 그랬던 건 아니다. 18세기 후반 서유럽 지식인들에게 이탈리아 여행은 고전 고대와 르네상스 문명의 ‘성지 순례’이자 교양인의 필수적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마치 후진국의 지식인이 선진국에 가서 문명의 세례를 받고 온다는 설정이었다.









    독일 포츠담에 위치한 프로이센 왕국의 상수시 궁전은 독일의 지중해 콤플렉스를 잘 보여준다. 궁전 외곽에 자리한 ‘폐허의 언덕’ 위에는 반원형 극장 벽, 토스카나식 원형 신전 등 고대 로마 유적을 모방해 1748년 축조된 가짜 로마 유적이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18세기 후반 변방 프로이센을 부강한 근대국가로 발전하게 한 계몽 전제 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의 상수시(Sanssouci) 궁전만큼 독일의 지중해 콤플렉스를 잘 보여주는 예도 드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궁전의 외곽에는 ‘폐허의 언덕(Ruinenberg)’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 위에는 고대 로마의 원주, 반원형 극장 벽, 토스카나식 원형 신전 등 큰 규모의 폐허가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데, 이는 1748년에 축조된 가짜 로마 유적이다.

    이 ‘짝퉁 유적’을 보면, 명품 로마에 대한 주변인의 욕망 같은 게 느껴져 안쓰럽다. 18세기 말까지 문명화된 유럽과 야만적 유럽의 구분은 이처럼 지중해 유럽 대 대서양 유럽이었다. 오늘날 대서양 연안의 서유럽 국가들과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국가들의 위상과는 격세지감이 있다.
    선진 문명의 이탈리아 지중해와 후진적이고 미개한 대서양 국가들의 위계가 뒤집힌 것은 19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19세기 후반 서유럽 여행자들의 카메라는 ‘낯선 남쪽’의 소박한 ‘미개함’을 부각하거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피사체를 포착했다. 이들의 렌즈에서 나폴리는 괴테가 감탄한 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광채를 잃고, 그람시가 탄식한 서발턴(subaltern)의 이탈리아로 전락했다.
    근대 이전까지 유럽이 “대서양 연안의 야만적 북유럽 대 지중해 중심의 문명적 남유럽”이라는 축으로 구별되었다는 것을 역설한 것은 헨리크 삼소노비츠를 비롯한 폴란드 중세사가들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이탈리아 등의 남유럽은 문명의 요람이자 고대 로마와 기독교 문명의 계승자였다. 반면 북해 연안의 북유럽은 기독교 개종과 도시의 발전이 늦고, 로마법이나 르네상스 휴머니즘도 부분적으로만 도입됐다. 이들은 지중해 문명을 ‘구유럽’, 대서양·북해 문명을 ‘신유럽’이라 불렀다.
    이는 선진적 서유럽과 후진적 동유럽, 민주적 서유럽과 전제적 동유럽, 자본주의 서유럽과 공산주의 동유럽이라는 이분법이 초역사적인 진실처럼 회자되고, 그 구도에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등이 후진적 동유럽으로 구획되는데 대한 폴란드 중세사가들의 문제 제기였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지중해 대 대서양’의 구도를 떠나 ‘서유럽 대 동유럽’으로 바뀐 것은 한시적이라는 함의가 숨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서유럽 역사학이 고전 고대 지중해 문명을 자기네 역사의 기원으로 만든 ‘아리아’ 학설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이 아프리카의 이집트 및 소아시아 문명권과 같이 얽혀 발전한 역사를 지우고, 대서양으로 납치해 유럽사의 계보를 만든 아리아적 해석은 사실상 유럽중심주의의 폭력이었다.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벽화에는 검은 피부의 곡예사가 등장한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시원인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궁전 내 천연색 벽화 속에서 황소의 뿔을 잡고 덤블링하는 곡예사 춤꾼들의 검은 피부는 고대 미노아 문명의 주인공들이 서유럽 역사학의 아리아적 해석에 대해 던지는 무언의 항변이다. 지중해 복판의 크레타섬은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와 소아시아, 그리고 그리스 본토를 잇는 삼각점에 위치하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높은 문명 수준을 구가했다.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던 것이다.

    미 대학서 없앤 ‘서양문화사’ 한국엔 아직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의 교양 교육도 고전 고대 문명의 아리안화에 기여했다. 미국은 1880년대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동유럽 이민자들을 미국에 동화하는 기제로서 서구적 가치를 고양하고 가르쳤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미국 대학의 핵심 교양 과목으로 등장한 ‘Western Civilization(서구 문명)’은 서유럽을 정점으로 하는 문명의 위계질서를 만들고 비서구 문명을 그 아래 줄 세우는 이념적 장치였다.
    이 과목은 ‘후진적’ 동유럽의 슬라브 이민자들과 남유럽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에게 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이어지는 서유럽적 가치가 미국의 가치이며, 더 나아가 미국은 서유럽보다 더 서양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임을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었다. 1차 대전 이후 세계 일등 국가로 우뚝 선 미국의 서구 중심주의적 역사관이 반영된 것이었다. 작고한 미국의 세계사 학자 제리 벤틀리가 ‘애국주의적 세계사’라고 비꼰 데는 이유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 군정기에 한국과 일본 대학의 교양 과정에도 ‘서양문화사’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이 과목은 냉전 시대에는 동유럽의 일당 독재와 공산주의에 대해 서유럽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 우위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기제였다. 더 깊은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자들이 자학적 오리엔탈리즘과 서구 중심주의를 체화하는 계기였다.
    1987년 1월 15일 제시 잭슨 목사와 500여 명의 학생이 스탠퍼드대에서 ‘서양문화사’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이래, 이제 미국의 상위 50개 대학 중 서양문화사를 필수로 가르치는 대학은 없다. 그중 34개 대학에서는 아예 선택 과목에서도 사라졌다. 백인 앵글로-색슨 기독교 중심의 가치관이 비서구-비기독교-유색인 이민자들을 소외시키고, 다원주의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아직도 ‘서양문화사’를 교양과목으로 가르치는 한국 대학들은 ‘서양’보다 더 서양적이다. 웃기지만, 아프다.














    임지현 서강대 석좌교수. 서강대에서 서양사 전공. 대표 저서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 『기억 전쟁』(2019), 『대중 독재』(2004),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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