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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한 지점의 2023년 10월 와인 장터 모습. 천호성 기자


한국 와인팬들에게 가을은 셀러를 살찌우는 계절이다. 대형마트 등 유통사들이 대규모 할인 행사인 ‘와인 장터’를 경쟁하듯 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신세계 계열 와인앤모어와 롯데마트 등이 행사 포문을 열었고 이달엔 이마트·홈플러스 장터가 기다린다. 개인 와인샵과 창고형 와인매장, 수입사 직영 매장들도 행사에 가세한다. 소비자로선 와인 값 유독 비싼 한국에서 그나마 부담을 줄여 냉장고를 채울 기회다.
가을은 ‘장터’의 계절
와인 장터의 ‘원조’는 수입사 아영FBC 운영 와인샵인 와인나라로 알려져있다. 와인나라는 2002년부터 매년 봄·가을 할인행사를 열부동산전망대
어왔다. 이후 와인 시장의 ‘공룡’인 이마트가 매년 5·10월에 장터를 열면서, 이 두달이 와인 할인의 큰 장이 서는 기간으로 굳어졌다. 소비자가 1년치 와인을 경쟁사 장터에서 몰아 살세라 다른 마트·백화점도 이 기간에 행사로 맞불을 놓는다.
10월에 긴 추석 연휴가 있었던 올해는 예외적으로 주요 유통 체인들이 장터 기간을 11월로 옮겼다캡틴프라이드게임
. 마트에서 와인을 자주 고르는 소비자라면 지금쯤 ‘행사 리스트’를 미리 찾고 있을 것이다. 장터 할인 품목과 가격이 정리된 엑셀 파일을 구해, 근처 매장에다 맘에 드는 와인을 예약하려는 것이다. 이 표는 장터를 1주일쯤 앞두고는 대개 온라인 와인 커뮤니티 등에 공유된다. 할인폭이 큰 상품은 장터 기간 매장 오픈과 동시에 ‘줄서기’(선착순)로 판매되는데, 카지노관련주
장터마다 어떤 와인이 줄서기에 오르는지 역시 관심사다.



롯데마트 한 지점의 2022년 연말 행사 모습. 천호성 기자


장터의 부침
사실 대형마트가 와인을 사기에 완벽히 이상적인 매장은 아니다. 와인 중국펀드
보관 상태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매장이 크고 여러 물건을 함께 취급하는 마트 특성 상, 와인이 최선의 온도와 환경에서 옮겨지고 저장되지 않기가 쉽다.(이는 백화점이나 면세점 와인 코너도 마찬가지.)
와인을 보관하기에 최적 온도는 섭씨 12∼15도, 습도는 55∼75%라고 한다. 실온에선 숙성(혹은 부패)이 4배 빨리 진행되고 30도가 넘국영지앤엠 주식
으면 와인이 팽창해 코르크 밖으로 끓기 일쑤다. 온도가 일정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십만원 이상을 호가해 기대치가 높은 와인이나, 20년 이상 된 올드빈티지라면 보관의 중요성은 더욱 클 것이다.
이에 개인 로드샵들은 매장 내 온도·습도계를 비치하고 각별히 신경쓰는 편이다. 어지간한 고가 와인은 실온 매대가 아닌 냉장 셀러에 진열한다.
더구나 같은 마트 또는 백화점만 찾다 보면 와인 라인업이 ‘진부하다’ 느껴질 것이다. 입점한 수입사가 정해져 있고, 매장에서 발주하는 품목이 매번 비슷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 인기 와인 생산지의 대형 생산자가 만든 스테디셀러 와인은 마트에서 쉽게 구하는 반면, 프랑스 부르고뉴 등지의 소규모 와이너리 제품을 찾으려면 로드샵을 수소문하며 발품을 팔아야 한다.
최근엔 가격에서마저 마트 장터가 능사는 아니란 말이 자주 들린다. 마트들이 환율 상승 등을 반영해 상당수 품목의 장터 판매가를 올려온 것이다. 장터 시세 수년치를 기억하는 소비자들은 ‘이 와인은 몇년 전보다 얼마큼 올랐다’며 발길을 돌리곤 한다.
수년 전 장터 기간 이마트 입구엔 매니아들이 새벽부터 텐트를 치고 줄서기 상품을 노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요즘은 이런 매장이 드물다.



톨라이니 알 파소 토스카나 2016 빈티지. 천호성 기자


그래도 옥석은 있다
그럼에도 가을에 와인팬들이 들썩이는 건 여전히 옥석을 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장터마다 고르는 와인 유형 몇가지를 소개해본다.
우선 마트와 같은 유통그룹에서 수입한 와인은 장터 기간 할인폭이 큰 편이다. 이마트의 경우 같은 신세계 계열의 신세계엘앤비가 들여오는 일부 품목의 가격을 장터 동안 낮춘다. 롯데마트와 킴스클럽 역시 그룹에서 와인을 수입한다. 이들 수입사의 와인 중 평소 즐겨 찾는 게 있다면 장터 때 사두는 게 낫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와이너리인 톨라이니(Tolaini)는 내가 8년째 장터 때마다 고르는 ‘맛집’이다. 2019년 연말에 톨라이니의 엔트리급 와인 ‘알 파소’(Al Passo) 2014빈티지를 처음 마셨을 때 놀라움이 생생하다.
이탈리아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와 프랑스 보르도 원산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를 섞은 이 와인은 맛과 향의 세기와 밸런스를 동시에 잡았다. 잔에 따르자마자 짙은 체리향과 밀크초콜릿 향이 달달하게 반겨주고 삼나무, 민트, 토바코의 시원·매콤한 내음이 뒤따른다. 입에선 머금고 있기 즐거울 만큼 과즙미가 진하다. 이탈리아 와인 특유의 산미가 뚜렷하고 넘긴 뒤 잔당이 남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알 파소는 지금까지 이마트 장터에선 대개 3만원 미만에 나왔다. 평소 가격은 3만5000원 정도. 마트에서 흔히 보이는 와인 중 가격 대비 이만큼의 실력을 뽐내는 와인은 드물다고 자신한다. 물론 장터 가격 기준으로만.



틴토 페스케라 리베라 델 두에로 레제르바 2015. 천호성 기자


톨라이니는 알 파소 말고도 산지오베제를 베이스로 한 여러 라인업을 내는데 대체로 추천할 만하다. 카베르네 소비뇽으로만 빚은 실험적인 와인 ‘레짓’(Legit) 역시 인상적이다.
이외 이탈리아 키안티 지역 명가 폰토디(Fontodi)의 모든 라인업, 천병까기 9화에서 소개했던 미국 오리건주 생산자 ‘도멘 드루앵’(Domaine Drouhin)의 피노누아·샤르도네,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의 틴토 페스케라는 현지 못지않게 합리적인 가격을 장터 기간에 보여왔다. 주요 평론지에서 90점 이상을 쉽게 득점할 만큼 품질도 안정적이다.



이 기갈 에르미타주 루즈 2014. 천호성 기자


마셔보면 맛있는 ‘배드 빈티지’
마트들에게 장터는 악성 재고를 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인기에 비해 너무 많이 들인 와인을 장터 때 가격 깎아 팔아치우는 것.
대표적인 것이 구대륙(유럽, 특히 프랑스·이탈리아)의 흉작 빈티지 와인들이다. 프랑스 론 지역 2014년, 보르도 2013년, 이탈리아 바롤로 2014년 등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배드 빈티지를 넘어 ‘망빈티지’로 악명높다. 해외 평론지들이 지역별 빈티지 품질을 100점 만점으로 따진 차트를 보면 실제로 이들은 2016년 등 우수한 해들을 10점 이상 밑돈다.
하지만 실력 탄탄한 생산자들은 이런 흉작에도 살 길을 찾기에 마련이다. 론 지역을 대표하는 생산자 이 기갈(E. Guigal)이 그렇다. 기갈의 ‘에르미타주 루즈’(Hermitage Rouge) 2014는 블랙베리·프룬 등 짙은 보랏빛 과실향을 내는 와인이다. 북부 론 시라 품종 특유의 잉크 같은 맵싹함, 이기갈 특유의 긴 오크 숙성(이 보틀은 36개월)에서 오는 가죽과 스모키한 내음도 얹힌다.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생산지와 생산자의 특성을 조곤조곤 정확히 읊어주는 와인이라고 느꼈다.
역사적인 빈티지였던 2015년의 론처럼 수십년을 병 속에서 살아남을 듯한 강인함을 이 보틀에서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당장 마시기에는, 긴 숙성이 필요 없는 2014년이 다른 해보다 나을 수 있다. 이 와인은 최근 7∼8년 동안 장터에서 6만원 안팎에 나왔다. 평소에는 대개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보르도의 경우 한때 장터마다 매대를 가득 채우던 2013년 와인은 최근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요즘은 2017년 와인이 인기가 덜해 안 팔리고 많이 남는 편이다. 나는 2015년 등 소위 그레잇 빈티지에 견줘 서늘했던 그해의 보르도가 지나친 눅진함 없이 ‘클래식’에 가깝다고 생각해 좋아한다. 그래서 가격이 많이 내려온 2017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모은다. 다만 흉작 해이면서, 지금 맛보기에도 너무나 어린 2021년 보르도나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등은 개인적으로 피한다.



도멘 드 슈발리에 그라브 그랑크뤼 2013. 프랑스 보르도의 2013년은 손꼽히는 흉작이었지만 이 와인은 발군의 맛을 뽐낸다. 천호성 기자.


장터의 숨은 재미, ‘올드 빈티지’
위의 와인들은 장터 때 가격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장터 때만’ 구할 수 있는 품목은 아니다. 장터가 기다려지는 더욱 큰 이유는 혹시 모를 ‘올빈’과의 조우다.
장터 와인 리스트를 들여다보면 2000년대 초반 혹은 그 이전의 와인이 눈에 띌 것이다. 이런 와인은 한국은 물론 해외서도 흔치는 않다. 시장의 큰손인 마트들은 장터 때면 수입사 또는 생산자와의 협상력을 이용해 이런 드문 빈티지들을 입수하곤 한다. 대개 장터 기간에 맞춰 통관이 이뤄지기에 마트 매대에 지나치게 오래 방치됐을 우려도 비교적 적다.
문제는 올드 빈티지가 귀하다 보니 장터 때 전국 매장을 다 합쳐도 몇 병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심 가는 빈티지가 있다면 미리 근처 매장 매니저와 상의해 발주를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천호성의 천병까기

먹고 마시기를 사랑하는 이라면 한번 쯤 눈독 들였을 ‘와인’의 세계. 7년 간 1000병 넘는 와인을 연 천호성 기자가 와인의 매력을 풀어낸다. 품종·산지 같은 기초 지식부터 와인을 더욱 맛있게 즐길 비기까지, 매번 한 병의 시음기를 곁들여 소개한다. 독자를 와인 세계에 푹 빠트리는 게 연재의 최종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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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마셔도 맛있을 가성비 와인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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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 마셔본 기자의 와인 ‘쉽게’ 고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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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사이로 대서양의 짠 바람…“이게 테루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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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그레잇 빈티지’의 맛

https://www.hani.co.kr/arti/culture/travel/1210856.html?h=s

▶신문사 사표 내고 떠난 보르도 유학, 인생을 바꾼 와인

https://www.hani.co.kr/arti/culture/travel/1208411.html?h=s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