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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지난 3월 1일은 결혼 40주년이었다. 만난 지 46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또한 순례자로 산 지 4년째 되는 해이다. 이 특별한 날에 멕시코 오악사카의 자포텍(Zapotec) 문명의 고고학적 유적지, 아트좀파(Atzompa)를 방문하기로 했다. 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통해 시간의 숭엄함을 사색 하기에 좋을 곳으로 여겨졌다.
먼저 방문한 몬테 알반(Monte Alban)이 산 정상을 평탄화하고 정연하게 건설된 웅대한 릴게임뜻 유적인 반면, 자연 지형을 살린 채 위성 도시로 만들어진 아트좀파는 어떻게 건설되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여전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특별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 몬테 알반 유적. 뒤의 또다른 산정상에 몬테알반의 위성도시였던 아트좀파 유적이 보인다. 몬테 알반은 산 정상 자체를 평탄화하여 웅장하게 건설된 자포텍 문명이었다.
릴게임몰메가
ⓒ 이안수
유적으로 오르는 마을, 버스를 타고 가다 산타 마리아 아트좀파(Santa María Atzompa)에서 내렸다. 유적지까지는 3km가 넘는 언덕길이라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첫 번째 차가 기꺼이 서주었다. 우리를 태워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준 이는 자포텍 부족민인 엘레오씨와 발렌틴씨였다. 엘레오씨는 4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뒤 사촌 형인 발렌틴씨를 비롯해 차례로 형제와 친지들을 불러들여 미국 시민권자가 된 뒤 그곳에서 경제 활동을 한 돈을 고향 산 후안 테이티팍으로 보내 집안을 부흥 하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뿌리에 관심이 많아 고향을 방문할 릴게임예시 때마다 조상의 유적을 찾는다고 한다. 증기 목욕 시설까지 갖췄던 '동쪽의 집'과 정교한 건축 기술과 장식을 보여주는 '제단의 집'로 알려진 두 귀족 거주지 폐허에서 맞은편 산정에 있는 몬테 알반을 조망했다.
기원전 500년경 자포텍족에 의해 건설된 몬테 알반. 기원후 300년경 인구 4만여 명의 전성기를 지나 700년 경에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800년경 버려졌다. 최근 고고학적 연구 결과는 내부의 갈등, 외부의 침략, 자원 부족 등을 쇠락의 복합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아트좀파는 서기 650년경 건설되었지만 몬테 알반과 운명을 같이했다. 후에 이 두 유적은 믹스텍족에 의해 매장지로 재사용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이 유적을 버렸을 때와 같은 처지를 살고 있습니다. 믹스텍족과 때로는 화친하고 때로는 전쟁하면서 이곳을 떠나 분산되었지만, 자포텍족도 믹스텍족도 함께 아즈텍 제국에 점령되어 조공을 바치는 삶을 살았고 아즈텍 제국의 테노치티틀란이 스페인의 침입자에 의해 1521년에 멸망하자 우리는 함께 그들의 착취에 편입되었습니다.
1821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우리의 영토는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발생한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되면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멕시코 국토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여전히 강대국 미국 아래에서 정치적, 경제적 긴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지금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탐욕 속에서 식민지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엘리오씨가 침묵을 깨고 역사를 반추하며 자포텍의 정체성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앞장서 걷던 엘레오씨가 길 양옆으로 가득한 구아헤 나무(Guaje)의 꼬투리를 따 열어 보이면서 말했다.
"오악사카의 이름은 이 나무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어요. '구아헤(Guaje)'는 'Huaxyacac'의 스페인어 변형인데, 나우아틀어이죠. 나우아틀어는 아즈텍 제국의 언어에요. 그들의 군대가 이곳에 왔을 때 산의 곳곳에 이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구아헤 나무가 있는 언덕 끝'이라는 나우아틀어로 명명한 것입니다. 실제 자포텍어 이름은 베에나아(Be'ena'a)로, '구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아즈텍 제국에 의해 뺏겼고 아즈텍 제국에서의 이름은 다시 스페인 제국에 의해 다시 그들의 음운 편의에 맞추어서 변형되었습니다. 우리 것은 이렇게 모두 사라졌습니다."
현재 자포텍어로 베에나아라고 하는 토착 후손들 40만 명 정도가 그들의 고유한 문명의 발상지인 몬테 알반의 고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오악사카 밸리 일대에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고대 자포텍족의 지배층은 자신들이 구름 속에 사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후손이며, 죽으면 다시 구름으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고 했다.
2천 살 어르신, 툴레나무
▲ 오악사카 산타 마리아 델 툴레 마을 중심에 있는 멕시코 낙우송, 툴레나무. 줄기 둘레가 58m로 세계에서 가장 굵은 줄기를 가진 나무로 유명하다.
ⓒ 이안수
엘레오와 발렌틴씨 제안으로 두 분의 고향마을 산 후안 테이티팍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트좀파 유적에서 40km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20km 쯤 전 삼거리 길목에 산타 마리아 델 툴레(Santa María del Tule)가 있다. 툴레 나무(Árbol del Tule)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마을이 생기고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나무 주변에 성당과 광장이 만들어지고 마을이 생겨났다. 나무 자체가 자연의 생태적 상징이 되었고 마을이 생기고 축제가 만들어졌으며 나무를 신성시하면서 영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된 거대한 아후에후에테(Ahuehuete, 멕시코 낙우송)는 수령 2천 년이 넘는 나무로 세계에서 가장 큰 줄기 직경을 가진 나무라고 한다. 지름 약 14m, 둘레 58m, 높이 약 42m로 키보다 몸통이 더 큰 나무이다. 'Ahuehuete'는 나우아틀어로 '물가의 노인'이라는 의미로 물과 생명을 상징한다. 이 그늘 아래에서 회의와 축제와 의식이 거행되었다.
아내와 나는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몇 바퀴를 돌면서 인간이 지구에 행하는 모든 악행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툴레 나무에서 긴 시간 지체하는 바람에 고향 마을로 접어들었을 때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버렸다. 음력 보름을 이틀을 앞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이 사라진 해를 대신해 발레스 센트랄레스(Valles Centrales)의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5세기 동안 살아남은 벽화
서둘러 도착한 마을에서 우리를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Templo de San Juan Bautista)이었다. 16세기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지은 성당과 수도원 복합 건물이었다. 성당의 예배 공간인 나베(Nave) 대신 수도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에서 발길을 멈췄다. 벽에는 검은 단일색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 산 후안 테이티팍 마을의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과 수도원의 벽화 16세기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지은 성당과 수도원 복합 건물이었으며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 벽에는 검은 단일색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 이안수
"이 놀라운 벽화를 보세요. 이 벽화는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된 직후인 16세기 후반 수도사들에 의해 제작된 오래된 단색화입니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해요.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이고요. 수도사들이 시신을 운구하는 행렬, 성모가 가시관을 받는 장면, 사다리, 집게 채찍 등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죠."
엘레오의 말처럼 특별한 보호 조치 없이도 5세기 동안이나 살아남은 벽화였다. 그러나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수도원 밖에서 했다.
"그들은 조상과 태양, 비, 옥수수, 번개 등을 상징하는 다양한 신을 믿었던 우리에게 낯선 신을 소개하고 다른 모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 너머에 금광이 있었던 얘기를 했다.
"스페인 침입자들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을 동원해 금광 채굴을 했어요. 그 모두가 다시 성당을 짓는데 동원되었죠. 그들은 오직 금과 은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금의 역할에 오일이 더해졌죠. 그때나 지금이나 착취는 여전한 셈입니다. 방식만 달라진 셈이죠. 지금의 미국이 그때의 스페인 침입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가 저는 쉽지 않아요."
50여 년 전 두 사람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지나 엘레오씨가 태어난 집으로 갔다. 성당 뒤편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그의 형 시릴로(Cirilo Cruz) 씨가 맞아주었다.
"시릴로도 30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이 집을 지키고 있죠. 아버지대까지는 이 대지 안에 여러 채의 집들이 있었고 삼촌과 고모 등 온 집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았어요. 세월과 함께 그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형과 내게 이 집을 물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내 지분도 형에게 주었어요. 현재는 내가 오면 묵을 수 있는 방 하나만 내 몫으로 남겨 놓았지요."
마을을 걸을 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부분이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을을 되돌아 나오는 어둠 속 밭을 가리키며 발렌틴씨가 말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밭들은 옥수수를 비롯한 채소가 잘 자라던 곳입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물이 말랐고 농사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나 염소를 먹이는 사료 작물인 알팔파(alfalfa)를 심어요. 예전에는 땅 어디를 파도 지하수가 나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물이 나오는 우물조차도 오염되어 먹을 수가 없는 우물이 대부분이에요. 사람들도 농사를 짓는 대신 이제 오악사카 시내로 가서 품을 팝니다."
현재 마을 이름의 의미를 물었다. 엘레오가 답했다.
"'Teitipac'도 나우아틀어에요. '돌 위에'라는 뜻입니다."
"자포텍 마을이니 아즈텍어 전에 불렸던 자포텍어의 이름은 없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 말은 '답을 모르겠다'라는 의미라는 사실로 정의해 준 캐나다의 존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났다. 엘레오는 '좋은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다른 얘기를 한참 이어갔다.
"아버지는 스페인어와 더불어 자포텍어를 구사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마을에서 자포텍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지나는 길에 인사드렸던 그 할머니가 유일해요. 저도 자포텍어를 모릅니다."
"할머니의 남편을 생존해 계시나요?"
"돌아가셨어요."
"그럼 할머니께서는 누구와 자포텍어로 대화할 수 있나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나우아틀어와 스페인어에 의식이 점령 당했고 지금 아이들은 영어만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문화적 다양성 복원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자포텍어를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아, 제토바(Zetobaa)라고 해요. 마침내 자포텍어 마을 이름이 생각났어요. '다른 무덤'이라는 의미라고 들었어요. 인근 미틀라(Mitla)에 화려한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아요."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기념일
▲ 오악사카 계곡 스스로를 '구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 여기며 오악사카 계곡을 중심으로 뛰어난 문명을 일구었던 자포텍족. 그들은 이제 몬테 알반(Monte Alban)과 미틀라(Mitla) 등 유적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후손들은 그들의 언어조차 잃은지 오래다. 보름을 앞둔 달이 그들의 땅이었던 곳을 비추고 있다.
ⓒ 이안수
오악사카 시내로 돌아와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사실 저희는 오늘이 40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오늘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던 계획보다 더 흡족합니다. 이 소박한 길거리 음식점의 저녁은 저희가 살게요."
우리의 요청을 수용한 엘레오씨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을 말했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만 자라서인지 조상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어요. 회사의 경진대회로 멕시코시티까지 오고서도 고향 방문은 안 하고 돌아갔어요."
엘레오씨에게는 미국에서 얻은 경제적 자유에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의 디아스포라의 40년 상실이 느껴졌다. 결혼 40주년,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 부부도 그가 말하지 않은 심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스텔 문 앞에 우리를 내려준 형제가 떠나자 비로소 피로가 몰려왔다.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결혼기념일이었다.
덧붙이는
[이안수 기자]
지난 3월 1일은 결혼 40주년이었다. 만난 지 46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또한 순례자로 산 지 4년째 되는 해이다. 이 특별한 날에 멕시코 오악사카의 자포텍(Zapotec) 문명의 고고학적 유적지, 아트좀파(Atzompa)를 방문하기로 했다. 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통해 시간의 숭엄함을 사색 하기에 좋을 곳으로 여겨졌다.
먼저 방문한 몬테 알반(Monte Alban)이 산 정상을 평탄화하고 정연하게 건설된 웅대한 릴게임뜻 유적인 반면, 자연 지형을 살린 채 위성 도시로 만들어진 아트좀파는 어떻게 건설되고 어떻게 버려졌는지, 여전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특별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 몬테 알반 유적. 뒤의 또다른 산정상에 몬테알반의 위성도시였던 아트좀파 유적이 보인다. 몬테 알반은 산 정상 자체를 평탄화하여 웅장하게 건설된 자포텍 문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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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유적으로 오르는 마을, 버스를 타고 가다 산타 마리아 아트좀파(Santa María Atzompa)에서 내렸다. 유적지까지는 3km가 넘는 언덕길이라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첫 번째 차가 기꺼이 서주었다. 우리를 태워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준 이는 자포텍 부족민인 엘레오씨와 발렌틴씨였다. 엘레오씨는 4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뒤 사촌 형인 발렌틴씨를 비롯해 차례로 형제와 친지들을 불러들여 미국 시민권자가 된 뒤 그곳에서 경제 활동을 한 돈을 고향 산 후안 테이티팍으로 보내 집안을 부흥 하게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뿌리에 관심이 많아 고향을 방문할 릴게임예시 때마다 조상의 유적을 찾는다고 한다. 증기 목욕 시설까지 갖췄던 '동쪽의 집'과 정교한 건축 기술과 장식을 보여주는 '제단의 집'로 알려진 두 귀족 거주지 폐허에서 맞은편 산정에 있는 몬테 알반을 조망했다.
기원전 500년경 자포텍족에 의해 건설된 몬테 알반. 기원후 300년경 인구 4만여 명의 전성기를 지나 700년 경에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800년경 버려졌다. 최근 고고학적 연구 결과는 내부의 갈등, 외부의 침략, 자원 부족 등을 쇠락의 복합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아트좀파는 서기 650년경 건설되었지만 몬테 알반과 운명을 같이했다. 후에 이 두 유적은 믹스텍족에 의해 매장지로 재사용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이 유적을 버렸을 때와 같은 처지를 살고 있습니다. 믹스텍족과 때로는 화친하고 때로는 전쟁하면서 이곳을 떠나 분산되었지만, 자포텍족도 믹스텍족도 함께 아즈텍 제국에 점령되어 조공을 바치는 삶을 살았고 아즈텍 제국의 테노치티틀란이 스페인의 침입자에 의해 1521년에 멸망하자 우리는 함께 그들의 착취에 편입되었습니다.
1821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우리의 영토는 1846년부터 1848년까지 발생한 '멕시코-미국 전쟁'으로 텍사스는 미국에 합병되면서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멕시코 국토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여전히 강대국 미국 아래에서 정치적, 경제적 긴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지금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탐욕 속에서 식민지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엘리오씨가 침묵을 깨고 역사를 반추하며 자포텍의 정체성이 소멸되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앞장서 걷던 엘레오씨가 길 양옆으로 가득한 구아헤 나무(Guaje)의 꼬투리를 따 열어 보이면서 말했다.
"오악사카의 이름은 이 나무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어요. '구아헤(Guaje)'는 'Huaxyacac'의 스페인어 변형인데, 나우아틀어이죠. 나우아틀어는 아즈텍 제국의 언어에요. 그들의 군대가 이곳에 왔을 때 산의 곳곳에 이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구아헤 나무가 있는 언덕 끝'이라는 나우아틀어로 명명한 것입니다. 실제 자포텍어 이름은 베에나아(Be'ena'a)로, '구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아즈텍 제국에 의해 뺏겼고 아즈텍 제국에서의 이름은 다시 스페인 제국에 의해 다시 그들의 음운 편의에 맞추어서 변형되었습니다. 우리 것은 이렇게 모두 사라졌습니다."
현재 자포텍어로 베에나아라고 하는 토착 후손들 40만 명 정도가 그들의 고유한 문명의 발상지인 몬테 알반의 고대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오악사카 밸리 일대에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고대 자포텍족의 지배층은 자신들이 구름 속에 사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후손이며, 죽으면 다시 구름으로 돌아갈 것을 믿는다고 했다.
2천 살 어르신, 툴레나무
▲ 오악사카 산타 마리아 델 툴레 마을 중심에 있는 멕시코 낙우송, 툴레나무. 줄기 둘레가 58m로 세계에서 가장 굵은 줄기를 가진 나무로 유명하다.
ⓒ 이안수
엘레오와 발렌틴씨 제안으로 두 분의 고향마을 산 후안 테이티팍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트좀파 유적에서 40km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20km 쯤 전 삼거리 길목에 산타 마리아 델 툴레(Santa María del Tule)가 있다. 툴레 나무(Árbol del Tule)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마을이 생기고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나무 주변에 성당과 광장이 만들어지고 마을이 생겨났다. 나무 자체가 자연의 생태적 상징이 되었고 마을이 생기고 축제가 만들어졌으며 나무를 신성시하면서 영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된 거대한 아후에후에테(Ahuehuete, 멕시코 낙우송)는 수령 2천 년이 넘는 나무로 세계에서 가장 큰 줄기 직경을 가진 나무라고 한다. 지름 약 14m, 둘레 58m, 높이 약 42m로 키보다 몸통이 더 큰 나무이다. 'Ahuehuete'는 나우아틀어로 '물가의 노인'이라는 의미로 물과 생명을 상징한다. 이 그늘 아래에서 회의와 축제와 의식이 거행되었다.
아내와 나는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몇 바퀴를 돌면서 인간이 지구에 행하는 모든 악행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툴레 나무에서 긴 시간 지체하는 바람에 고향 마을로 접어들었을 때 해는 이미 서산을 넘어버렸다. 음력 보름을 이틀을 앞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이 사라진 해를 대신해 발레스 센트랄레스(Valles Centrales)의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5세기 동안 살아남은 벽화
서둘러 도착한 마을에서 우리를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Templo de San Juan Bautista)이었다. 16세기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지은 성당과 수도원 복합 건물이었다. 성당의 예배 공간인 나베(Nave) 대신 수도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에서 발길을 멈췄다. 벽에는 검은 단일색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었다.
▲ 산 후안 테이티팍 마을의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과 수도원의 벽화 16세기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지은 성당과 수도원 복합 건물이었으며 수도원 내부로 들어가는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 벽에는 검은 단일색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중심으로 한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 이안수
"이 놀라운 벽화를 보세요. 이 벽화는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된 직후인 16세기 후반 수도사들에 의해 제작된 오래된 단색화입니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고 해요.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이고요. 수도사들이 시신을 운구하는 행렬, 성모가 가시관을 받는 장면, 사다리, 집게 채찍 등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죠."
엘레오의 말처럼 특별한 보호 조치 없이도 5세기 동안이나 살아남은 벽화였다. 그러나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수도원 밖에서 했다.
"그들은 조상과 태양, 비, 옥수수, 번개 등을 상징하는 다양한 신을 믿었던 우리에게 낯선 신을 소개하고 다른 모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 너머에 금광이 있었던 얘기를 했다.
"스페인 침입자들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을 동원해 금광 채굴을 했어요. 그 모두가 다시 성당을 짓는데 동원되었죠. 그들은 오직 금과 은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금의 역할에 오일이 더해졌죠. 그때나 지금이나 착취는 여전한 셈입니다. 방식만 달라진 셈이죠. 지금의 미국이 그때의 스페인 침입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가 저는 쉽지 않아요."
50여 년 전 두 사람이 다녔던 초등학교를 지나 엘레오씨가 태어난 집으로 갔다. 성당 뒤편의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그의 형 시릴로(Cirilo Cruz) 씨가 맞아주었다.
"시릴로도 30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이 집을 지키고 있죠. 아버지대까지는 이 대지 안에 여러 채의 집들이 있었고 삼촌과 고모 등 온 집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았어요. 세월과 함께 그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형과 내게 이 집을 물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내 지분도 형에게 주었어요. 현재는 내가 오면 묵을 수 있는 방 하나만 내 몫으로 남겨 놓았지요."
마을을 걸을 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부분이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을을 되돌아 나오는 어둠 속 밭을 가리키며 발렌틴씨가 말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밭들은 옥수수를 비롯한 채소가 잘 자라던 곳입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물이 말랐고 농사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나 염소를 먹이는 사료 작물인 알팔파(alfalfa)를 심어요. 예전에는 땅 어디를 파도 지하수가 나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물이 나오는 우물조차도 오염되어 먹을 수가 없는 우물이 대부분이에요. 사람들도 농사를 짓는 대신 이제 오악사카 시내로 가서 품을 팝니다."
현재 마을 이름의 의미를 물었다. 엘레오가 답했다.
"'Teitipac'도 나우아틀어에요. '돌 위에'라는 뜻입니다."
"자포텍 마을이니 아즈텍어 전에 불렸던 자포텍어의 이름은 없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 말은 '답을 모르겠다'라는 의미라는 사실로 정의해 준 캐나다의 존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났다. 엘레오는 '좋은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다른 얘기를 한참 이어갔다.
"아버지는 스페인어와 더불어 자포텍어를 구사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마을에서 자포텍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지나는 길에 인사드렸던 그 할머니가 유일해요. 저도 자포텍어를 모릅니다."
"할머니의 남편을 생존해 계시나요?"
"돌아가셨어요."
"그럼 할머니께서는 누구와 자포텍어로 대화할 수 있나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나우아틀어와 스페인어에 의식이 점령 당했고 지금 아이들은 영어만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문화적 다양성 복원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자포텍어를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아, 제토바(Zetobaa)라고 해요. 마침내 자포텍어 마을 이름이 생각났어요. '다른 무덤'이라는 의미라고 들었어요. 인근 미틀라(Mitla)에 화려한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아요."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기념일
▲ 오악사카 계곡 스스로를 '구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 여기며 오악사카 계곡을 중심으로 뛰어난 문명을 일구었던 자포텍족. 그들은 이제 몬테 알반(Monte Alban)과 미틀라(Mitla) 등 유적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후손들은 그들의 언어조차 잃은지 오래다. 보름을 앞둔 달이 그들의 땅이었던 곳을 비추고 있다.
ⓒ 이안수
오악사카 시내로 돌아와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사실 저희는 오늘이 40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오늘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던 계획보다 더 흡족합니다. 이 소박한 길거리 음식점의 저녁은 저희가 살게요."
우리의 요청을 수용한 엘레오씨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을 말했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만 자라서인지 조상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어요. 회사의 경진대회로 멕시코시티까지 오고서도 고향 방문은 안 하고 돌아갔어요."
엘레오씨에게는 미국에서 얻은 경제적 자유에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의 디아스포라의 40년 상실이 느껴졌다. 결혼 40주년,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 부부도 그가 말하지 않은 심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스텔 문 앞에 우리를 내려준 형제가 떠나자 비로소 피로가 몰려왔다. 가장 긴 하루를 보낸 결혼기념일이었다.
덧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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