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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월26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 하우스 달개비’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구는 본래 불의에 맞서는 ‘항쟁의 도시’였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습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수탈에 가장 먼저 맞선 곳도 대구였습니다. 1946년 ‘10월 항쟁’입니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 씨가 이때 숨졌습니다. 박상희 씨의 영향으로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 알라딘릴게임 져 있습니다.
1956년 대선에서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은 69.98%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대구에서는 무소속 진보 성향 조봉암 후보가 무려 72.26%를 득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득표율은 겨우 27.73%였습니다. 1960년 대구 2·28 학생 시위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습니다. 4·19 직후 대구는 교원노조와 혁신정당(경북사 골드몽게임 회당) 등 진보의 근거지였습니다.
대구의 ‘야성’을 꺾은 것은 대구 출신 독재자들이었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미국의 의심을 벗기 위해 대구·경북의 혁신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1974년에는 “혁신계 인사들이 인혁당을 재건해 야마토게임다운로드 민청학련의 유신 반대투쟁을 조종하고 북한의 사주를 받아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해서 발표했습니다. 여정남 도예종 등 8명이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 1975년 4월9일 사형당했습니다. 사법살인이었습니다. 8명 가운데 5명이 대구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안사 대구지부 황금성사이트 인 ‘태백공사’가 대구·경북의 재야, 대학가, 노동계를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온갖 공작과 고문을 동원해 운동권의 씨를 말렸습니다. 대구·경북은 운동권의 황무지가 됐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채찍과 함께 당근을 사용했습니다. 대구·경북 출신들이 정계, 관계, 재계의 핵심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대구는 서서히 보수 기득권 세력의 아성으로 변해 사이다릴게임 갔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국적으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나타났습니다. 호남은 민주당에, 충청은 자민련에 표를 몰아줬습니다. 방어적 지역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구·경북이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는 것도 정당하다는 명분이 생겼습니다.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명예를 획득했습니다.
대구·경북은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에 의석을 내준 일이 거의 없습니다. 1992년 정주영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이, 1996년 자민련이 대구에서 의석을 얻었습니다. 민주당은 2016년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이 유일했습니다.
지방선거는 더 심했습니다. 1995년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특이하게 다자구도로 치러졌습니다. 민자당 출신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36.79%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이의익 자민련 후보 22.14%, 무소속 이해봉 후보 21.35%, 민자당 조해녕 후보 16.87%였습니다. 민주당은 후보를 아예 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대구시장 당선자와 득표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한나라당 문희갑 72.00%
2002년 한나라당 조해녕 61.20%
2006년 한나라당 김범일 70.15%
2010년 한나라당 김범일 72.92%
2014년 새누리당 권영진 55.95%
2018년 자유한국당 권영진 53.73%
2022년 국민의힘 홍준표 78.75%
대구는 보수가 위기에 처하면 더 결집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이 14개를 차지할 때 대구와 경북만 자유한국당을 꿋꿋하게 지켰습니다.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2020년 총선에서 12석 가운데 11석을 미래통합당에 몰아줬습니다. 국민의힘이 참패한 2024년 총선에서 12석 전부를 국민의힘에 몰아줬습니다. 윤석열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해 6·3 대선에서 대구 유권자들의 선택은 김문수 67.62%, 이재명 23.22%, 이준석 8.29%였습니다. 대구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대구시장에 민주당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도전합니다. 될까요? 언론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가 근거입니다. 리얼미터가 영남일보 의뢰로 3월22∼23일 대구에 사는 18살 이상 유권자 8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동응답 방식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4%포인트) 결과는 이렇습니다.
김부겸 47.0% : 이진숙 40.4%
김부겸 45.1% : 주호영 38.0%
김부겸 47.6% : 추경호 37.7%
김부겸 47.6% : 윤재옥 32.9%
김부겸 49.3% : 유영하 33.2%
이재만 전 동구청장, 홍석준 전 의원, 최은석 의원과의 양자 대결에는 김부겸 전 총리가 모두 과반 지지를 얻었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그렇다면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무난히 당선되는 것일까요? 그럴 리가요.
저는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시장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고 봅니다. 여론조사에 단순히 응답하는 것과 실제 투표장에 가서 표를 찍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 지지층 상당수가 무당층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구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3월27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를 보겠습니다. 한국갤럽은 매달 마지막 주에 월간 통합자료를 공개합니다. 월 단위로 데이터를 통합하면 표본 수가 4천명으로 늘어나 지역별, 연령별 추이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 평가는 긍정 53%, 부정 30%였습니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26%, 국민의힘 33%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산·경남은 여론조사에서 7~8%포인트 높게 나와야 이기고, 대구는 15%포인트는 더 높게 나와야 이기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병도 원내대표의 분석이 옳다고 봅니다.
대구 출신으로 오랫동안 김부겸 의원 보좌관을 지낸 이진수 씨가 3월5일 ‘피렌체의 식탁’에 “30년 동지가 보는 김부겸의 대구 출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보좌의 정치학’으로 잘 알려진 필자입니다.
“이긴다고 생각하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보수가 위기에 처할수록 역결집하는 대구, 보수 정당에 대한 비난이 사실은 응원인 대구, 실리를 구차스럽게 여기는 대구, 그런 대구에서 선거를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우선 대구가 보수의 아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과 비슷합니다. 광주가 민주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대구는 보수를 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보수를 정면 공격해봤자 별 효과 없습니다. 보수를 버리고 민주로 돌아서라? 광주가 민주주의를 버리겠습니까? 대구 밖에서는 백이면 백, 보수를 버리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반작용을 부릅니다.”
이진수 씨가 3월25일 영남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여전히 관전자로서 저는 이 조사 결과가 우려스럽습니다.”
“역결집은 전국적으로 국힘의 패색이 점점 짙어질 때 불이 붙습니다.”
“이번 지선은 전국 판세가 민주당 쪽으로 진작에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그나마 센 두 후보가 컷오프당해버렸습니다. 지금 대구 국힘이나 지지층의 위기의식은 이만저만 아닐 겁니다.”
“국힘의 선거전략은 뻔합니다. 목이 터져라 보수위기론 설파, 김부겸에 대한 무지막지한 네거티브, 민주당 일당독재론, 정부 여당이 대구를 거지 취급한다는 선동, 장동혁부터 내려와 큰절 읍소 유세, 대대적 조직 가동. 뭐 대충 그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진수 씨는 국민의힘에 화가 잔뜩 난 대구 유권자들이 “지들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며 투표를 외면할 가능성, “미워도 어쩌겠어”라며 국민의힘을 찍을 가능성, “이번 기회에 폭삭 망해야 정신 차린다”며 인물이 앞서는 김부겸 전 총리를 찍을 가능성 등을 제시하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결론을 유보했습니다. 결국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시장 당선 여부는 대구 유권자들에게 달렸다는 뜻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부겸 전 총리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분열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통합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심화하면서 정치에서도 ‘갈라치기의 명수들’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김부겸 전 총리는 통합주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와 싸울 때도 그랬습니다.
정치를 시작한 뒤에는 늘 대화와 타협을 추구했습니다. 정치인 김부겸을 딱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바로 통합입니다.
그런 김부겸 전 총리가 성공한다면 우리 정치가 마침내 분열의 시대를 건너서 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열리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
대구는 본래 불의에 맞서는 ‘항쟁의 도시’였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대구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습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수탈에 가장 먼저 맞선 곳도 대구였습니다. 1946년 ‘10월 항쟁’입니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 씨가 이때 숨졌습니다. 박상희 씨의 영향으로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 알라딘릴게임 져 있습니다.
1956년 대선에서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은 69.98%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대구에서는 무소속 진보 성향 조봉암 후보가 무려 72.26%를 득표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득표율은 겨우 27.73%였습니다. 1960년 대구 2·28 학생 시위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었습니다. 4·19 직후 대구는 교원노조와 혁신정당(경북사 골드몽게임 회당) 등 진보의 근거지였습니다.
대구의 ‘야성’을 꺾은 것은 대구 출신 독재자들이었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미국의 의심을 벗기 위해 대구·경북의 혁신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1974년에는 “혁신계 인사들이 인혁당을 재건해 야마토게임다운로드 민청학련의 유신 반대투쟁을 조종하고 북한의 사주를 받아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해서 발표했습니다. 여정남 도예종 등 8명이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 1975년 4월9일 사형당했습니다. 사법살인이었습니다. 8명 가운데 5명이 대구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안사 대구지부 황금성사이트 인 ‘태백공사’가 대구·경북의 재야, 대학가, 노동계를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온갖 공작과 고문을 동원해 운동권의 씨를 말렸습니다. 대구·경북은 운동권의 황무지가 됐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채찍과 함께 당근을 사용했습니다. 대구·경북 출신들이 정계, 관계, 재계의 핵심에 대거 진출했습니다. 대구는 서서히 보수 기득권 세력의 아성으로 변해 사이다릴게임 갔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국적으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나타났습니다. 호남은 민주당에, 충청은 자민련에 표를 몰아줬습니다. 방어적 지역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대구·경북이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는 것도 정당하다는 명분이 생겼습니다.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명예를 획득했습니다.
대구·경북은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에 의석을 내준 일이 거의 없습니다. 1992년 정주영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이, 1996년 자민련이 대구에서 의석을 얻었습니다. 민주당은 2016년 대구 수성갑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이 유일했습니다.
지방선거는 더 심했습니다. 1995년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특이하게 다자구도로 치러졌습니다. 민자당 출신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36.79%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이의익 자민련 후보 22.14%, 무소속 이해봉 후보 21.35%, 민자당 조해녕 후보 16.87%였습니다. 민주당은 후보를 아예 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선거에서 대구시장 당선자와 득표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한나라당 문희갑 72.00%
2002년 한나라당 조해녕 61.20%
2006년 한나라당 김범일 70.15%
2010년 한나라당 김범일 72.92%
2014년 새누리당 권영진 55.95%
2018년 자유한국당 권영진 53.73%
2022년 국민의힘 홍준표 78.75%
대구는 보수가 위기에 처하면 더 결집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민주당이 14개를 차지할 때 대구와 경북만 자유한국당을 꿋꿋하게 지켰습니다.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2020년 총선에서 12석 가운데 11석을 미래통합당에 몰아줬습니다. 국민의힘이 참패한 2024년 총선에서 12석 전부를 국민의힘에 몰아줬습니다. 윤석열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해 6·3 대선에서 대구 유권자들의 선택은 김문수 67.62%, 이재명 23.22%, 이준석 8.29%였습니다. 대구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대구시장에 민주당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도전합니다. 될까요? 언론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가 근거입니다. 리얼미터가 영남일보 의뢰로 3월22∼23일 대구에 사는 18살 이상 유권자 8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동응답 방식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4%포인트) 결과는 이렇습니다.
김부겸 47.0% : 이진숙 40.4%
김부겸 45.1% : 주호영 38.0%
김부겸 47.6% : 추경호 37.7%
김부겸 47.6% : 윤재옥 32.9%
김부겸 49.3% : 유영하 33.2%
이재만 전 동구청장, 홍석준 전 의원, 최은석 의원과의 양자 대결에는 김부겸 전 총리가 모두 과반 지지를 얻었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그렇다면 김부겸 전 총리가 대구시장에 무난히 당선되는 것일까요? 그럴 리가요.
저는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시장 당선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고 봅니다. 여론조사에 단순히 응답하는 것과 실제 투표장에 가서 표를 찍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 지지층 상당수가 무당층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구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3월27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를 보겠습니다. 한국갤럽은 매달 마지막 주에 월간 통합자료를 공개합니다. 월 단위로 데이터를 통합하면 표본 수가 4천명으로 늘어나 지역별, 연령별 추이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 평가는 긍정 53%, 부정 30%였습니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26%, 국민의힘 33%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잘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산·경남은 여론조사에서 7~8%포인트 높게 나와야 이기고, 대구는 15%포인트는 더 높게 나와야 이기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병도 원내대표의 분석이 옳다고 봅니다.
대구 출신으로 오랫동안 김부겸 의원 보좌관을 지낸 이진수 씨가 3월5일 ‘피렌체의 식탁’에 “30년 동지가 보는 김부겸의 대구 출마”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보좌의 정치학’으로 잘 알려진 필자입니다.
“이긴다고 생각하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보수가 위기에 처할수록 역결집하는 대구, 보수 정당에 대한 비난이 사실은 응원인 대구, 실리를 구차스럽게 여기는 대구, 그런 대구에서 선거를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우선 대구가 보수의 아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과 비슷합니다. 광주가 민주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만큼 대구는 보수를 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보수를 정면 공격해봤자 별 효과 없습니다. 보수를 버리고 민주로 돌아서라? 광주가 민주주의를 버리겠습니까? 대구 밖에서는 백이면 백, 보수를 버리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반작용을 부릅니다.”
이진수 씨가 3월25일 영남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여전히 관전자로서 저는 이 조사 결과가 우려스럽습니다.”
“역결집은 전국적으로 국힘의 패색이 점점 짙어질 때 불이 붙습니다.”
“이번 지선은 전국 판세가 민주당 쪽으로 진작에 기울어진 상태입니다.”
“그나마 센 두 후보가 컷오프당해버렸습니다. 지금 대구 국힘이나 지지층의 위기의식은 이만저만 아닐 겁니다.”
“국힘의 선거전략은 뻔합니다. 목이 터져라 보수위기론 설파, 김부겸에 대한 무지막지한 네거티브, 민주당 일당독재론, 정부 여당이 대구를 거지 취급한다는 선동, 장동혁부터 내려와 큰절 읍소 유세, 대대적 조직 가동. 뭐 대충 그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진수 씨는 국민의힘에 화가 잔뜩 난 대구 유권자들이 “지들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며 투표를 외면할 가능성, “미워도 어쩌겠어”라며 국민의힘을 찍을 가능성, “이번 기회에 폭삭 망해야 정신 차린다”며 인물이 앞서는 김부겸 전 총리를 찍을 가능성 등을 제시하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결론을 유보했습니다. 결국 김부겸 전 총리의 대구시장 당선 여부는 대구 유권자들에게 달렸다는 뜻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부겸 전 총리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분열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통합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심화하면서 정치에서도 ‘갈라치기의 명수들’이 성공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김부겸 전 총리는 통합주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와 싸울 때도 그랬습니다.
정치를 시작한 뒤에는 늘 대화와 타협을 추구했습니다. 정치인 김부겸을 딱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바로 통합입니다.
그런 김부겸 전 총리가 성공한다면 우리 정치가 마침내 분열의 시대를 건너서 통합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열리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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