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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지난 2007년 9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초청됐을 때의 모습. 왼쪽은 그가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에 그린 달마도. 연합뉴스·쿨투라 제공
사상가 함석헌과 시인 김수영, 김지하가 공동 1위. 철학자 박종홍과 사회학자 김진균이 공동 2위. 경제학자 박현채와 문학평론가 백낙청이 공동 3위.
‘지난 60년간 한국 지성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교수신문이 지난 2005년 학자 100명에게 이렇게 물어서 나온 결과이다.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여기서 거론된 김지하와 백낙청은 젊은 시절에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다. 중년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티격났다. 민족·민중문학과 생명사상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컸다. 창비 편집인으로 문화계 권력이 된 백낙청이 자신을 홀대한다고 여긴 김지하의 항심도 작용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에서 정치 진영의 반대쪽에 섰다. 김지하는 바다이야기APK 그해 11월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엔 조선일보 특별기고를 통해 백낙청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오랜 세월 한국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온’ 백낙청이 한류(韓流) 르네상스의 길을 가로막는 ‘쑥부쟁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백낙청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야권 원로모임 ‘원탁회의’ 좌장 역할을 하 릴박스 고 있었다. 한국 지성사의 거목인 두 사람이 정치권력 쟁투의 뒷배로 나선 꼴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자, 좌파진보 진영에서 김지하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변절자라는 욕설이 그에게 다시 날아들었다.
지난 2009년 강원 원주시 박경리 작 골드몽게임 가 옛집에 세워진 동상을 보며 사위 김지하(왼쪽), 딸 김영주 씨가 웃고 있다. 연합뉴스
◇“모성이 새 문명 열 것”
이런 비난이 쏟아질 걸 알면서도 왜 박근혜를 지지했을까. 그는 생전 그 이유를 수차례 밝혔다. 그 핵심은 “여성의 모성이 새로운 문명을 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었 야마토게임하기 다. 자기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권력자의 딸조차 품는 것이 그런 시대에 맞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이다.
김지하는 나중에 그 판단이 잘못됐다고 후회했다. 박근혜가 여성 리더십으로 후천개벽의 새 시대를 열어주리라고 믿었으나 도리어 구태의 친권(親權) 정치로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2012년 당시에 김지하의 공격을 받은 백낙청은 언론 인터뷰에서 “좀 슬프다”라고만 했다. 이는 김지하의 글 내용을 비껴가는 것이었다. 그 글은 우리 문학인들이 문예를 부흥시켜 이 나라를 문화대국으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백낙청 당신은 왜 한국미학의 전통을 탐색하지 않고 엉터리 시국담이나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말투는 질문이라기보다 질타에 가깝긴 했다.
백낙청은 대거리를 하는 대신에 외면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가 김지하 사후에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책 ‘백낙청 회화록’에 수록한 자신과 김지하의 1985년 대담 내용을 설명하면서였다. 그 대담에서 김지하가 민중운동과 생명사상을 조화시킨 생각을 밝히고 있다고 백낙청은 소개했다. 그는 “1985년이 김지하의 피크”라고 단언했다. 이후엔 생명사상에만 치우쳤다며 낮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지하가 젊은 사람들에겐 잊힌 시인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재평가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김지하 재평가 작업은 2022년 6월 ‘49재 추모문화제’에서부터 이뤄졌다. 친구인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과 후배인 임진택 판소리 명창, 유홍준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애썼다. 세월은 반목했던 이들에게 화해의 힘을 주고, 사별은 너그러움을 낳는 것일까. 김지하와 거리를 뒀던 좌파 인사들이 추모제에 많이 참여했다.
그해 7월엔 문예지 쿨투라에서 고인을 재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김지하를 사숙한 시인 손정순이 대표로 있는 잡지였다. 2023년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이 열렸고, 염무웅 문학평론가와 이부영·임진택·유홍준이 엮은 책 ‘김지하를 다시 본다’(개마서원)가 나왔다.
2024년엔 임동확·홍용회·이승하·김재홍 등 중견 문학인과 강주영·임정희·주요섭 등 철학, 미학, 민속, 사회학 연구자 등 20여 명이 ‘김지하 포럼’을 결성했다. 오해와 편견의 그늘을 걷어내고 그의 문학과 사상을 제대로 연구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40년 앞서갔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하나같이 탄식하는 말이 있다. “김지하가 너무 앞서갔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를 그는 40여 년 전에 예견했다. 전염병 바이러스 팬데믹도 일찌감치 경고했다. 그는 문명 대전환의 필요성을 외쳤으나, 광야의 예언처럼 쓸쓸하게 맴돌았다. 독재 정권을 갈아엎는 것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그의 옛 동지들, 당장의 살림을 불리기에 급급한 세상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생명 사상을 표현한 말들은 학자들에게조차 난삽하게 들렸다. 도대체 ‘율려(律呂)’는 무엇이고, 또 ‘흰그늘’은 무엇인가.
그는 고대 동양의 음(音) 조율기인 율려에서 천지(天地), 음양(陰陽)의 조화로운 정신을 봤다. 그걸 현대 문명이 되찾아서 신인간주의 문화운동을 펼쳐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19세기 말 최제우의 동학 우주론이 그 조화를 지향한다는 걸 그는 꿰뚫어봤다. 같은 시기에 발현한 김일부의 정역(正易)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周易)으로서 ‘조양율음(調陽律陰)’, 즉 양과 음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예언한다. 주역의 세상이 양(남성성)을 높이고 음(여성성)을 짓누른다면, 정역의 우주는 음이 세상을 보듬고 양이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김지하는 천지인(天地人) 조화를 이상으로 했던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神市)를 통해 바람직한 모둠살이의 원형을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국수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헤겔, 들뢰즈, 프리고진 등 서양 사상가들을 통달한 후 동양으로 와서 생명 사상에 천착했다. 동서양의 철학과 미학을 관통하며 그 중심에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와 사유체계를 뒀다.
그는 예술 미학의 깊숙이에는 삶의 고통을 삭인 그늘이 있어야 한다고 봤고, 그 고통 속에서 피어오르는 빛을 ‘흰그늘’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독창적 표현은 서구 중심의 미학론을 넘어서겠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김지하는 한류 문화르네상스를 일찍이 주창했다. 그가 살아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케데헌)’의 성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우리 고대문화에서 르네상스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가져와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일갈했을까.
김지하가 2001년에 그린 ‘묵난- 기우뚱한 균형’. 그는 이 작품이 기울어짐 속에서도 조화를 지향하는 ‘미(美)의 율려(律呂)’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사상을 표명했다. 쿨투라 제공
◇“대학연극 때 최불암과 교우”
김지하는 서양문학에서 비롯한 현대시 형식의 운문 작품을 쓰기도 했으나, 그의 창조성은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담시’에서 빛났다. 1970년대에 쓴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 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大說 南(대설 남)’은 한국 문학사에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작품이었다.
이는 그가 1960년대에 마당극을 창출한 연극인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인 김지하(金芝河)로 알려지기 전에 본명인 김영일(金英一)로 활동할 때였다. 그는 대학 연극에서 꽤 알려진 이론가이자 배우였다. 그즈음 최불암 배우를 알게 돼 벗으로 지냈다. (최 배우가 김지하 모창을 하는 걸 들은 적 있는데, 친구에 대한 각별한 우의를 느낄 수 있었다.)
김지하 시는 저항과 혁명 정신을 품었다는 점에서 선배 시인 김수영(1921∼1968)의 그것과 비견된다. 20년 나이차가 나는 두 사람의 시 세계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김수영은 억압과 관습을 시 형식에서조차 깨부수려 했기에 전통문화에 눈을 두지 않았다. 김지하는 우리 판소리 가락의 신명을 시 속에 끌어와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여는 에너지로 삼았다. 두 사람의 문학과 사상을 함께 다룬 논문들이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김지하 시는 생명의 약동 그 자체”라고 했다. 철학자 김용옥이 오에 작가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전한 말이다. “한국인의 감성엔 어느 민족도 따라갈 수 없는 생명력이 있어요. 김지하 시는 거침 속에서 우주적 생명이 발랄하게 뛰어놀아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한 바람이 그의 언어를 감돕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는 이 ‘우주적 생명’을 더 귀하게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이 만든 기계에 지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새 문명을 능동적으로 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소통하려 그림도 그려… 현대문인화의 새 경지묵난·달마도 등 전시
“나는 지하에서 해방되고 싶다.”
김지하는 환갑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쓴 필명 ‘지하’(芝河)를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꽃 한송이라는 의미의 본명 ‘영일’(英一)을 사용할 것이다. 다만 영일이 젊은 사람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노겸’(勞謙·근로와 겸손)이라는 호로 불렸으면 한다.”
그에 따르면, 20대 초반 술에 취해 길바닥 입간판에서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일본 출판인들이 ‘지초의 강물’이란 뜻의 한자(芝河)를 붙였다고 한다. 그는 필명 지하를 쓰면서부터 그 운명에 갇혔다고 했다. 감옥, 정보부 지하실, 싸구려 지하 술집, 허름한 삼류여관, 뿌연 형광등 속의 병원 침대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본명을 찾아 생명사상의 꽃 한송이를 피우고자 했으나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썼다. 1980년대부터 난초 그림을 그려 지인들에게 선물했고, 재야단체 기금마련전에 희사했다. 1990년대엔 바람에 나부끼는 풍란을 그렸다. 2001년 개인전에선 난초 그림을 선보이며 ‘기우뚱한 균형’의 율려(律呂)를 표방했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림을 즐겨 그렸으나 집안 어른들이 화가는 가난하게 산다며 말렸다고 한다. 그 한(恨)을 노년에 풀고자 했다. 2014년 전시에서 묵매도, 달마도, 수묵산수도, 채색모란도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시인의 여기(餘技)를 넘어 현대문인화의 한 경지를 연 것이었다.
그는 2018년 작가출판사를 통해 시집(‘흰그늘’)과 산문집(‘우주생명학’)을 펴내며 “생애 마지막 책”이라고 밝혔다. 그 소식을 문화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하면서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여기진 않았으나,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때 그는 시집 맨 앞에 이렇게 썼다. ‘다섯 줄로/내 마지막 시를 쓴다./마지막 운, /나/아내를 모심.’ 이렇게 절실히 ‘모심’을 다짐했지만, 아내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듬해 73세로 타계했다. 3년 후 그도 뒤를 따라갔다.
장재선 기
사상가 함석헌과 시인 김수영, 김지하가 공동 1위. 철학자 박종홍과 사회학자 김진균이 공동 2위. 경제학자 박현채와 문학평론가 백낙청이 공동 3위.
‘지난 60년간 한국 지성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교수신문이 지난 2005년 학자 100명에게 이렇게 물어서 나온 결과이다.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여기서 거론된 김지하와 백낙청은 젊은 시절에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다. 중년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티격났다. 민족·민중문학과 생명사상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컸다. 창비 편집인으로 문화계 권력이 된 백낙청이 자신을 홀대한다고 여긴 김지하의 항심도 작용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에서 정치 진영의 반대쪽에 섰다. 김지하는 바다이야기APK 그해 11월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엔 조선일보 특별기고를 통해 백낙청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오랜 세월 한국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온’ 백낙청이 한류(韓流) 르네상스의 길을 가로막는 ‘쑥부쟁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백낙청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야권 원로모임 ‘원탁회의’ 좌장 역할을 하 릴박스 고 있었다. 한국 지성사의 거목인 두 사람이 정치권력 쟁투의 뒷배로 나선 꼴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자, 좌파진보 진영에서 김지하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변절자라는 욕설이 그에게 다시 날아들었다.
지난 2009년 강원 원주시 박경리 작 골드몽게임 가 옛집에 세워진 동상을 보며 사위 김지하(왼쪽), 딸 김영주 씨가 웃고 있다. 연합뉴스
◇“모성이 새 문명 열 것”
이런 비난이 쏟아질 걸 알면서도 왜 박근혜를 지지했을까. 그는 생전 그 이유를 수차례 밝혔다. 그 핵심은 “여성의 모성이 새로운 문명을 여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었 야마토게임하기 다. 자기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권력자의 딸조차 품는 것이 그런 시대에 맞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이다.
김지하는 나중에 그 판단이 잘못됐다고 후회했다. 박근혜가 여성 리더십으로 후천개벽의 새 시대를 열어주리라고 믿었으나 도리어 구태의 친권(親權) 정치로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2012년 당시에 김지하의 공격을 받은 백낙청은 언론 인터뷰에서 “좀 슬프다”라고만 했다. 이는 김지하의 글 내용을 비껴가는 것이었다. 그 글은 우리 문학인들이 문예를 부흥시켜 이 나라를 문화대국으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백낙청 당신은 왜 한국미학의 전통을 탐색하지 않고 엉터리 시국담이나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말투는 질문이라기보다 질타에 가깝긴 했다.
백낙청은 대거리를 하는 대신에 외면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가 김지하 사후에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책 ‘백낙청 회화록’에 수록한 자신과 김지하의 1985년 대담 내용을 설명하면서였다. 그 대담에서 김지하가 민중운동과 생명사상을 조화시킨 생각을 밝히고 있다고 백낙청은 소개했다. 그는 “1985년이 김지하의 피크”라고 단언했다. 이후엔 생명사상에만 치우쳤다며 낮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지하가 젊은 사람들에겐 잊힌 시인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재평가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김지하 재평가 작업은 2022년 6월 ‘49재 추모문화제’에서부터 이뤄졌다. 친구인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과 후배인 임진택 판소리 명창, 유홍준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이 애썼다. 세월은 반목했던 이들에게 화해의 힘을 주고, 사별은 너그러움을 낳는 것일까. 김지하와 거리를 뒀던 좌파 인사들이 추모제에 많이 참여했다.
그해 7월엔 문예지 쿨투라에서 고인을 재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김지하를 사숙한 시인 손정순이 대표로 있는 잡지였다. 2023년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이 열렸고, 염무웅 문학평론가와 이부영·임진택·유홍준이 엮은 책 ‘김지하를 다시 본다’(개마서원)가 나왔다.
2024년엔 임동확·홍용회·이승하·김재홍 등 중견 문학인과 강주영·임정희·주요섭 등 철학, 미학, 민속, 사회학 연구자 등 20여 명이 ‘김지하 포럼’을 결성했다. 오해와 편견의 그늘을 걷어내고 그의 문학과 사상을 제대로 연구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는 40년 앞서갔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하나같이 탄식하는 말이 있다. “김지하가 너무 앞서갔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를 그는 40여 년 전에 예견했다. 전염병 바이러스 팬데믹도 일찌감치 경고했다. 그는 문명 대전환의 필요성을 외쳤으나, 광야의 예언처럼 쓸쓸하게 맴돌았다. 독재 정권을 갈아엎는 것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그의 옛 동지들, 당장의 살림을 불리기에 급급한 세상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생명 사상을 표현한 말들은 학자들에게조차 난삽하게 들렸다. 도대체 ‘율려(律呂)’는 무엇이고, 또 ‘흰그늘’은 무엇인가.
그는 고대 동양의 음(音) 조율기인 율려에서 천지(天地), 음양(陰陽)의 조화로운 정신을 봤다. 그걸 현대 문명이 되찾아서 신인간주의 문화운동을 펼쳐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19세기 말 최제우의 동학 우주론이 그 조화를 지향한다는 걸 그는 꿰뚫어봤다. 같은 시기에 발현한 김일부의 정역(正易)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周易)으로서 ‘조양율음(調陽律陰)’, 즉 양과 음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예언한다. 주역의 세상이 양(남성성)을 높이고 음(여성성)을 짓누른다면, 정역의 우주는 음이 세상을 보듬고 양이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김지하는 천지인(天地人) 조화를 이상으로 했던 단군조선 이전의 신시(神市)를 통해 바람직한 모둠살이의 원형을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국수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헤겔, 들뢰즈, 프리고진 등 서양 사상가들을 통달한 후 동양으로 와서 생명 사상에 천착했다. 동서양의 철학과 미학을 관통하며 그 중심에 우리 고유의 정신세계와 사유체계를 뒀다.
그는 예술 미학의 깊숙이에는 삶의 고통을 삭인 그늘이 있어야 한다고 봤고, 그 고통 속에서 피어오르는 빛을 ‘흰그늘’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독창적 표현은 서구 중심의 미학론을 넘어서겠다는 의지에서 나왔다.
김지하는 한류 문화르네상스를 일찍이 주창했다. 그가 살아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케데헌)’의 성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우리 고대문화에서 르네상스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가져와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일갈했을까.
김지하가 2001년에 그린 ‘묵난- 기우뚱한 균형’. 그는 이 작품이 기울어짐 속에서도 조화를 지향하는 ‘미(美)의 율려(律呂)’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사상을 표명했다. 쿨투라 제공
◇“대학연극 때 최불암과 교우”
김지하는 서양문학에서 비롯한 현대시 형식의 운문 작품을 쓰기도 했으나, 그의 창조성은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담시’에서 빛났다. 1970년대에 쓴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 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大說 南(대설 남)’은 한국 문학사에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작품이었다.
이는 그가 1960년대에 마당극을 창출한 연극인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인 김지하(金芝河)로 알려지기 전에 본명인 김영일(金英一)로 활동할 때였다. 그는 대학 연극에서 꽤 알려진 이론가이자 배우였다. 그즈음 최불암 배우를 알게 돼 벗으로 지냈다. (최 배우가 김지하 모창을 하는 걸 들은 적 있는데, 친구에 대한 각별한 우의를 느낄 수 있었다.)
김지하 시는 저항과 혁명 정신을 품었다는 점에서 선배 시인 김수영(1921∼1968)의 그것과 비견된다. 20년 나이차가 나는 두 사람의 시 세계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김수영은 억압과 관습을 시 형식에서조차 깨부수려 했기에 전통문화에 눈을 두지 않았다. 김지하는 우리 판소리 가락의 신명을 시 속에 끌어와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여는 에너지로 삼았다. 두 사람의 문학과 사상을 함께 다룬 논문들이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김지하 시는 생명의 약동 그 자체”라고 했다. 철학자 김용옥이 오에 작가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전한 말이다. “한국인의 감성엔 어느 민족도 따라갈 수 없는 생명력이 있어요. 김지하 시는 거침 속에서 우주적 생명이 발랄하게 뛰어놀아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한 바람이 그의 언어를 감돕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는 이 ‘우주적 생명’을 더 귀하게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이 만든 기계에 지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새 문명을 능동적으로 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소통하려 그림도 그려… 현대문인화의 새 경지묵난·달마도 등 전시
“나는 지하에서 해방되고 싶다.”
김지하는 환갑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쓴 필명 ‘지하’(芝河)를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꽃 한송이라는 의미의 본명 ‘영일’(英一)을 사용할 것이다. 다만 영일이 젊은 사람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노겸’(勞謙·근로와 겸손)이라는 호로 불렸으면 한다.”
그에 따르면, 20대 초반 술에 취해 길바닥 입간판에서 ‘지하’라는 글자를 보고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일본 출판인들이 ‘지초의 강물’이란 뜻의 한자(芝河)를 붙였다고 한다. 그는 필명 지하를 쓰면서부터 그 운명에 갇혔다고 했다. 감옥, 정보부 지하실, 싸구려 지하 술집, 허름한 삼류여관, 뿌연 형광등 속의 병원 침대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본명을 찾아 생명사상의 꽃 한송이를 피우고자 했으나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썼다. 1980년대부터 난초 그림을 그려 지인들에게 선물했고, 재야단체 기금마련전에 희사했다. 1990년대엔 바람에 나부끼는 풍란을 그렸다. 2001년 개인전에선 난초 그림을 선보이며 ‘기우뚱한 균형’의 율려(律呂)를 표방했다.
그는 어린 시절 그림을 즐겨 그렸으나 집안 어른들이 화가는 가난하게 산다며 말렸다고 한다. 그 한(恨)을 노년에 풀고자 했다. 2014년 전시에서 묵매도, 달마도, 수묵산수도, 채색모란도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시인의 여기(餘技)를 넘어 현대문인화의 한 경지를 연 것이었다.
그는 2018년 작가출판사를 통해 시집(‘흰그늘’)과 산문집(‘우주생명학’)을 펴내며 “생애 마지막 책”이라고 밝혔다. 그 소식을 문화일보가 단독으로 보도하면서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여기진 않았으나,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때 그는 시집 맨 앞에 이렇게 썼다. ‘다섯 줄로/내 마지막 시를 쓴다./마지막 운, /나/아내를 모심.’ 이렇게 절실히 ‘모심’을 다짐했지만, 아내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듬해 73세로 타계했다. 3년 후 그도 뒤를 따라갔다.
장재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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