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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우진'은 누나 '시은'과 악기 수리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가수의 꿈을 키우는 청년이다. 하지만 오디션에 꾸준히 참가해도 매번 탈락하고 만다. 이번에도 남매가 함께 출전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낙담한 우진을 시은은 위로해주지만, 기운이 빠지는 건 도리가 없다.
시은은 먼저 귀가하고 홀로 생각에 잠긴 우진, 영업을 끝낸 가게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고민하다 열어주니 수상쩍은 남자가 고물 기타를 내밀며 수리를 의뢰한다. 제대로 고치기엔 영 견적이 안 나오지만, 남자는 33개 부품을 갈면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릴짱릴게임
점점 듣는 행위에서 보는 행위로 향하는 대중음악
▲ <슬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1981년 8월 1일, 24시간 음악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MTV'가 개국 첫 방송을 개시한다. 송출된 최초 뮤직비디오는 Buggles의 "V 바다신2게임 ideo Killed the Radio Star". 이 상징적 일화는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전환하게 만든 계기로 훗날 전설이 되었다. 스튜디오 녹음과 더불어 홍보영상이 성공의 결정적 요소로 확고히 자리매김, 혹은 역전하는 결정적 분기점인 셈이다. 이젠 장르 불문하고 대중음악에서 영상 이미지는 빠질 수 없는 핵심이 되었다.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한국 역시 다소 늦긴 했어도 케이블 채널 도입과 함께 뮤직비디오 열풍이 1990년대 이후 불어닥친다. 한국판 MTV를 꿈꾸며 Mnet 등의 음악 채널이 탄생하고, 종일 여기에서 뮤직비디오가 재생된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단순하게 음악에 맞춰 배경화면을 조성하는 것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미된다. 뮤직비디오에 비디오 아트와 영화적 요소가 본격 골드몽 도입되기 시작한다. 화려한 댄스나 힙합 부류에 밀리지 않기 위해 발라드 가수들이 시선을 잡아끌 대작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시도한다.
옆 나라 일본 경우도 흥미롭다. 국내에도 익숙한 이름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구로사와 기요시, 이와이 슌지, 나카시마 테츠야 등은 일본 정상급 아이돌인 AKB48이나 노기자카46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그들의 기존 작업과 연장선, 혹은 색다른 시도로 화제를 만든 바 있다.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팬과 공유하고 확장하고자 가수들 역시 영상화에 도전한다. 활동과 공연 실황 단순 기록영화를 넘어 영화 형태의 연출이 자연스럽게 감행된다. 국내에도 영향력을 일정하게 행사한 건 당연한 결과다.
극장과 영화, 음악계가 필연적으로 모이다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봉을 준비하던 수많은 영화가 창고로 향하면서 텅빈 극장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개시한다. 극장은 영화를 트는 곳이란 전제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 실황중계가 유휴 상영관 일부를 점유하고, 일반 관객과 별개로 고유의 커뮤니티 및 팬덤 집단이 참전한다. 오프라인 공연이 막힌 음악계 역시 적극적으로 영상 미디어에 주목한다. 위기와 함께 '필사의 도전'이 개시된다. 어느새 매주 극장가 신작 목록에 치밀하게 기획된 음악 기반 영상물이 기존 영화들과 함께 지분을 차지한 걸 확인하게 된다.
솔로 가수로서 전 세계 공연 일정을 감행할 만큼 확고한 인기와 위상을 가진 WOODZ(본명: 조승연) 역시 자신의 군 전역 후 신보 및 공연 활동과 연계해 다른 가수와 차별화를 위한 영상 제작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게 흔한 공연 실황이나 홍보 비디오 차원이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 박세영과 협업하고, 저스틴 H. 민과 정회린이란 선 굵은 연기자와 더불어 가수 본인이 연기에 도전한다. 그 결과물은 59분 분량, 극장 개봉용 영화로 완성된다. 음악의 영상화란 추세는 분명하지만, 이 정도로 과감한 시도는 흔하지 않다.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는 'Cinema' 규격에 부합하는 작업이지만, 전통적인 이야기 서사 위주로 전개되진 않는다. 제목부터 그런 색깔을 짐작하게 만든다. 기타를 연주할 때 줄과 줄 사이를 미끄러지듯 훑는 'Slide', 여러 줄을 긁어내는 'Strum'. 속도와 소리를 줄여 여백을 형성하는 'Mute'를 조합한 영화 제목은 이 작품에서 문학적인 서사는 '거들뿐',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다채로운 요소가 조합되어 공감각을 끌어내는 데 집중할 것을 예고한다. 마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을 즐기는 감각과 통하는 방식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신화와 고전에서 이미 익숙하도록 목격한 이야기, 예술에 미친 나머지 가장 소중한 것 – 영혼 같은 – 마저 희생하거나 교환하는 자의 사연이 펼쳐진다. 우진은 변두리 악기 수리점을 호구지책으로 삼지만, 반드시 가수로 무대에 서고 싶다. 그때 변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수수께끼의 남자 '남기'가 문을 두드린다. 처음 봤을 땐 구제불능 고물 기타에 불과했지만, 묘하게 시선을 빼앗긴다. 난해한 설계도에 따라 조심스레 기타에 맞는 부품을 찾던 그는 어느새 기타에 혼을 불어넣듯 매달린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그런 우진에게 다가오지만, 그의 갈망은 세속적 성공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기존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감상법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영화는 시종일관 질주하는 감각으로 넘실거린다. 기본 줄거리는 전혀 어렵지 않은데 과연 주인공의 질주가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종료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기승전결로 일직선으로 향하는 통상 전개와는 다른 서사 덕분이다. 오로지 달리는 우진의 뒤를 쫓듯 따라서 달려야 간신히 놓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다. 정신없이 추적하는데 눈과 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가수의 음악이 들었다 놨다 리듬감을 전하고, 과잉과 폭주로 점철된 영상이 시선을 빼앗는다. 무엇 하나 정적인 조화랄 것 없이 불협화음 즉흥공연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다.
화면 가득히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 이미지엔 절제와 균형을 찾기 힘들다. 시각효과는 흥건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요즘 흔해 빠진 말끔한 컴퓨터 그래픽 터치는 찾기 힘들다. 깔끔한데 뭔가 허전한 풍경 대신에 구질구질하고 눈이 아파질 법한데 묘하게 눈가에 꽂히는 과한 이미지가 철철 흐른다. 인물의 속내는 대사나 해설로 제시되지 않지만, 감각에 맡기면 어렴풋하게 유추할 수 있다. 흐릿해도 흥미로운 감정선이다.
우진은 성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 누나는 꿈과 현실 사이를 단단히 발 딛고 서 있지만, 우진은 환상을 좇고픈 속마음을 감춘 상태다. 깊은 밤 불청객의 노크는 파우스트 박사를 찾아온 메피스토 악마의 유혹과 다르지 않다. 그는 정체불명의 기타가 가진 매혹에 빠지고, 이것이 자신의 꿈을 이뤄주리라 직감한다. 그렇게 수리점 기술자로서 의뢰인이 맡긴 물건을 자기 차지로 만든다. 기타의 재탄생 과정은 음악인으로 성공하는 경로와 합체한다. 성공을 맛보지만, 불안과 욕망은 쌍으로 우진을 옭아맨다. 이중의 욕구는 갈증으로 바뀌고, 주인공은 어떻게든 궁극의 기타를 독차지하려 한다.
타는 목마름 같은 욕망이 이끄는 길에서 우진은 '네가 선택한 길'이라는 듯 조롱하며 불쑥 돌아온 남기와 대면하고, 도플갱어 같은 존재와 마주한다. 갈증을 다스리려면 기타는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이 과연 만족일까, 아니면 파멸일까. 어쩌면 그 역시 결말을 예상하는 듯하다. 기타 줄에 긁힌 상처는 전염병처럼 손가락 끝에서 퍼져가고, '절대반지'처럼 자신의 운명과 연결되듯 시시각각 형상을 변이하는 기타는 주인공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다. 나탈리 포트만이 <블랙스완>에서 성공을 위해 강박에 빠져 파멸로 향하듯.
이 영화가 극장가에 던지는 도전의 결말은?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는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혼종'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전면화한다. 또래 독립영화 작가들과 달리 '장르' 영화적 특성을 과감히 구사하며 시각예술 실험에 매진하는 박세영 감독의 스타일과 음악인으로서 매끈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던 일상 모습과 다른 자신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던 WOODZ의 야심이 만나 추상 표현주의 실험을 마음껏 시도한다. 전형적 서사구조를 과감히 포기한 대신에 일종의 '콜라주'를 추구하는 '기술실증 모델' 같은 시도다.
따라서 이 작품을 글로 풀이하기란 무척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일단 시청각적으로 목격해야 한다. 누군가는 과잉된 이미지와 사운드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다른 누군가는 속빈 강정처럼 현란하긴 한데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설명하기보단 '감각하라!' 외치는 듯 메시지가 선명한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의 감상법은 관객에게도 관행을 넘어선 도전을 요청한다. 그래서 영화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때 어떤 부조화가 일어날지 오히려 궁금하다.
극장의 위기 속에 관성을 깬 파격 시도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100년 넘게 영화 상영에 최적화한 극장 모델도 시험에 든 지 오래다. '블랙 큐브', '다크 큐브'라 불리며 정숙한 가운데 수동적으로 집중해 관람하는 게 궁극의 감상법으로 굳어진 포맷 역시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를 관람하며 현란한 질주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고 머리가 저절로 흔들릴 텐데, 과연 극장은 이 변종과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답을 찾기보단 이런 실험의 결과가 흥미진진한 법이다. 앞으로 계속될 영상 실험의 첨단에 선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작품정보>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Slide Strum Mute2026 한국 미스터리 쇼트 필름2026.02.26. 개봉 59분 15세 관람가감독/촬영/편집 박세영각본 박세영, 오유경원안 WOODZ출연 WOODZ, 저스틴 민, 정회린제작/제공 EDAM엔터테인먼트공동제작 OS earth배급 엣나인필
'우진'은 누나 '시은'과 악기 수리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가수의 꿈을 키우는 청년이다. 하지만 오디션에 꾸준히 참가해도 매번 탈락하고 만다. 이번에도 남매가 함께 출전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낙담한 우진을 시은은 위로해주지만, 기운이 빠지는 건 도리가 없다.
시은은 먼저 귀가하고 홀로 생각에 잠긴 우진, 영업을 끝낸 가게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고민하다 열어주니 수상쩍은 남자가 고물 기타를 내밀며 수리를 의뢰한다. 제대로 고치기엔 영 견적이 안 나오지만, 남자는 33개 부품을 갈면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릴짱릴게임
점점 듣는 행위에서 보는 행위로 향하는 대중음악
▲ <슬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1981년 8월 1일, 24시간 음악 케이블 텔레비전 채널 'MTV'가 개국 첫 방송을 개시한다. 송출된 최초 뮤직비디오는 Buggles의 "V 바다신2게임 ideo Killed the Radio Star". 이 상징적 일화는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전환하게 만든 계기로 훗날 전설이 되었다. 스튜디오 녹음과 더불어 홍보영상이 성공의 결정적 요소로 확고히 자리매김, 혹은 역전하는 결정적 분기점인 셈이다. 이젠 장르 불문하고 대중음악에서 영상 이미지는 빠질 수 없는 핵심이 되었다.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한국 역시 다소 늦긴 했어도 케이블 채널 도입과 함께 뮤직비디오 열풍이 1990년대 이후 불어닥친다. 한국판 MTV를 꿈꾸며 Mnet 등의 음악 채널이 탄생하고, 종일 여기에서 뮤직비디오가 재생된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단순하게 음악에 맞춰 배경화면을 조성하는 것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미된다. 뮤직비디오에 비디오 아트와 영화적 요소가 본격 골드몽 도입되기 시작한다. 화려한 댄스나 힙합 부류에 밀리지 않기 위해 발라드 가수들이 시선을 잡아끌 대작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시도한다.
옆 나라 일본 경우도 흥미롭다. 국내에도 익숙한 이름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구로사와 기요시, 이와이 슌지, 나카시마 테츠야 등은 일본 정상급 아이돌인 AKB48이나 노기자카46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그들의 기존 작업과 연장선, 혹은 색다른 시도로 화제를 만든 바 있다.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팬과 공유하고 확장하고자 가수들 역시 영상화에 도전한다. 활동과 공연 실황 단순 기록영화를 넘어 영화 형태의 연출이 자연스럽게 감행된다. 국내에도 영향력을 일정하게 행사한 건 당연한 결과다.
극장과 영화, 음악계가 필연적으로 모이다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봉을 준비하던 수많은 영화가 창고로 향하면서 텅빈 극장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개시한다. 극장은 영화를 트는 곳이란 전제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 실황중계가 유휴 상영관 일부를 점유하고, 일반 관객과 별개로 고유의 커뮤니티 및 팬덤 집단이 참전한다. 오프라인 공연이 막힌 음악계 역시 적극적으로 영상 미디어에 주목한다. 위기와 함께 '필사의 도전'이 개시된다. 어느새 매주 극장가 신작 목록에 치밀하게 기획된 음악 기반 영상물이 기존 영화들과 함께 지분을 차지한 걸 확인하게 된다.
솔로 가수로서 전 세계 공연 일정을 감행할 만큼 확고한 인기와 위상을 가진 WOODZ(본명: 조승연) 역시 자신의 군 전역 후 신보 및 공연 활동과 연계해 다른 가수와 차별화를 위한 영상 제작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게 흔한 공연 실황이나 홍보 비디오 차원이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 박세영과 협업하고, 저스틴 H. 민과 정회린이란 선 굵은 연기자와 더불어 가수 본인이 연기에 도전한다. 그 결과물은 59분 분량, 극장 개봉용 영화로 완성된다. 음악의 영상화란 추세는 분명하지만, 이 정도로 과감한 시도는 흔하지 않다.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는 'Cinema' 규격에 부합하는 작업이지만, 전통적인 이야기 서사 위주로 전개되진 않는다. 제목부터 그런 색깔을 짐작하게 만든다. 기타를 연주할 때 줄과 줄 사이를 미끄러지듯 훑는 'Slide', 여러 줄을 긁어내는 'Strum'. 속도와 소리를 줄여 여백을 형성하는 'Mute'를 조합한 영화 제목은 이 작품에서 문학적인 서사는 '거들뿐',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다채로운 요소가 조합되어 공감각을 끌어내는 데 집중할 것을 예고한다. 마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시작부터 끝까지 공연을 즐기는 감각과 통하는 방식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신화와 고전에서 이미 익숙하도록 목격한 이야기, 예술에 미친 나머지 가장 소중한 것 – 영혼 같은 – 마저 희생하거나 교환하는 자의 사연이 펼쳐진다. 우진은 변두리 악기 수리점을 호구지책으로 삼지만, 반드시 가수로 무대에 서고 싶다. 그때 변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수수께끼의 남자 '남기'가 문을 두드린다. 처음 봤을 땐 구제불능 고물 기타에 불과했지만, 묘하게 시선을 빼앗긴다. 난해한 설계도에 따라 조심스레 기타에 맞는 부품을 찾던 그는 어느새 기타에 혼을 불어넣듯 매달린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그런 우진에게 다가오지만, 그의 갈망은 세속적 성공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기존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감상법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영화는 시종일관 질주하는 감각으로 넘실거린다. 기본 줄거리는 전혀 어렵지 않은데 과연 주인공의 질주가 어디로 향할지, 어떻게 종료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기승전결로 일직선으로 향하는 통상 전개와는 다른 서사 덕분이다. 오로지 달리는 우진의 뒤를 쫓듯 따라서 달려야 간신히 놓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다. 정신없이 추적하는데 눈과 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가수의 음악이 들었다 놨다 리듬감을 전하고, 과잉과 폭주로 점철된 영상이 시선을 빼앗는다. 무엇 하나 정적인 조화랄 것 없이 불협화음 즉흥공연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이다.
화면 가득히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 이미지엔 절제와 균형을 찾기 힘들다. 시각효과는 흥건할 정도로 넘쳐나지만, 요즘 흔해 빠진 말끔한 컴퓨터 그래픽 터치는 찾기 힘들다. 깔끔한데 뭔가 허전한 풍경 대신에 구질구질하고 눈이 아파질 법한데 묘하게 눈가에 꽂히는 과한 이미지가 철철 흐른다. 인물의 속내는 대사나 해설로 제시되지 않지만, 감각에 맡기면 어렴풋하게 유추할 수 있다. 흐릿해도 흥미로운 감정선이다.
우진은 성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 누나는 꿈과 현실 사이를 단단히 발 딛고 서 있지만, 우진은 환상을 좇고픈 속마음을 감춘 상태다. 깊은 밤 불청객의 노크는 파우스트 박사를 찾아온 메피스토 악마의 유혹과 다르지 않다. 그는 정체불명의 기타가 가진 매혹에 빠지고, 이것이 자신의 꿈을 이뤄주리라 직감한다. 그렇게 수리점 기술자로서 의뢰인이 맡긴 물건을 자기 차지로 만든다. 기타의 재탄생 과정은 음악인으로 성공하는 경로와 합체한다. 성공을 맛보지만, 불안과 욕망은 쌍으로 우진을 옭아맨다. 이중의 욕구는 갈증으로 바뀌고, 주인공은 어떻게든 궁극의 기타를 독차지하려 한다.
타는 목마름 같은 욕망이 이끄는 길에서 우진은 '네가 선택한 길'이라는 듯 조롱하며 불쑥 돌아온 남기와 대면하고, 도플갱어 같은 존재와 마주한다. 갈증을 다스리려면 기타는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이 과연 만족일까, 아니면 파멸일까. 어쩌면 그 역시 결말을 예상하는 듯하다. 기타 줄에 긁힌 상처는 전염병처럼 손가락 끝에서 퍼져가고, '절대반지'처럼 자신의 운명과 연결되듯 시시각각 형상을 변이하는 기타는 주인공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다. 나탈리 포트만이 <블랙스완>에서 성공을 위해 강박에 빠져 파멸로 향하듯.
이 영화가 극장가에 던지는 도전의 결말은?
▲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스틸
ⓒ 엣나인필름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는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혼종'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전면화한다. 또래 독립영화 작가들과 달리 '장르' 영화적 특성을 과감히 구사하며 시각예술 실험에 매진하는 박세영 감독의 스타일과 음악인으로서 매끈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던 일상 모습과 다른 자신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던 WOODZ의 야심이 만나 추상 표현주의 실험을 마음껏 시도한다. 전형적 서사구조를 과감히 포기한 대신에 일종의 '콜라주'를 추구하는 '기술실증 모델' 같은 시도다.
따라서 이 작품을 글로 풀이하기란 무척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일단 시청각적으로 목격해야 한다. 누군가는 과잉된 이미지와 사운드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다른 누군가는 속빈 강정처럼 현란하긴 한데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설명하기보단 '감각하라!' 외치는 듯 메시지가 선명한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의 감상법은 관객에게도 관행을 넘어선 도전을 요청한다. 그래서 영화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때 어떤 부조화가 일어날지 오히려 궁금하다.
극장의 위기 속에 관성을 깬 파격 시도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100년 넘게 영화 상영에 최적화한 극장 모델도 시험에 든 지 오래다. '블랙 큐브', '다크 큐브'라 불리며 정숙한 가운데 수동적으로 집중해 관람하는 게 궁극의 감상법으로 굳어진 포맷 역시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를 관람하며 현란한 질주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고 머리가 저절로 흔들릴 텐데, 과연 극장은 이 변종과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답을 찾기보단 이런 실험의 결과가 흥미진진한 법이다. 앞으로 계속될 영상 실험의 첨단에 선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작품정보>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Slide Strum Mute2026 한국 미스터리 쇼트 필름2026.02.26. 개봉 59분 15세 관람가감독/촬영/편집 박세영각본 박세영, 오유경원안 WOODZ출연 WOODZ, 저스틴 민, 정회린제작/제공 EDAM엔터테인먼트공동제작 OS earth배급 엣나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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