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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실로 귀퉁이에 그런 한가요? 겨우겨우 든 공부하면화장품 회사 CEO로 변신한 전 골프 선수 안신애가 볼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안신애 제공
몇 해 전 일본에서는 ‘골프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보미, 김하늘, 윤채영, 신지애 등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골퍼들이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안신애(35) 역시 한류 열풍의 주역 중 하나였다. 2017년부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진출한 안신애는 데뷔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실력과 별개로 그의 존재 자체가 스타성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골프계에는 치 릴게임손오공 마를 입고 경기를 하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뛸 때도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안신애는 일본에서는 화려한 패션 센스와 인터뷰 스킬을 앞세워 ‘안신애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일본에서는 이전에 좀처럼 볼 수 없던 선수였다. 다른 선수들이 스포츠 뉴스나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안신애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 바다이야기슬롯 티 쇼의 단골손님이었다. 2018년에는 톱스타들만이 할 수 있다는 화보집까지 발간했다. 안신애는 “빡빡한 대회 일정 속에 이동일에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광고 촬영을 했다. 편의점에 가면 내 사진이 들어있는 스포츠신문과 잡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선수로 자부심을 느낄 만큼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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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패션으로 필드를 누비던 안신애의 모습. 동아일보 DB
하지만 일본 투어에서 뛴 3년은 그에겐 인생의 황금기인 동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 우승 포함 3승을 거둔 사이다릴게임 그였지만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전혀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시즌을 뛰면서 그는 우승 경쟁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톱10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다.
더욱 아쉬웠던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파행적으로 운영된 2020시즌이었다. 이전까지 부분 시드로 출전했던 안신애는 절치부심하면서 바다이야기슬롯 2020시즌을 준비했다. 2019년 말 열린 퀄리파잉스쿨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처음으로 풀 시드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는 시합을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자연스럽게 골프계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안신애의 일본 데뷔전을 대서특필한 일본 스포츠신문. 동아일보 DB
이후 약 4년간 그의 거의 골프채를 놓다시피 했다.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온 것은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안신애는“병상의 아버지가 내가 투어에서 뛰는 모습을 너무 자랑스러워하셨다. 마지막으로 딸이 필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여기서 그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발휘됐다. 거의 4년을 쉬고 몇 달 연습한 뒤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는 JLPGA투어 시드전을 통과한 것이다. 안신애는 “지난해 일본 투어를 뛰면서 일본 팬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며 “틈 나는 대로 국내 대회도 몇 개 뛰었다. 아버지도 아픈 몸을 이끌고 내가 골프를 치는 모습을 봐 주셨다”고 했다.
올해 아버지가 별세한 뒤 안신애는 마침내 은퇴했다. 그리고 골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선수 때 남달랐던 안신애의 행보는 은퇴 후에도 여전하다. 그는 얼마 전 화장품 브랜드 ‘메르베이(MERBEI)’를 론칭하며 뷰티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CEO’라는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안신애는 “어릴 때부터 뷰티나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았다. 은퇴 후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왕 사는 인생 멋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안신애가 자사의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메르베이 제공
어릴 때부터 그에게 화장품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안신애는 “골프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 선크림을 가장 많이 바르는 종목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일반 제품부터 고가 제품까지 다양하게 써 볼 기회가 있었다”며 “처음엔 막연하게 내가 선크림을 만들면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새각했다. 이전에 써 본 제품들에서 각각 부족한 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업은 골프와는 달랐다. 골프는 나만 필드에서 잘 치면 되지만 사업을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그에겐 인복이 있다는 것이다. 안신애는 “처음 시작은 맨 땅에 헤딩하듯이 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을 알게 됐다”라며 “덕분에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면서 일을 해나가고 있다. 항상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골프 선수에서 화장필 회사 CEO로 변신한 안신애의 모습. 안신애 제공
그의 회사는 현재까지 에센스, 세럼, 크림, 선크림, 폼클렌저 등 5종의 스킨케어 제품을 내놨다. 그는 하루에 10번 넘게 자신의 얼굴로 직접 테스트하면서 만족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제 참여했다. 안신애는 “20년 넘게 햇볕 아래에서 골프를 쳐 오면서 몸으로 느낀 건 분명하다.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30, 40대 이후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꾸준한 관리로 더 젊고 건강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안신애는 일본 등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그에게는 노력보다는 천재의 이미지가 더 크다. 하지만 평생 우승 한번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수도 없지만 그는 KLPGA투어에서 세 차례나 우승했다. 2009년엔 신인왕도 차지했고, 2015년엔 메이저대회까지 제패했다.
안신애는 “선수 시절에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뉴질랜드 유학 시절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골프를 쳤다. 그 덕분에 골프 선수 안신애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그는 학업과 골프를 병행했다. 그가 사는 곳은 문만 열면 골프장이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 다녀오면 줄곧 채를 놓지 않았다. 안신애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는 여름에는 오후 9시 넘어서도 해가 지지 않는다. 방과 후 숙제를 끝낸 후 잠을 자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고 했다.
안신애가 올해 국내에서 열린 LIV 대회에서 장유빈을 인터뷰하고 있다. 안신애 제공
사업가로 변신한 후 그는 운동을 못하는 만큼 먹는 양을 줄이면서 관리를 한다. 안신애는 “따로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한 적게 먹으려 한다”라며 “또 이왕이면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피자를 먹는 대신 타코를 먹는 식”이라고 말했다.
사업과 함께 그는 여자로서의 인생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나 자신보다 아낄 수 있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아버지가 떠난 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결국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기자 admin@119sh.inf
몇 해 전 일본에서는 ‘골프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보미, 김하늘, 윤채영, 신지애 등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골퍼들이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안신애(35) 역시 한류 열풍의 주역 중 하나였다. 2017년부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진출한 안신애는 데뷔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실력과 별개로 그의 존재 자체가 스타성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골프계에는 치 릴게임손오공 마를 입고 경기를 하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뛸 때도 ‘패션의 아이콘’이었던 안신애는 일본에서는 화려한 패션 센스와 인터뷰 스킬을 앞세워 ‘안신애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일본에서는 이전에 좀처럼 볼 수 없던 선수였다. 다른 선수들이 스포츠 뉴스나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안신애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 바다이야기슬롯 티 쇼의 단골손님이었다. 2018년에는 톱스타들만이 할 수 있다는 화보집까지 발간했다. 안신애는 “빡빡한 대회 일정 속에 이동일에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광고 촬영을 했다. 편의점에 가면 내 사진이 들어있는 스포츠신문과 잡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선수로 자부심을 느낄 만큼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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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발휘됐다. 거의 4년을 쉬고 몇 달 연습한 뒤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는 JLPGA투어 시드전을 통과한 것이다. 안신애는 “지난해 일본 투어를 뛰면서 일본 팬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며 “틈 나는 대로 국내 대회도 몇 개 뛰었다. 아버지도 아픈 몸을 이끌고 내가 골프를 치는 모습을 봐 주셨다”고 했다.
올해 아버지가 별세한 뒤 안신애는 마침내 은퇴했다. 그리고 골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선수 때 남달랐던 안신애의 행보는 은퇴 후에도 여전하다. 그는 얼마 전 화장품 브랜드 ‘메르베이(MERBEI)’를 론칭하며 뷰티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CEO’라는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안신애는 “어릴 때부터 뷰티나 패션 쪽에 관심이 많았다. 은퇴 후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왕 사는 인생 멋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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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그에게 화장품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안신애는 “골프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 선크림을 가장 많이 바르는 종목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일반 제품부터 고가 제품까지 다양하게 써 볼 기회가 있었다”며 “처음엔 막연하게 내가 선크림을 만들면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새각했다. 이전에 써 본 제품들에서 각각 부족한 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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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에게는 노력보다는 천재의 이미지가 더 크다. 하지만 평생 우승 한번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수도 없지만 그는 KLPGA투어에서 세 차례나 우승했다. 2009년엔 신인왕도 차지했고, 2015년엔 메이저대회까지 제패했다.
안신애는 “선수 시절에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뉴질랜드 유학 시절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골프를 쳤다. 그 덕분에 골프 선수 안신애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 그는 학업과 골프를 병행했다. 그가 사는 곳은 문만 열면 골프장이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 다녀오면 줄곧 채를 놓지 않았다. 안신애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는 여름에는 오후 9시 넘어서도 해가 지지 않는다. 방과 후 숙제를 끝낸 후 잠을 자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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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기자 admin@119sh.i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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