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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K콘텐츠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디즈니+ 《북극성》을 둘러싼 중국 일부 네티즌의 반발은, 이 소재가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디즈니+ 드라마 《북극성》 포스터 ⓒ디즈니+


"중국은 왜 전쟁을 선호할까요? 핵폭탄이 접경지대에 떨어질 수도 있는데…."
디즈니+에서 방영 중인 《북극성》에서 유엔대사 출신 대통령 후보 서문주(전지현)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 임두진(최종원)을 만나 긴박한 정세를 논하며 이렇게 말 씨티은행 대환대출 한다. 대사만 떼어놓고 보면 마치 《북극성》이 중국을 호전적 국가로 그린 듯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는 서문주가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추측해 던진 말이다. 주인공이 충분한 내막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대사이므로 틀렸을 수도 있다. 결국 《북극성》이라는 작품은 갑자기 한반도에 전운이 깃들게 된 이 사 쇠고기 건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나가는 첩보 스릴러 아닌가. 그러니 추측성 대사를 확대해 이 작품이 중국을 호전적 국가로 묘사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대사는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했고, 중국 일부 누리꾼의 반발을 불렀다. 맥락을 배제한 채 일부 장면을 일반화하고 확대 해석한 전형적인 '트집'이었다. 논란은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세계신용평가사 중국 현지에서는 전지현이 모델인 일부 광고가 중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홍콩 일간지 '성도일보' 등은 "한국의 여신으로 불리는 전지현이 드라마 속 대사로 중국을 모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것은 극 중 서문주가 전쟁을 막기 위해 중국대사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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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스틸컷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와이드 릴리즈㈜


예민한 남북관계 다 직장인대출신청 룬 K콘텐츠의 뜨거움
불만은 작품 속 장면에 대한 악의적 해석으로 이어졌다. 중국 다롄으로 등장하는 작품 속 장면을 홍콩 판자촌에서 찍은 것을 두고 "중국 도시를 의도적으로 추하게 표현했다"고 비난했다. 미국 회의 장면의 별 문양 카펫을 두고 '오성기 모욕'이라 주장하는 과도한 해석도 뒤따랐다.
사실 중국 본토에서 디즈니+ 《북극성》을 시청하는 건 말 그대로 '도둑 시청'을 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중국 반응에 대해 "도둑 시청의 부끄러움부터 알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트집에 가까운 논란은 '한한령'을 해제해선 안 된다는 여론으로 확산하고 있다. 대사 한 줄이 이처럼 뜨거운 감정선을 건드린다는 건 무얼 말하는 걸까.
이번 사태를 통해 남북관계 소재가 얼마나 뜨겁고 예민한지를 재확인할 수 있다. 과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도 완성도 높은 로맨틱 코미디에 더해 남북 서사가 지렛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남북관계를 소재로 가져오면 일본에서는 흥행한다는 속설까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국내 영화에 '블록버스터' 개념을 심으며 전국 620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던 《쉬리》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 수출돼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쉬리》의 성공은 이듬해인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로도 이어졌다. 역시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일본에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가인 2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일본이 남북관계를 담은 K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는 건 북한의 위협을 한국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북극성》처럼 남북관계를 담은 K콘텐츠들은 주변국 반응에 대해서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콘텐츠가 단순히 '작품'을 넘어 국가 이미지를 반영한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남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역학관계와 외교, 역사적 관계들이 뭉쳐 생겨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한한령'에서 보듯, 이제 콘텐츠는 자국 이미지와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으로까지 과도하게 여겨지게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사극이나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논란이 생기는데, 하물며 남북 서사라면 어떻겠는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정권 따라 달라진 영화 속 남북관계 정경
남북 서사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늘 뜨거운 감자였다. 정권 변화에 따라 영화가 그린 남북 풍경도 달라진다. 1970년대 반공을 기치로 내걸었던 박정희 정권은 북한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그린 반공영화를 내놓았고,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쳐 김대중 정권이 시작된 1990년대 후반에는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 등 긴장감 속 화해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이 나왔다.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실미도》 같은 작품들은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이 낳은 인간의 비극을 조명하며 '반전(反戰)' 의미를 되새겼다. 하지만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남북관계 소재 작품들은 상업화 물결을 타게 됐다. 《무적자》 《포화 속으로》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같은 작품들은 '경제 대통령'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던 당시 이명박 정권 시절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념 대립은 여전했지만, 경제가 상위 개념이 됐던 시절의 정경이다.
그러다 2014년부터 시작된 박근혜 정권 때는 남북 대결을 보수적 관점에서 드러내는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핵 위기 상황에서도 《강철비》와 같이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작품이 나오게 됐다.
영화의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 남북 서사는 정권에 따라 결이 달라질 만큼 국내에서도 예민한 사안이다. 덕분에 남북관계를 다루면 국내외 관심을 집중시키는 건 따놓은 당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아쉽게도 대결과 화해라는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극성》은 지금껏 남북관계를 담은 작품들이 표현한 대결과 화해라는 구도를 작품 안으로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대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의 치열해진 진영 논리를 반영한 구도이기도 하다. 이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그 정권이 추구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긴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 북한을 주적이라고 말하는 진영과 북한 또한 우리 민족이라 말하는 진영 사이의 골은 그만큼 깊어졌다. 《북극성》은 바로 그런 다른 생각들이 혼재되어 혼돈을 일으키는 한반도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앞으로도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남북 서사를 다루는 작품은 국내외에서 계속 뜨거운 소재일 것이다. 이는 곧 K콘텐츠의 독보적인 기회다. 하지만 뜨거운 만큼 조심스러워야 한다. 중요한 건 시대에 역행하지 않는 글로벌한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의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