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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국제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임 복귀 후 불과 몇 달 만에 선보인 '트럼프코인($TRUMP)'이 전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밈(유행·패러디 코드)코인이라는 가벼운 외피를 썼지만 그 속에는 권력과 금융, 정치와 시장이 결합된 거대한 실험이 자리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을 코인화하고, 이를 계열 금융사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I)을 통해 제도권 금융과 연결시켰다. 이 코인은 단순한 개인 자산이 아니라 대통령의 영향력과 국가 정책을 매개하는 새로운 화폐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신들은 이 현상을 '정치가 화폐를 만들고, 화폐가 권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서막'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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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상징이었다. 중앙은행의 신뢰, 정부의 재정건전성, 금리와 환율 정책을 통해 국가경제가 작동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디지털 금융 실험은 그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의 세상'에서 화폐의 신용은 금이나 정부가 아니라 정치인 개인의 브랜드에서 파생된다. 시장의 흐름은 정책보다 트윗과 밈, 팬덤의 집단 주식매수시간
심리에 따라 움직인다. 전통적 금융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권력의 사유화가 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화폐가 된 권력, 권력이 된 화폐
트럼프는 올해 1월 솔라나 블록체인에서 $TRUMP를 공식 발행했다. 전체 발행량 10억개 가운데 8억개, 즉 80%를 본인 소유 법인인 'CIC 디지털 LLC'와 '무선인터넷관련주
파이트파이트파이트 LLC'가 보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초기 판매와 거래 수수료를 통해 3억5000만달러 이상의 현금이 유입됐다. 상위 보유자의 대부분은 트럼프 가족과 정치 후원 네트워크다.
$TRUMP는 표면적으로는 밈코인이지만 구조는 정치적 후원 시스템에 가깝다. 일정 금액 이상을 보유한 투자자에게는 후원 행사 초동양피엔에프 주식
청권이 주어지고, 코인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정책 아이디어를 교환하거나 캠페인 기부를 연계하는 기능이 작동한다.
가디언은 이를 "정치가 자금조달을 넘어 화폐 그 자체로 진입한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화폐를 발행한 주체가 중앙은행이 아닌 대통령이며 발행량·유통량·가격 결정이 모두 그 인물의 발언과 정치 행보에 의해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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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일가는 곧 WLFI를 중심으로 디지털 금융 제국 구축에 착수했다. WLFI는 거버넌스 토큰(WLFI)과 스테이블코인 'USD1'을 발행하며 토큰 보유자에게 배당과 투표권을 부여한다. 표면적으로는 탈중앙화된 디파이(DeFi) 플랫폼이지만, 실제 구조는 트럼프코인 생태계를 관리·통제하는 중앙은행에 가깝다. WLFI 발행량의 80% 이상이 트럼프 계열사에 귀속돼 있으며 아부다비 국부펀드(ADIA)가 약 20억달러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자국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오일머니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WLFI의 거래 가격은 트럼프의 지지율과 거의 비례한다. FT는 "트럼프의 발언 한 줄이 코인 시가총액을 5억달러 이상 흔들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WLFI 토큰의 가격 그래프는 여론조사 곡선과 거의 동일한 형태를 그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도 이러한 시장 구조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중단시키고,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규제 방향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설계한 시장이 성장하는 자기강화적 구조가 완성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이 금융 플랫폼이 됐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외국 투자 유치가 WLFI를 중심으로 얽히며 외국 자본이 대통령의 코인을 매개로 미국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계와 동남아계 자본이 WLFI를 대규모 매입했다는 보고가 이어지면서 정치화된 금융 네트워크가 국제 권력의 새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주의 흔드는 '대통령의 은행'
문제는 이런 구조가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흔든다는 점이다. 미 의회 일각에서는 대통령직과 사적 금융이 결합된 이해상충 문제를 이유로 청문회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도 내부 조사에 착수해 WLFI의 토큰 판매가 미등록 증권 거래에 해당하는지 판단 중이다. AP통신은 "트럼프의 금융 실험은 정치가 시장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정치의 연장선이 되는 현상"이라며 "권력의 사유화가 제도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 추정에 따르면 WLFI의 시가총액은 수십억달러에 이르며 트럼프 일가가 보유한 관련 토큰 지분 역시 수십억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가디언은 "한 정치인이 중앙은행보다 많은 유동성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라며 "국가의 통화질서가 민간 권력에 잠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폐의 신뢰 기반이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면 민주주의의 견제 시스템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미국의 금융 혁신가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내 권력 집중과 자본 편중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화폐 신뢰의 기반이 공적 제도에서 정치적 상징으로 이동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보다 정치 지도자의 발언과 이미지에 따라 움직이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코인은 금본위제(금으로 화폐 가치를 재는 제도) 붕괴 이후 가장 큰 통화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민주주의가 화폐의 공공성을 잃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코인이 디지털 금융 체계의 혁신으로 자리 잡을지, 혹은 정치 권력이 금융 영역을 사유화한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남을지는 향후 글로벌 규제 대응과 시장의 검증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m@fnnew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