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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도시 속 요리학원, 강사와 수강생들이 한창 수업에 열중하는 중이다. 하지만 젊은 남자 수강생 '타시로'만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과한 행동을 일삼는다. 강사 '마츠오카'는 그를 타이르지만, 이해하기 힘든 변명만 늘어놓는다. 자꾸만 차임 벨 소리가 들려 견딜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강사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후로도 타시로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평판은 갈수록 나빠진다. 다시금 마츠오카가 기행을 일삼는 그를 지적하자 무표정한 표정을 짓던 타시로는 얼마 후 충격적인 행동을 일으킨다. 놀란 가슴 간신히 진정한 릴게임몰 마츠오카는 다시 일상에 복귀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타시로가 들었다는 차임은 과연 무엇일까?
공포영화 거장의 녹슬지 않은 도전
릴게임몰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구로사와 기요시가 돌아왔다. 칠십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 오리지널골드몽 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일본 거장 감독은 그의 이름을 듣는다면 가장 우선 떠오를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자신만의 공포물로 신작 <차임>을 내놓는다. 기요시의 공포영화는 우리가 흔히 규정하는 공포 장르와는 결을 달리한다. 낭자한 유혈이나 시각을 몰아붙이는 표현 수위는 그의 작업과는 별 상관이 없다. 온라인에서 종종 '밈'으로 등장하는 한 작품 내 최대 kill 무료릴게임 숫자와 한참 멀어 외려 심심할 정도다.
물론 기요시의 방대한 영화 목록에는 공포영화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쿄 소나타> 같은 정통 가족물, <스파이의 아내>처럼 대하 역사극도 한자리 차지한다. 영화뿐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나 뮤직비디오까지 들어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에 도전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한국릴게임 작업 초반에는 작가라면 질색할 법한 '핑크 무비'나 비디오 영화까지 가리지 않으며 전방위 기량을 연마해 왔다. 그래서 배경을 외국으로 옮기건 낯선 소재를 접목하건 기본 이상은 늘 보증한다. 창작자로서 현역을 유지할 수 있는 장수 비결의 하나인 셈이다.
그래도 감독은 이제 점잔 빼고 우아한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오래 해왔고 잘하는 근원을 더욱 깊고 새롭게 파고든다. 이번엔 자극적일 수밖에 없어 더 강도를 높이거나 혹은 늘어지기 쉬운 공포 장르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해 45분이란 분량에 맞춰 신작을 공개했다. 극장 개봉엔 좀 애매한 상영시간이지만, 예상되는 애로를 감수하고 최적화 모델을 추구한 결과다. 그런 선택 덕분에 <차임>은 섬뜩함과 두려움을 온전하게 보전한 채 딱 걸맞은 여운과 함께 종결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도시화 속 익명화된 시대에 최적화한 공포
▲ <차임> ㅅ스틸
ⓒ ㈜디오시네마
우리는 거대한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도시화로 인해 이제 이웃에 누가 사는지,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매일 낯선 이들과 어깨를 맞닥뜨리며 불편하고, 늘 얼굴을 맞대는 이들이라도 속내를 알기란 너무나 힘들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란 옛날 격언이 요즘처럼 절실할 수 없다. '타인은 지옥이다'란 제목의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시절일 만큼, 기존 공포 장르의 상징이던 귀신이나 괴물, 인간이라 보기 힘든 살인마나 초자연적 현상보다 평범한 이웃, 가족, 낯선 타인이 더 무서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간다.
<차임>은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든다. 물론 구로사와 기요시에겐 이런 접근법이 낯설지 않다. 감독의 방대한 작품 목록 중에도 첫 번째로 호명되는 1997년 작품 <큐어>가 이미 그 원형을 보인 바 있다.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의 기운이 가득한 해당 작품의 경향은 감독 특유의 공포 철학을 집약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큐어>가 과거의 오컬트 집단을 배경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교해 <차임>은 원인도 해설도 딱히 관객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불가항력이다. 피할 수도 해소할 수도 없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다른 이와 공유하고 공감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불운과 참극은 마치 부조리극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 각각의 사연은 별다른 설명과 거리가 멀기에, 관객은 당혹감에 휩싸이고 어떻게든 누군가 상황을 설명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요청은 감독에겐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던 탓이다. 관객을 시험하듯 전개되는 불합리한 설정이 애초 감독의 의도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 공백을 메우는 건 21세기 들어 더욱 심화하는 인간 소외다. 짧은 분량 등장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잊기 힘든 섬뜩함을 제공하는 타시로부터 그렇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충과 수난을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하고 공감받고 싶었지만, 마츠오카는 물론 그의 주변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저 부담스러운 별종 취급할 뿐이다.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강사의 지도에 따라 화기애애하게 근사한 요리 만들기에 열심인데 타시로만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흐린다. 요리학원 전반이 그를 불청객으로 여긴다.
타시로가 차임 벨 소리 때문에 처한 끔찍한 스트레스는 어떤 단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효과음 하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도무지 그가 망상에 빠진 건지 초자연적 상황이 그에게만 일어난 것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타시로는 누구와도 소통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가 사라진다 해도 다들 내심 안도할 뿐, 섭섭하거나 안타깝지 않을 것이다.
SNS와 와이파이를 타듯 전염되는 공포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곡절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저 어쩌다 일어날 법한 특이 사례로 여길 뿐이었다. 타시로가 퇴장한 후에도 요리학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로 돌아간다. 하지만 별 일 없을 거란 낙관은 곧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타시로의 경고에는 일말의 진실이 존재했던 것. 물론 과거 등장한 공포영화에서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전염되는 공포가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건 초자연적 존재 혹은 원한을 품은 자의 원념이 근원으로 작용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진 공포 장르에 현대적 소재가 가미된 정도다.
하지만 <차임> 속 공포는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다. 그저 기분 나쁜 소리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며 당사자를 못살게 만든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해법을 찾으려 해도 자신의 절박한 증언을 믿어줄 누구도 없다. 나는 미치고 펄쩍 뛰어도 모자랄 판인데 공감도 해결책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사고를 저질러야 한다. 평범한 인간을 초월해야만 한다.
중반 이후 살짝 실마리가 보인다. 현대사회를 살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통제와 억압, 원하는 건 얻기 힘들고 대인관계가 힘겨운 이들이 소리 없이 축적하는 마음 속 감정 쓰레기가 봉인을 풀고 쏟아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총기가 무차별 허용되거나 공권력과 법제도가 붕괴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가 비현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영화 속에서 하나둘 구현된다. 지금 보는 화면 속 상황이 그저 가상이라 여기면 즐길 수 있지만, <차임>이 제공하는 풍경은 거부할 수 없는 불안으로 관객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마츠오카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다. 전업주부 아내와 중학생 아들과 관계도 별로 나쁘지 않고, 집안 형편 역시 근사한 단독주택 전형이다. 학원에서도 신망과 존경을 받는다. 언뜻 무엇 하나 아쉽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숨은 욕망이 있다. 요리사지만 방송에서 쉽게 접하는 스타 셰프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계속 유명 레스토랑 셰프 자리를 얻기 위해 도전하나 열성적인 자기 홍보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뜻한 바와 다른 상황은 그를 조급하게, 그리고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다.
거대 사회에서 원자화한 개인은 시스템 속에서 너무나 쉽게 소외된다. 익명성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지만, 진실한 교류와 공감은 힘들다. 예전처럼 가족이나 이웃과 교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미디어와 SNS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비교 기준에 늘 모자란 자신 때문에 강요된 욕망과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불만에 포위된다. 우울증과 공황이 만연하고, 사회가 전염병처럼 이를 유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간다. 차임 벨 소리는 시대의 불안을 예고하는 징후 자체다.
공포 장르의 근원적 기능에 충실한 영화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평범하기 그지없는 차임 벨 소리는 사회 속 개인에게 퇴적된 채 해소되지 않는 막연한 울분에 불을 지르는 기제로 활용된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가 현실화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자동차가 사회가 허용한 살인 도구이듯, 법과 도덕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현대 문명사회는 순식간에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영화는 섬뜩하게 증명한다. 깨끗하고 우아한 요리학원, 교양 있고 친근한 이들로 채워진 이 공간에는 고기를 썰고 뼈를 베는 칼이 가득하다. 이 흉기가 괴물로 변이한 개인에게 주어진다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벼랑 끝에 놓여 있는지, 가속되는 공동체 붕괴와 인간 소외가 낳을 파국적 효과를 심각하게 봐야 하는지 경고한다. 그렇다고 소리 높여 훈계하거나 '계몽'하지 않는다. 그저 강력한 몰입감으로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나머지는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의도를 노골화할 생각이 없기에 오히려 더 선연하게 무방비로 당하도록 만든다. 영화란 산업 시대의 예술로만 접근 가능한 경로다. 그리고 <차임>은 기깔나게 그 효능을 발휘한다.
이런 유형의 공포는 생소하고 뜬금없다. 우리는 영화 속 공포를 그저 일시적 일탈로, 언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선택지를 담보하기에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화면을 넘어 공포가 스물스물 넘어온다면 비명을 지르며 극장을 탈출하고 싶다. 영화의 여운이 남은 동안 주방의 식칼을 가만히 응시하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타인을 바라보건 오싹해질 노릇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는 우리가 망각하는 진실을 소환하며 고유의 감각을 선사한다. <차임>은 공포 장르의 근본 효용에 더없이 충직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차임Chime2024 일본 공포2026.03.04. 개봉 80분(본편 45분, 대담 35분) 15세 관람가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출연 요시오카 무츠오, 코히나타 세이이치, 아마노 하나수입/배급 ㈜디오시네
도시 속 요리학원, 강사와 수강생들이 한창 수업에 열중하는 중이다. 하지만 젊은 남자 수강생 '타시로'만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구석에서 과한 행동을 일삼는다. 강사 '마츠오카'는 그를 타이르지만, 이해하기 힘든 변명만 늘어놓는다. 자꾸만 차임 벨 소리가 들려 견딜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강사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후로도 타시로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평판은 갈수록 나빠진다. 다시금 마츠오카가 기행을 일삼는 그를 지적하자 무표정한 표정을 짓던 타시로는 얼마 후 충격적인 행동을 일으킨다. 놀란 가슴 간신히 진정한 릴게임몰 마츠오카는 다시 일상에 복귀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타시로가 들었다는 차임은 과연 무엇일까?
공포영화 거장의 녹슬지 않은 도전
릴게임몰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구로사와 기요시가 돌아왔다. 칠십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 오리지널골드몽 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일본 거장 감독은 그의 이름을 듣는다면 가장 우선 떠오를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자신만의 공포물로 신작 <차임>을 내놓는다. 기요시의 공포영화는 우리가 흔히 규정하는 공포 장르와는 결을 달리한다. 낭자한 유혈이나 시각을 몰아붙이는 표현 수위는 그의 작업과는 별 상관이 없다. 온라인에서 종종 '밈'으로 등장하는 한 작품 내 최대 kill 무료릴게임 숫자와 한참 멀어 외려 심심할 정도다.
물론 기요시의 방대한 영화 목록에는 공포영화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쿄 소나타> 같은 정통 가족물, <스파이의 아내>처럼 대하 역사극도 한자리 차지한다. 영화뿐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나 뮤직비디오까지 들어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형식에 도전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한국릴게임 작업 초반에는 작가라면 질색할 법한 '핑크 무비'나 비디오 영화까지 가리지 않으며 전방위 기량을 연마해 왔다. 그래서 배경을 외국으로 옮기건 낯선 소재를 접목하건 기본 이상은 늘 보증한다. 창작자로서 현역을 유지할 수 있는 장수 비결의 하나인 셈이다.
그래도 감독은 이제 점잔 빼고 우아한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오래 해왔고 잘하는 근원을 더욱 깊고 새롭게 파고든다. 이번엔 자극적일 수밖에 없어 더 강도를 높이거나 혹은 늘어지기 쉬운 공포 장르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해 45분이란 분량에 맞춰 신작을 공개했다. 극장 개봉엔 좀 애매한 상영시간이지만, 예상되는 애로를 감수하고 최적화 모델을 추구한 결과다. 그런 선택 덕분에 <차임>은 섬뜩함과 두려움을 온전하게 보전한 채 딱 걸맞은 여운과 함께 종결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도시화 속 익명화된 시대에 최적화한 공포
▲ <차임> ㅅ스틸
ⓒ ㈜디오시네마
우리는 거대한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도시화로 인해 이제 이웃에 누가 사는지,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매일 낯선 이들과 어깨를 맞닥뜨리며 불편하고, 늘 얼굴을 맞대는 이들이라도 속내를 알기란 너무나 힘들다.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란 옛날 격언이 요즘처럼 절실할 수 없다. '타인은 지옥이다'란 제목의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시절일 만큼, 기존 공포 장르의 상징이던 귀신이나 괴물, 인간이라 보기 힘든 살인마나 초자연적 현상보다 평범한 이웃, 가족, 낯선 타인이 더 무서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간다.
<차임>은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든다. 물론 구로사와 기요시에겐 이런 접근법이 낯설지 않다. 감독의 방대한 작품 목록 중에도 첫 번째로 호명되는 1997년 작품 <큐어>가 이미 그 원형을 보인 바 있다.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의 기운이 가득한 해당 작품의 경향은 감독 특유의 공포 철학을 집약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큐어>가 과거의 오컬트 집단을 배경으로 활용하는 것과 비교해 <차임>은 원인도 해설도 딱히 관객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불가항력이다. 피할 수도 해소할 수도 없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다른 이와 공유하고 공감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불운과 참극은 마치 부조리극처럼 보인다. 물론 그들 각각의 사연은 별다른 설명과 거리가 멀기에, 관객은 당혹감에 휩싸이고 어떻게든 누군가 상황을 설명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요청은 감독에겐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던 탓이다. 관객을 시험하듯 전개되는 불합리한 설정이 애초 감독의 의도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 공백을 메우는 건 21세기 들어 더욱 심화하는 인간 소외다. 짧은 분량 등장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잊기 힘든 섬뜩함을 제공하는 타시로부터 그렇다. 그는 자신이 겪는 고충과 수난을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하고 공감받고 싶었지만, 마츠오카는 물론 그의 주변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저 부담스러운 별종 취급할 뿐이다.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강사의 지도에 따라 화기애애하게 근사한 요리 만들기에 열심인데 타시로만 어울리지 못하고 분위기를 흐린다. 요리학원 전반이 그를 불청객으로 여긴다.
타시로가 차임 벨 소리 때문에 처한 끔찍한 스트레스는 어떤 단서도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효과음 하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도무지 그가 망상에 빠진 건지 초자연적 상황이 그에게만 일어난 것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타시로는 누구와도 소통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가 사라진다 해도 다들 내심 안도할 뿐, 섭섭하거나 안타깝지 않을 것이다.
SNS와 와이파이를 타듯 전염되는 공포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곡절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저 어쩌다 일어날 법한 특이 사례로 여길 뿐이었다. 타시로가 퇴장한 후에도 요리학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로 돌아간다. 하지만 별 일 없을 거란 낙관은 곧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타시로의 경고에는 일말의 진실이 존재했던 것. 물론 과거 등장한 공포영화에서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전염되는 공포가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건 초자연적 존재 혹은 원한을 품은 자의 원념이 근원으로 작용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진 공포 장르에 현대적 소재가 가미된 정도다.
하지만 <차임> 속 공포는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다. 그저 기분 나쁜 소리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울려 퍼지며 당사자를 못살게 만든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해법을 찾으려 해도 자신의 절박한 증언을 믿어줄 누구도 없다. 나는 미치고 펄쩍 뛰어도 모자랄 판인데 공감도 해결책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사고를 저질러야 한다. 평범한 인간을 초월해야만 한다.
중반 이후 살짝 실마리가 보인다. 현대사회를 살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통제와 억압, 원하는 건 얻기 힘들고 대인관계가 힘겨운 이들이 소리 없이 축적하는 마음 속 감정 쓰레기가 봉인을 풀고 쏟아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총기가 무차별 허용되거나 공권력과 법제도가 붕괴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가 비현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영화 속에서 하나둘 구현된다. 지금 보는 화면 속 상황이 그저 가상이라 여기면 즐길 수 있지만, <차임>이 제공하는 풍경은 거부할 수 없는 불안으로 관객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마츠오카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다. 전업주부 아내와 중학생 아들과 관계도 별로 나쁘지 않고, 집안 형편 역시 근사한 단독주택 전형이다. 학원에서도 신망과 존경을 받는다. 언뜻 무엇 하나 아쉽지 않은 삶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숨은 욕망이 있다. 요리사지만 방송에서 쉽게 접하는 스타 셰프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계속 유명 레스토랑 셰프 자리를 얻기 위해 도전하나 열성적인 자기 홍보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뜻한 바와 다른 상황은 그를 조급하게, 그리고 분노에 휩싸이게 만든다.
거대 사회에서 원자화한 개인은 시스템 속에서 너무나 쉽게 소외된다. 익명성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지만, 진실한 교류와 공감은 힘들다. 예전처럼 가족이나 이웃과 교감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미디어와 SNS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비교 기준에 늘 모자란 자신 때문에 강요된 욕망과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불만에 포위된다. 우울증과 공황이 만연하고, 사회가 전염병처럼 이를 유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간다. 차임 벨 소리는 시대의 불안을 예고하는 징후 자체다.
공포 장르의 근원적 기능에 충실한 영화
▲ <차임> 스틸
ⓒ ㈜디오시네마
평범하기 그지없는 차임 벨 소리는 사회 속 개인에게 퇴적된 채 해소되지 않는 막연한 울분에 불을 지르는 기제로 활용된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가 현실화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자동차가 사회가 허용한 살인 도구이듯, 법과 도덕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현대 문명사회는 순식간에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영화는 섬뜩하게 증명한다. 깨끗하고 우아한 요리학원, 교양 있고 친근한 이들로 채워진 이 공간에는 고기를 썰고 뼈를 베는 칼이 가득하다. 이 흉기가 괴물로 변이한 개인에게 주어진다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벼랑 끝에 놓여 있는지, 가속되는 공동체 붕괴와 인간 소외가 낳을 파국적 효과를 심각하게 봐야 하는지 경고한다. 그렇다고 소리 높여 훈계하거나 '계몽'하지 않는다. 그저 강력한 몰입감으로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나머지는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하지만 의도를 노골화할 생각이 없기에 오히려 더 선연하게 무방비로 당하도록 만든다. 영화란 산업 시대의 예술로만 접근 가능한 경로다. 그리고 <차임>은 기깔나게 그 효능을 발휘한다.
이런 유형의 공포는 생소하고 뜬금없다. 우리는 영화 속 공포를 그저 일시적 일탈로, 언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선택지를 담보하기에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화면을 넘어 공포가 스물스물 넘어온다면 비명을 지르며 극장을 탈출하고 싶다. 영화의 여운이 남은 동안 주방의 식칼을 가만히 응시하건,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타인을 바라보건 오싹해질 노릇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는 우리가 망각하는 진실을 소환하며 고유의 감각을 선사한다. <차임>은 공포 장르의 근본 효용에 더없이 충직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차임Chime2024 일본 공포2026.03.04. 개봉 80분(본편 45분, 대담 35분) 15세 관람가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출연 요시오카 무츠오, 코히나타 세이이치, 아마노 하나수입/배급 ㈜디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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