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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은밀, 때론 거칠었던 미국 개입 정책의 역사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950년대 미국 정부의 고민은 군사비를 감축하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비가 상승하면서 미국 정부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었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53년 정전협정을 맺는 시점에서 한국의 중립화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할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정도로 군사비를 감축하고자 했다.
■
「 1950년대 군비 삭감, 공산 봉쇄 위해 이란·필리핀 등에 은밀한 개입 군사·경제정책 갈등 빚은 이승만 제거 계획 수립, 김종필 축출 관여 아버지 부시도 비판한 이라크전, 미 철수하자 이슬람 극단주의 확대 그레나다·파나마 침공 닮은꼴 베네수엘라 사태, 릴게임바다신2 변수 훨씬 복합적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가 지난 5일 헬기에서 내린 뒤 호송 요원들에게 이끌려 맨해튼의 남부연방지방법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마약 관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들은 처음으로 미국 법정에 섰다. [로이터=연합뉴스]
릴게임온라인
그럼에도 미국으로서는 군축을 통한 군사비의 감축을 실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소련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 56년 헝가리의 시민봉기에 직접 개입하는 등 대외적으로 적극적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확인된 중국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중국은 제3세계 바다이야기무료 의 리더들이 참여한 반둥회의에도 참여했다.
은밀한 개입의 확산 미국은 군사비를 줄이면서도 공산주의의 확산을 봉쇄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 대신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정책과 함께 은밀한 개입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은밀한 개입을 위해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을 강화했다.
최근 미국이 53년과 54년 이란과 과테말라 바다이야기부활 에서 군사정변을 은밀하게 지원했다는 문서가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민족주의적 색채가 약한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53년에는 필리핀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고 알려졌다. 63년 남베트남의 군사정변을 배후에서 지원하여 미국이 지원했던 응오딘지엠 정부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책이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52년부터 54년까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군사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에서도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계속 갈등이 발생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한국군과 한국의 정치인들을 내세워 정권교체를 시도하려 했다.
한국에서의 개입 방식 이 계획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특정 장소로 불러 감금하고, 한국군으로 하여금 군사정변을 실행하도록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안도 있었다. 결국 한국 내부에서 대체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판단 아래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으로 인해 이후 5·16 군사정변이나 10·26 사건의 뒤에 미국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하기도 했다.
73년 칠레 군사정변에도 미국의 배후 개입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한국의 사례를 보면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군사정변 이후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은밀하게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한국 군사정부의 군사 정책 수정과 이인자였던 김종필을 권력의 정점으로부터 축출하는 데 은밀히 개입했다. 80년 전두환의 집권과정에도 은밀한 개입과 압력이 작동했다. 안보동맹과 원조는 가장 중요한 압력 수단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개입은 대체로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구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르게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을 원칙으로 세계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미국에게 직접적 개입은 스스로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직접 개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남미에서 미국은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실패한 쿠바 침공, 성공한 그레나다 침공 61년 쿠바의 피그만을 침공했다.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 계획은 쿠바 민심에 대한 오판으로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피그만 침공의 실패가 그 직후에 있었던 5·16 군사정변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64년부터 베트남에 대한 개입은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은밀한 개입 정책은 80년대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확산되고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점 더 은밀한 작전을 구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개입했던 정치적 사건들과 관련된 자료도 공개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서는 이제 은밀한 작전보다는 오히려 직접적인 개입을 추구하게 되었다.
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은 그 시작이었다. 그레나다는 베네수엘라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좌파 정부가 있었다. 미군 병력 7000명이 동원되어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군이 주둔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의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하였지만, 미국은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베트남 전쟁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파나마와 소말리아
89년에는 미군이 직접 파나마의 지도자 노리에가(사진)를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60년대부터 미국의 중앙정보국을 위해 일했었다. 특히 마약 단속에 협력하였고, 중남미 국가들의 좌파 정권에 반대하는 게릴라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리에가는 83년부터 군 최고사령관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의 정책에 맞섰다.
당시 미국이 이란에 무기를 수출한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반군을 지원하는 과정에 노리에가가 개입했고,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리에가를 체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이라크의 후세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모두 미국의 지원을 받고 성장했지만 이후 미국에 의해 제거되거나 전쟁을 벌여야 했다.
93년 소말리아에 대한 개입은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지 정치에 직접 개입하려다가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재현되었다. 피그만 사건처럼 미국은 소말리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군은 피해만 입은 채 철수했고 지금도 소말리아의 불안은 세계 무역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그 결과 같은 시기 구유고슬라비아 내전에는 개입 대신 중재자 역할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외교적 실패: 이라크 전쟁 미국의 가장 큰 개입은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부의 대규모 살상 무기가 테러 세력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 대량 살상무기는 없었다. 영화 ‘그린 존’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조작된 정보에 의해 영국·호주·폴란드가 이라크에 파병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파병하지 않았다. 91년 걸프전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도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아들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함께 이라크 전쟁 전략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는 실용주의적인 공화당의 외교정책 노선과는 달랐다는 것이었다.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명분을 갖고 3일간의 지상전으로 막을 내렸던 아버지 부시의 걸프전과 달리 아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은 명분도 없이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의 철수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이 확대되었다. 2008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군 전사자 4400여 명과 이라크인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라크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 모두를 망치고 있다는 보수 그룹의 평가도 나왔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외교정책 실패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2003년 한국군이 이라크 북쪽의 쿠르드 지역에 파병되었다. 미국과의 안보동맹, 일본 자위대의 파병,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의 전쟁특수에 대한 기대가 파병 결정의 동기가 되었다. 한국군의 피해가 없었지만 이라크 재건사업에 파견된 한국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히려 이라크 파병 결정이 늦어져 미국이 한국의 파병을 충분히 감사하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네수엘라가 가져올 미래의 세계
대테러전쟁의 명분이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궁극적으로 탈레반을 축출하고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정권 교체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철수를 계획했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이라크보다는 그레나다·파나마의 사례와 유사하다. 중남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는 점은 그레나다와 비슷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국가 크기나 정부의 성격,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를 고려하면 그레나다나 파나마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성격이 우파 독재정부인지, 좌파 포퓰리즘 정부인지도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점치기는 어렵다. 물론 그 결과와 관계없이 미국의 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계속 제기될 것이며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에 기초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더 약화될 것이다. 최근 미국은 많은 국제기구로부터 탈퇴와 지원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아들 부시 대통령이 얘기했던 불량 국가(Rogue State)들과 미국에 대항하는 강대국들을 통제할 수 없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
때론 은밀, 때론 거칠었던 미국 개입 정책의 역사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950년대 미국 정부의 고민은 군사비를 감축하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비가 상승하면서 미국 정부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었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53년 정전협정을 맺는 시점에서 한국의 중립화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할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정도로 군사비를 감축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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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군비 삭감, 공산 봉쇄 위해 이란·필리핀 등에 은밀한 개입 군사·경제정책 갈등 빚은 이승만 제거 계획 수립, 김종필 축출 관여 아버지 부시도 비판한 이라크전, 미 철수하자 이슬람 극단주의 확대 그레나다·파나마 침공 닮은꼴 베네수엘라 사태, 릴게임바다신2 변수 훨씬 복합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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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미국으로서는 군축을 통한 군사비의 감축을 실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소련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늘리고 56년 헝가리의 시민봉기에 직접 개입하는 등 대외적으로 적극적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확인된 중국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중국은 제3세계 바다이야기무료 의 리더들이 참여한 반둥회의에도 참여했다.
은밀한 개입의 확산 미국은 군사비를 줄이면서도 공산주의의 확산을 봉쇄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 대신 핵무기를 고도화하는 정책과 함께 은밀한 개입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은밀한 개입을 위해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을 강화했다.
최근 미국이 53년과 54년 이란과 과테말라 바다이야기부활 에서 군사정변을 은밀하게 지원했다는 문서가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민족주의적 색채가 약한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53년에는 필리핀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고 알려졌다. 63년 남베트남의 군사정변을 배후에서 지원하여 미국이 지원했던 응오딘지엠 정부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책이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52년부터 54년까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군사정책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에서도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계속 갈등이 발생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한국군과 한국의 정치인들을 내세워 정권교체를 시도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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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칠레 군사정변에도 미국의 배후 개입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한국의 사례를 보면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군사정변 이후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은밀하게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한국 군사정부의 군사 정책 수정과 이인자였던 김종필을 권력의 정점으로부터 축출하는 데 은밀히 개입했다. 80년 전두환의 집권과정에도 은밀한 개입과 압력이 작동했다. 안보동맹과 원조는 가장 중요한 압력 수단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개입은 대체로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구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르게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을 원칙으로 세계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미국에게 직접적 개입은 스스로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직접 개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중남미에서 미국은 직접 개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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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은밀한 개입 정책은 80년대 이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확산되고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점 더 은밀한 작전을 구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개입했던 정치적 사건들과 관련된 자료도 공개되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서는 이제 은밀한 작전보다는 오히려 직접적인 개입을 추구하게 되었다.
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은 그 시작이었다. 그레나다는 베네수엘라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좌파 정부가 있었다. 미군 병력 7000명이 동원되어 정부를 무너뜨리고 미군이 주둔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의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하였지만, 미국은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베트남 전쟁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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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에는 미군이 직접 파나마의 지도자 노리에가(사진)를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60년대부터 미국의 중앙정보국을 위해 일했었다. 특히 마약 단속에 협력하였고, 중남미 국가들의 좌파 정권에 반대하는 게릴라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리에가는 83년부터 군 최고사령관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의 정책에 맞섰다.
당시 미국이 이란에 무기를 수출한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반군을 지원하는 과정에 노리에가가 개입했고,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리에가를 체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이라크의 후세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모두 미국의 지원을 받고 성장했지만 이후 미국에 의해 제거되거나 전쟁을 벌여야 했다.
93년 소말리아에 대한 개입은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지 정치에 직접 개입하려다가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재현되었다. 피그만 사건처럼 미국은 소말리아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군은 피해만 입은 채 철수했고 지금도 소말리아의 불안은 세계 무역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그 결과 같은 시기 구유고슬라비아 내전에는 개입 대신 중재자 역할을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외교적 실패: 이라크 전쟁 미국의 가장 큰 개입은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부의 대규모 살상 무기가 테러 세력들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 대량 살상무기는 없었다. 영화 ‘그린 존’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조작된 정보에 의해 영국·호주·폴란드가 이라크에 파병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파병하지 않았다. 91년 걸프전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도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아들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함께 이라크 전쟁 전략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는 실용주의적인 공화당의 외교정책 노선과는 달랐다는 것이었다. 쿠웨이트 침공이라는 명분을 갖고 3일간의 지상전으로 막을 내렸던 아버지 부시의 걸프전과 달리 아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은 명분도 없이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의 철수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이 확대되었다. 2008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군 전사자 4400여 명과 이라크인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라크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 모두를 망치고 있다는 보수 그룹의 평가도 나왔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외교정책 실패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2003년 한국군이 이라크 북쪽의 쿠르드 지역에 파병되었다. 미국과의 안보동맹, 일본 자위대의 파병,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의 전쟁특수에 대한 기대가 파병 결정의 동기가 되었다. 한국군의 피해가 없었지만 이라크 재건사업에 파견된 한국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히려 이라크 파병 결정이 늦어져 미국이 한국의 파병을 충분히 감사하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네수엘라가 가져올 미래의 세계
대테러전쟁의 명분이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궁극적으로 탈레반을 축출하고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미국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하고 정권 교체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명예로운 철수를 계획했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이라크보다는 그레나다·파나마의 사례와 유사하다. 중남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는 점은 그레나다와 비슷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국가 크기나 정부의 성격,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를 고려하면 그레나다나 파나마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성격이 우파 독재정부인지, 좌파 포퓰리즘 정부인지도 중요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점치기는 어렵다. 물론 그 결과와 관계없이 미국의 개입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주장은 계속 제기될 것이며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에 기초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더 약화될 것이다. 최근 미국은 많은 국제기구로부터 탈퇴와 지원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아들 부시 대통령이 얘기했던 불량 국가(Rogue State)들과 미국에 대항하는 강대국들을 통제할 수 없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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