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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문제 막 듣고 어울리지 그를 잠시[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 9월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진행된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추모주간 투쟁선포 기자회견'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장면 하나. '현장에서 그늘만 쫓아다니는 그녀들', '막내 작가에게 히스테리 부리는 그녀들. 그렇게 당하고 보고 배운 막내 작가는 결국 다시 제2의 그녀가 되어간다.' 지난달 블라인드의 MBC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의 일부다. 블라인드는 이메일로 자사 직원임을 인증해야만 가입이 가능한 익명 커뮤니티다. 해고된 무입고자동차대출 방송 작가의 복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에, 블라인드의 MBC 직원들은 이들을 향한 혐오 발언으로 답한 것이다.

장면 둘. 지난해 9월 15일 사망한 딸의 1주기를 앞두고, 고(故)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씨는 딸이 생전에 다니던 직장 앞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젊은 여성의 피를 뽑아서, 뼈를 갈아서 e농협인터넷뱅킹 방송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방송사 비정규직 상당수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장면에서 MBC 블라인드의 글들은 방송작가를 '그녀들'이라 통칭한다. 실제 방송작가는 여성이 90%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여초 직업이다. 고 오 캐스터의 어머니 장씨가 “젊은 여성의 피를 뽑아서 방송을 만든다”고 직격하듯 여성 기상캐 공동주택가격 스터와 아나운서 대부분을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쓰고,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채용 비율이 높은 것도 철저히 젠더화된 방송가의 노동 환경 중 하나다.
한 때는 방송 기자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주변에 방송작가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아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지난해 공저로 출간한 책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에서 '여자 하기 좋은 직 이상 시 업'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여성들에게 권유됐던 직업 중 하나로 방송작가를 다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교사, 간호사, 승무원 같은 다른 여초 직업과 함께 방송작가는 젠더화된 형태의 노동을 기대받았다. 가령 방송작가는 촬영 현장에서 가정의 '엄마' 또는 '여동생' 같은 역할을 부여 받았다. 프로그램 기획, 대본 작성, 출연진 섭외 같은 기본적인 업무에 더해 이자상환 제작진·출연진의 심기 경호, 돌봄 노동, 잔심부름 같은 가정에서 '엄마'나 '여동생'이 할 법한 일들이 여성인 작가의 몫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최근 쏟아지는 성별 임금 격차에 관한 통계는 한국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방송국이야말로 '여자'라는 이름 자체가 저임금의 유인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2016년 고 이한빛 CJ E&M PD 사망 이후 방송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 오 캐스터의 사망 이후 방송가의 직장 내 괴롭힘이 화두가 됐다. 작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고, 올해 처음으로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가 방송사와 단체협약을 맺는 등 진전이 이뤄지고 있으나 현장의 노동자들이 체감할 만한 실질적인 처우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 9월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진행된 'MBC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추모주간 투쟁선포 기자회견' 현장. 이번 기자회견에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김용균재단 대표)도 함께 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유가 뭘까. 방송가 등 언론과 미디어 업계의 노동 현실은 보도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 같은 미디어 전문지, 노동 전문지 외에는 기자회견 같은 행사 위주의 단 건 보도만 이어간다. 언론사들에는 출입처를 따로 '미디어'로 둔 곳도 한겨레신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사실은 언론계 노동자 얘기를 하다 보면 '제 얼굴에 침 뱉기' 같은 상황이 빚어질 것이므로 결국은 눈 감아 버린 악순환의 연속이다.

지난 주말, 경남 진주에서 '언론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강연을 했다. 여성 기자들이 처한 백래시와 사이버 불링 등의 현실을 이야기했더니, 청중들 가운데 왜 그러한 환경이 바뀌지 않느냐고 질문한 분이 있었다. 왜일지, 짧은 시간 고민해봤다. '기레기'라는 말이 상징하듯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반감이 팽배할뿐더러, 언론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잘 보도 되지 않는 것, 그 바람에 타 업계의 노동 환경을 줄곧 보도하는 언론사에서 '등잔 밑이 어두운'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노동권 확보가 가장 더딘 곳 중에 하나가 언론과 미디어 업계가 아닐까.
지난 3일은 제62회 방송의 날이었고, 오는 15일은 고 오 캐스터의 사망 1주기이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름 엔딩크레딧과 직장갑질119는 8일부터 오요안나 1주기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투쟁에 들어갔다.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MBC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입장 표명, 고 오 캐스터의 명예회복과 예우, MBC의 비정규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개선, 자체 진상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망 1년이 다 되도록 문제 해결이 요원해 거리로 나선 유가족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현실에 눈 감아온 오랜 세월을 상기한다. 동종 업계 종사자들의 침묵 속에서 특히나 수많은 '그녀들'이 희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