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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남자의 손. 남자의 손은 계속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쓰다듬으며 그가 만들어 낸 촉감을 확인한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도장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필체로 새겨져 있는 누군가의 이름 ‘정영희’. 이 아름다운 도장을 만든 남자는 놀랍게도 맹인이다.  



영화 '얼굴'에서 임영규 역의 권해효 배우.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그가 2018년에 출간한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 투자가 말라버린 현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에서 감독은 저예산의 영화라도 강행하는 것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임을 이 방공제금액 작품으로 증명해 보였다. <얼굴>은 독립영화 기준으로도 적은 예산인 2억여원의 제작비로 탄생한 기적에 가까운 (상업) 프로젝트다. 물론 이는 주연 배우 박정민 배우의 ‘프로 보노’(pro bono: 수임료를 안 받고 변호를 해주는 법률 서비스를 의미, 무료 일에 대한 은유) 참여, 작은 규모의 스태프와 적은 회차(13회차)라는 요소로 가능했던 일이다. 
기업은행 아파트담보대출 이토록 적은 예산의 영화지만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일종의 시대극을 표방한다. 이야기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수성가한 전각(도장) 장인 ‘영규’(권해효)의 텔레비전 인터뷰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아들이자 아버지와 함께 세운 ‘청풍공방’의 대표 ‘동환’(박정민)은 아버지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다.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동환 중소기업기술개발 종합관리시스템 은 듣도 보도 못한 어머니(신현빈)의 부고를 듣고 이미 백골이 된 어머니의 시신을 마주하게 된다. 죽은 지 40여년이 되었다는 어머니의 백골. 그리고 그녀가 살해되었을 수도 있다는 경찰과 부검의의 분석이 동환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무엇보다 그는 어머니의 주변인들마다 그녀가 ‘너무 못생겼다’는 회고를 공유하는 것에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얼마나 못생겼기에 국민카드 모두들 그런 무례한 언급을 서슴지 않는 것인가. 동환은 특종에 불을 켜고 동환 어머니의 과거를 캐고자 하는 텔레비전 피디와 함께 그녀와 아버지가 만난 ‘청풍피복’의 수사를 시작한다. 영화는 곧 국가주도의 격렬한 산업화가 일어나던 1970년대로 회귀한다. 그리고 동환이 그곳에서 발견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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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에서 젊은 임영규와 임동환 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태초의 연상호”를 되찾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얼굴>은 실로 최근 몇 년간 그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수려함을 논하기 전에 일단 연상호의 정체성, 그리고 그가 제기하는 첨예한 사회 비판이 귀환한 것은 적지 않은 관객들, 그리고 그의 만화(<돼지의 왕>, <사이비> 등)를 애정했던 골수팬들에게 매우 반갑고 짜릿한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연상호 감독이 커리어 초기에 뛰어남을 인정받았던 요소들, 예를 들어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약자의 표상,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희생자들이 어떠한 형태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신랄하고 드라마틱한 재현과 분석을 중추로 하고 있다. 감독 연상호는 과연 이번 <얼굴>을 통해 독립영화로 부상했던 시기의 천재성과 그만의 독보적인 시각을 다시금 증명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얼굴>의 많은 미덕 중에서도 이야기적 설정과 배우들의 활약은 재차 강조되어도 부족하다. 
가령 전각 즉 도장을 파는 맹인이라는 캐릭터의 설정, 그가 피복공장 주변에서 도장을 파다 만난 여공 ‘정영희’와 결혼을 한 이후부터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사진에 집착하는 성범죄자이자 모든 악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주 등, 영화는 70년대 산업화가 낳은 가장 괴물적인 가해자와 가장 취약한 억압층을 병치한다. 그리고 영화는 진정한 괴물의 얼굴을 가진 자는 누구인지 묻는다. 



영화 '얼굴'에서 임영규(권해효 배우)와 임동환(박정민 배우) 부자. / 사진.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볍지 않은 주제 안에서 고통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는 많은 숙고와 용기 그리고 적지 않은 재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영규’를 연기한 권해효 배우가 정확히 그런 케이스다. 한국영화산업에서 존재감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는 배우, 권해효의 ‘영규’는 마치 날개를 단 듯, 모든 기대와 전적을 갱신하는 활약을 보여준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구태의연한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은 너무 오랜만에 탄생한 한국영화의 수작이다. <얼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영화가 가진 높은 완성도 때문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현재 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혹은 난항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거품을 뺄 때다. 제작 비용에서 낮출 수 있는 모든 것을 낮추고 편수로 승부해야 하는 시기다. 이런 전략이 승산이 있는 것은 한국영화가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밀리고 있는 아시아 영화산업에서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다. <얼굴> 그리고 한국영화의 근미래를 격하게 응원하는 바이다. 
김효정 영화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