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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문(魂門)

올해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문(門, Door)입니다. 파리의 개선문보다 더 유명해졌죠.
넷플릭스 최초로 누적 3억뷰를 돌파하는 대기록을 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서 악령들이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헌트릭스가 지키는 문입니다.
문의 사전적 의미는 공간의 경계나 출입하는 곳에 설치한 건조물입니다. 안과 밖을 이어줍니다.
노래나 설교에도 나오듯 문은 천국에도 있고 지옥에도 있고, 극락정토에도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문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창 우리은행 예금담보대출 구 역할을 합니다.



케데헌 포스터 [사진출처-넷플릭스]



세상만사, 모든 게 문과 연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어 사람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을 ‘문을 열어젖히는 원카드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몇 번이나 문을 여닫거나 통과했는지 알아볼까요.
직장인이라면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욕실문을 여닫고 현관문을 여닫고, 지하철 객차나 버스 문을 통과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엘리베이터, 화장실, 4대보험 필수 회의실, 식당 등을 오갈때 수시로 문을 여닫거나 통과합니다. 퇴근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대략 세 봤더니 50번이 넘네요.


자동차 문에도 ‘계급’이 존재?





걸윙도어를 채택한 별내 유승한내들 벤츠 SLS AMG 자료사진 [사진출처=매경DB]



문은 현실세계에서 권력과 신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누가 어떤 형태 어떤 크기의 문을 어떻게 여닫는지에 따라 권력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자동차 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량의 성격을 보여주 내차판매 기도 하지만 ‘말없이’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탔던 전용차량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벤틀리는 오직 여왕만을 위해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를 제작했죠. 플래그십 모델인 아르나지 모델의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높이가 1770mm 높습니다.
문도 높습니다. 모자를 즐겨 쓰는 여왕이 차량에 탑승할 때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왕의 전용차처럼 따로 제작하지는 않지만 럭셔리·슈퍼카도 문을 통해 차별화된 존재감을 부각합니다. 다 똑같은 문이 아니라는 뜻이죠.



슬라이딩 도어를 적용한 기아 카니발 [사진출처=기아]



자동차 문 형태는 10여종에 달합니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위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문은 ‘OEM 도어(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Door)’입니다.
자동차 귀천에 상관없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형태입니다. 기아 모닝도 현대차 아반떼도 벤츠 S클래스도 모두 이 도어를 적용했습니다.
도어 좌우로 벌어지듯이 열리는 OEM 도어는 운전석·조수석·뒷좌석에서 타고 내리기 편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단, 좁은 공간에서는 ‘문콕’을 당하거나 낼 수 있습니다.
슬라이딩 도어는 기아 카니발, 혼다 오딧세이 등 미니밴에 장착됩니다. 도어를 옆으로 밀면 됩니다. 미닫이 문이죠.
슬라이딩 도어는 OEM 도어보다 좁은 공간에서 유리합니다. 요즘은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가 일반화됐죠.



시저 도어를 처음 채택한 람보르기니 쿤타치 [사진출처=매경DB]



자, 지금부터 소개하는 문들은 “난 너희와 달라”라고 외칩니다. 스포츠카나 슈퍼카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걸윙 도어, 시저 도어, 버터플라이 도어입니다.

걸윙 도어는 도어가 수직으로 열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마치 갈매기가 날개를 펼친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걸윙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1954년 300SL에 처음 적용한 것이 시초입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한 타임머신 차량인 드로리안도 걸윙 도어를 채택했죠.
걸윙 도어와 얼핏보면 비슷해보이는 문이 시저 도어입니다. 가위질 할 때처럼 대각선 위로 열립니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가 선호합니다.
버터플라이 도어도 걸윙·시저 도어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나비 날개 모습과 닮았습니다. 페라리와 맥라렌이 내놓은 슈퍼카에 달렸습니다.


코치 도어, ‘명문 자동차 집안’의 상징





롤스로이스 팬텀의 코치도어 [사진출처=롤스로이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도어가 ‘수어사이드 도어’입니다. 앞문과 뒷문이 서로 마주보며 열리는 형태입니다. 양문형 냉장고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뜻은 무시무시합니다. ‘자살 문’이기 때문이죠.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술 부족으로 고속 주행 때 뒷문이 바람의 영향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문과 뒷문 사이에 있는 기둥인 B필러가 없어 전복 때 더 위험합니다. 필러는 차체 강성에 영향을 줍니다.
차체 강성이 취약한 측면에 위치한 B필러가 없으면 충돌 안전성이 떨어지죠. B필러가 손상된 채로 출고됐다면 운행할 수 없는 심각한 결함으로 여겨집니다.
수어사이드 도어라는 이름에 ‘죽고 싶으면 타라’는 의미를 담은 셈입니다.
폼생폼사, 롤스로이스·벤틀리 등 글로벌 명문(名門) 브랜드는 위험하지만 권위를 보여줄 수 있고 뒷좌석 승·하차도 편한 수어사이드 도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말이나 마차를 탄 왕을 위해 열리는 커다란 성문이나 궁궐문을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술 발전으로 탑승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은 수어사이드 도어 대신 ‘코치 도어’라는 용어를 씁니다. 코치는 마차라는 뜻입니다.
코치 도어는 안전성에 대한 자신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B필러를 없앤 ‘필러리스’는 차체 강성과 충돌 안전성을 유지해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역대급 결함’에서 ‘역대급 실력’이 된 셈입니다.
B필러리스는 탑승할 때 편안함과 개방감을 제공합니다. 거치적거리는 기둥이 없어서죠. 공간도 더 넓어 보입니다.


코치 도어 통해 ‘사랑방 문화’ 확산





코치도어를 적용한 콘셉트 쓰리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프리미엄 브랜드를 넘어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려는 제네시스도 코치 도어에 주목했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없이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롤스로이스·벤틀리급’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겠죠.
제네시스는 콘셉트카 ‘네오룬’에 코치 도어를 적용했습니다. 네오룬은 초대형 전동화 SUV입니다. 한국의 단아한 달항아리(백자대호), 온돌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네오룬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 레드닷 어워드, 미국 굿디자인 어워드,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모두 상을 받았습니다. 코치 도어가 상징하는 품격과 한국의 미가 제대로 어우러진 결과겠죠.
현대차그룹은 더 나아가 “왕후장상 씨는 따로 없다”며 코치 도어의 ‘신분파괴’에 나섰습니다. 대중적인 소형차급에 코치 도어를 적용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에서 각각 ‘콘셉트 쓰리’와 ‘콘셉트 EV2’를 공개했습니다.
콘셉트 쓰리는 현대차 전용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첫 소형 EV 콘셉트카입니다. 해치백 형태의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갖췄죠.
콘셉트 EV2는 소형 전기 SUV로 네오룬처럼 디자인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025 레드 닷 어워드 : 콘셉트 디자인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코치도어를 적용한 콘셉트 EV2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개인적 판단이지만 코치 도어는 시대적 상황, 한국의 전통,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문입니다.

코치 도어는 문을 활짝 열어 환대하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을 닮았습니다.
자율주행 시대를 앞두고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생활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차량에는 편안함, 개방감을 제공해주는 코치 도어가 제격입니다.
코치 도어는 문을 통해 이어지는 한국의 ‘방 문화’와도 잘 어울립니다. ‘방’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입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입니다.
전통 가옥에서나 근대 가옥에서도 안방, 사랑방, 건넛방, 골방, 다락방, 주방, 큰방, 작은방 등 집 안에 있는 대부분 공간은 문을 통해 이어집니다.



제네시스 네오룬의 코치 도어는 사랑방 관문 역할을 담당한다.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한옥에서 사랑방은 방 중에서도 가장 다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안방보다 작지만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공간입니다.

바깥주인이 거주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이자, 서재이자, 휴식처이며 작업 공간이자 문화 공간입니다.
사랑방은 단촐하지만 단아합니다. 가구를 최소화해 공간감을 넓히면서도 아늑함을 추구합니다.
차량에 적용된 코치 도어는 탑승자를 두팔 벌려 ‘환대’하며 사랑방으로 인도합니다.
따져보면 코치 도어도 혼문입니다. ‘혼’을 담아 정성스럽게 만든 ‘문’이기 때문이죠.
대신 케데헌처럼 악령이 나오지 못하도록 닫아두는 게 아니라 탑승자를 환대하며 활짝 열어주는 ‘골든 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