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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소년 시절의 김규식’이라고 국내에 알려진 사진으로, 그동안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우연히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이 사진이 있다는 걸 알장외주식거래사이트
게 된 정 교수는 올해 1월, 미국으로 향했다. 그 사진에는 “언더우드 목사 보호하의 ‘존’”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사진을 찾았다. 그는 두 사진에서 김규식 일생의 운명을 읽어낸다. 귀국 후 두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제1권의 ‘서장’과 제3권의 ‘김규식 자료 추적기’를 쓰며, “책마다 그 운명이 있구나” 싶었다. 총 1872쪽에 이르는한일단조 주식
‘김규식 평전’ 〈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이렇게 완성됐다.


저자 정병준 교수. 테이블 오른쪽에 초고가 쌓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sisain/202509온라인야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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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과 그의 시대> 저자 정병준 교수. 테이블 오른쪽에 초고가 쌓여 있다. ⓒ시사IN 이명익



공훈전자사료관에는 독립운동가 김규식(1881~1950)의 주요 공적이 ‘대박주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임시정부 외무총장. 1932~1935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으로 올라 있다. 인텔리 지식인이며 학자적 정치인으로 꼽히지만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부친 김용원의 유배로 김규식은 어린 시절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아원학교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존’ ‘본갑이’로 불렸다. 언더우드에게 영어를 배워 10대 중반에 이미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 어학의 천재였다. 열여섯 살 때, 고종의 아들 의화군의 도미 당시 수행원 역할로 미국 로녹(로어노크) 대학에 유학할 수 있었다. 귀국 이후 YMCA 지도자부터 한글학자에 이르기까지 사회활동을 활발히 했다. 드문 경력을 가진 ‘근대적 지식인’으로 안온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다. 중국, 미국, 러시아, 유럽의 파리를 오가며 자주독립을 외쳤다. 해방 이후에는 좌우합작·남북협상이라는 중도파의 길을 걸었다. 한국전쟁 중 북한에 납치돼 1950년 12월 평안북도 만포진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병준 교수가 보기에, 김규식은 당대 독립운동가와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다. 1990년대 후반, 김규식의 비서 송남헌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다루어야 할 인물’로 남겨두었다가 2014~2015년 무렵부터 본격 연구에 나섰다.


2015년, 김규식의 아버지 김용원에 대한 논문(‘김규식의 부친 김용원의 가계와 생애’)을 먼저 썼다.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용원은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 일행에 동행했다. 사진술을 배워 국내에 촬영국을 열었다. 최초의 사진관이다. 고종은 도화서 화원에서 시작해 근대 문물을 경험한 선각자가 된 그를 러시아 밀사로 파견했다. 이 비밀외교가 노출되고 청일이 압박하자 고종은 1885년 김용원을 ‘사석(死石) 버리듯이’ 유배 보냈다. 김규식이 네 살 때였다. 직계가족이 그를 돌보지 않았고, 사실상 고아로 자라게 되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정 교수는 ‘김규식 평전’ 작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감했다. “김용원에 대한 논문을 쓰고 나니, 1000피스짜리 직소 퍼즐의 한 부분을 맞춘 느낌이었다. 이런 밀도로 김규식의 삶을 쌓아 올리면 어느 정도 분량을 써야 할까. 그때도 가늠이 되지는 않았지만, 조그마한 파편 같은 자료라도 손에 걸리면 김규식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김규식을 ‘한국의 외로운 세계인’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중도파 노선은 진영의 응집력과 거리가 멀었다. ‘성공과 실패가 분명치 않은 길을 걸어간 사람인 데다 정치적 추종자를 거느리지 않은 외로운 존재’였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아니었다. ‘이분법적 세계관에 익숙한 현대 한국 사회가 흑백, 좌우, 미소, 남북이 분명하지 않은 인물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규식이라는 인물이 주요한 학문적 연구 주제가 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다. “현대사 속 인물의 비극적 서사에 끌렸다. 좌절됐지만 이 또한 역사의 중요한 단면이고, 중요한 목소리일 수 있다. 그런 생각에 김규식 연구를 계속했다.”


문제는 자료였다. 해방 이후 5년 동안의 활동은 비교적 잘 알려졌으나, 해방 이전의 ‘생애 자료’가 많지 않았다(정 교수는 이번 평전에서 1945년 해방 후 중국에서 돌아오는 64세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김규식 평전’을 쓰되, 그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가 없는 시기는 당시 상황과 구조를 통해 그의 위치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김규식과 그의 시대’다.

흩어진 자료 모아 김규식의 삶 복원

3부작. 뒷면에 김규식의 사진이 담겼다. ⓒ시사IN 신선영"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18/sisain/20250918090245727uinh.jpg" data-org-width="1280" dmcf-mid="0U4YylhLL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18/sisain/20250918090245727uinh.jpg" width="658">

<김규식과 그의 시대> 3부작. 뒷면에 김규식의 사진이 담겼다. ⓒ시사IN 신선영



본격적 자료 조사에 동력이 붙은 건 연구년이던 2016년이었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에서 김규식의 삶을 추적했다. 로녹 대학을 방문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여운형이 보낸 독립 청원서·편지 등을 발견했다. 미군정기 비밀문서, 족보, 승정원일기, 옛 사진 경매 사이트, 세브란스 인턴 증명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의 여권 발급 대장 등 여러 자료를 찾고 정리해나갔다. 정병준 교수는 ‘김규식 자료 추적기’에서 연구의 상당 부분이 재미 역사학자 방선주 박사가 발굴하고 의미 부여한 자료의 덕분이라고 썼다. 영어·중국어·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방 박사는 1970년대 말부터 미국 아카이브에서 수많은 자료를 발굴해냈다. 평생의 업이었다. 미국 내셔널아카이브에서 1년 파견근무를 했던 2001년 이후 방 박사와 친분을 이어왔다.


정병준 교수는 여러 나라에 산재한 ‘부스러기 자료’로부터,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돼 일본의 방해와 다른 나라의 냉대 속에서 혈혈단신 자주독립을 알려 결국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김규식의 삶을 복원해냈다. 2006년 〈한국전쟁〉, 2015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로 한국출판문화상 학술 저술 부문을 두 차례 수상한 바 있는 정 교수는 그렇게 해방 80주년을 맞은 올해 대작을 펴냈다.


그가 쓴 저자의 말 마지막 대목이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왜 글을 쓰는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헤아리지 못했으나, 좋아하는 일이었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감사했고, 그 일이 직업이 되었다. 매혹적이고 마력적인 무언가에 매료되어, 부스러기 빵 조각, 빛나는 조약돌을 따라 길 끝에 있을지 모를 미지의 세계를 찾아 헤매었다. 그 결과 매혹적인 이야기를 추적하고, 그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연구 일생을 살았다.’ 김규식 3부작은 묵직했고, 역사학자의 서문은 아름다웠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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