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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통상 협상을 진행 중인 정부가 ‘비둘기(온건)파’에서 ‘매(강경)파’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 사태 이후 국내에 반(反)트럼프 정서가 형성됐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실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방미 기간에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한미 통상 합의의 필요 조건이라고 못을 박았다. 여기에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체결돼도 이는 출발선에 선 것일 뿐,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는 상호VIP가입
호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같이 밝혔다. 통화스와프는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감안할 때 통화스와프 없이 3500억달러를 내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통상 현안과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논의했바닥주
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은 일본과 경제 규모나 외환시장 인프라 면에서 조건이 다르다”며 “한국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외환시장 안정화를 강조하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에 이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베선트 장관을 따로 만나 통내일의증시
화 스와프와 관련해 논의했다.
서울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간 합의된 투자 규모가 한국 외환보유액의 70%를 웃돈다”며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 없다면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지원 사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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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면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을 비롯한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의 ‘통화 스와프’ 요구에 이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거들고 나섰다. 김 실장은 통화 스와프에 대해 ‘3500억주식투자비법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안을 담은 통상 협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현금 흐름성(캐시플로우) 투자는 무제한 통화 스와프가 체결된 상황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고 해서 곧바로 투자를 이행하겠다는 건 아니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3500억달러 투자 이행의 충분조건을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 대통령이 강조하는 상업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호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최종 합의문에 서명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김민석 총리는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 체포·구금 사태로 이어진 비자 문제 해결을 통상 합의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김 총리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사실상 일이 진전될 수 없다”라면서 “이번 구금 사태는 한국 국민 일반뿐만 아니라 거기에 구금된 한국 노동자들한테 충격이 굉장히 컸다”라고 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총리실은 추후 언론 설명자료를 통해 “대미 투자를 유보한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비자 문제와 관련한 우리 측의 불편한 시각과 함께 향후 원활한 경제 협력을 위해선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무제한 통화 스와프와 비자 문제 해결은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이행하기 어려운 카드다. 특히 통화 스와프의 경우,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입김이 닿지 않는 독립기관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 비자 문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 슬로건인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만 우대하는 비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내 외환 당국 관계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 관계자가 베선트 장관을 비롯해 미국 행정부에 통화 스와프를 제안했지만, 이 문제의 결정권은 연준이 쥐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 미 연준은 ‘독립성’을 두고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상황을 염두에 둔 전략적 카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부 출범 초기 수출 불확실성과 경제 영향을 우려하며 한미 통상 협상을 ‘전격전’으로 추진하던 정부의 전략이 ‘지연전’으로 전환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용범 실장은 향후 협상 진행 일정과 관련해 “다음 중요한 계기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아직 한 달 이상 남은 일정을 ‘중요한 계기’로 언급한 것으로, 통상 협상을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지연전략 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3500억달러 규모 투자를 하기로 약속한 것을 언급하며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했다. 한미 통상 협상에서 우리가 제시한 투자금이 한국 관세 인하의 전제 조건임을 다시 한번 못 박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안보부처 고위 관계자는 “조지아주 구금 사태 이후 정부의 대미 통상 협상 기류가 확 달라졌다”라면서 “조지아 구금 사건으로 국내 반트럼프 정서가 확산이 된 게 확실한 지렛대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 정부 출범 초기엔 경제 불확실성을 우려했지만,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관세 협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 같다”라면서 “대미 수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이 정도는 감내할 만 하다’는 판단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은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직후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된 협상’이라고 했지만, 협상이 길어지면서 그 이면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라면서 “대규모 국채 발행이 필요할 수 있는 통상 협상을 슬쩍 넘어가려는 전략으로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정당당하게 국익 중심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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