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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현손이자, 조선 대나무 그림의 모범을 만든 문인화가 탄은 이정(1554~1626)의 시화첩 '삼청첩' 전체가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4년에 그려졌고, 병자호란 때 불에 탈 뻔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유출됐던 삼청첩은 간송 전형필이 수집해 국내로 들여왔다. 조선의 국난과 극복의 서사를 담은 역사적 유물로 평가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인 '삼청도도-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에서 삼청첩을 선보였다. 매화·대나무·난초를 일컫는 삼청은 문인의 맑은 마음을 뜻한다. 삼청첩은 검은 예금적금이자 비단 위에 금빛 안료(금니)를 써서 그린 대나무 12장, 매화 4장, 난 3장, 난과 대나무가 같이 그려진 '난죽도' 1장 등 총 20장을 유명 문인들의 시문과 함께 엮은 작품이다. 과거 일부가 전시된 바 있으나, 2년여간의 보존 처리를 거쳐 표지와 빈 면까지 포함한 56면 전면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청첩은 만든 계기부터 국 든든학자금 이자지원 난 극복의 뜻을 담고 있다. 이정은 임진왜란 때 칼을 맞아 거의 팔이 부러질 뻔한 부상을 입었으나, 건강을 회복한 후 1594년 전쟁 중 파괴된 옛 문화를 되살리고 필생의 역작을 그리겠다는 목표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보고 당대 최고의 문인이던 차천로(시), 한호(글), 최립(문장) 등이 손을 보태 완성했다. 당시 문인 유몽인은 삼청첩을 '일세지보(한 시 법원호적계 대의 정신을 담은 보물)'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정의 '삼청첩'에 포함된 달 아래 매화도 '월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대구 수성구 대구간송미술관 미소금융재단 에 전시된 '삼청첩' 표지.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삼청첩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수난을 겪었다. 병자호란 때는 화재로 앞쪽의 글 부분이 타고 그림만 남았는데, 당시 소유주였던 홍주원이 따로 남아 있던 한호의 글씨를 수소문 끝에 구해 복구했다. 19세기엔 일본 해군 소속 군인 쓰보이 고조가 삼청첩을 구입해 우리새희망홀씨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1935년 전형필이 다시 구해 오면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로 남게 됐다.
신현진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먹빛 비단 위 금빛 대나무가 주는 시각적 감흥이 커서 대중에 삼청첩을 온전히 보여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면서 "삼청첩에 담긴 서사와 정신이 광복 80주년의 시의성과 부합한다고 판단해 절개와 보국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정의 '풍죽'(왼쪽 사진)과 '문월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대구간송미술관에 전시된 일주 김진우의 '허심수덕'.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했다 일제 치하 조선에서 체포돼 옥살이를 한 김진우는 이후 서화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창칼을 닮은 묵죽화를 그렸다.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전시는 삼청첩 외에도 4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이정의 대표작 15점을 선보인다. 한국 묵죽화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며, 현재 5만 원권 지폐 뒷면을 장식하는 '풍죽도'와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 등이 나왔다. 조선 중·후기 문인화가의 삼청 작품 16점과 망국 직전 항일지사들의 삼청 작품 13점도 함께 전시된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시대에 따라 절의지사들이 남긴 그림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가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될 것"이라 밝혔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