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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거센 비는 자정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북두칠성의 낭만을 기대한 운장산 서봉은 순식간에 재난상황으로 바뀌었다. 예보에는 없던 폭풍우다. 세찬 바람이 비비색Bivy-sack을 뒤흔든다. 콸콸 내리는 비는 거세지기만 한다. 혼자 겨우 누워 있는 작은 공간에 요란한 소리가 쉴 틈 없이 울린다.
'난리 났어. 텐트 다 무너지고… 비 그치고 정비해야겠어.'
'선배… 비가 안 그칠 것 같은데요.'
'윽, 일단 쉬어! 꽁꽁 싸매고! 얼어 죽으면 안 된다…'
속옷까지 쫄딱 젖었다. 낮의 산행으로 몸은 지칠유전관련주식
대로 지쳤다. 춥고 피곤하다. 가만히 누워 해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그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행히 밤새 비는 그쳤고 무사히 아침이 찾아왔다. 부스럭 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그대로다. 열 발자국 거리에 있는 서로의 목소리가 바람에 묻혀 희미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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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서봉 진입 구간. 벤치가 두 개 놓여 있다.


"운해야!"
주위를 둘러본다. 끝없이 깔린 구름이 바람을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넘실거리는 구름파도가 금방이라도 몰려와 발목을 스칠 것만 같다. 구름 사이사이 산꼭대기들이 솟아 있다. 무협지의 한 장면 같다. 넋을 놓황금성어플
고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앉았다. 악몽 같았던 밤은 벌써 어제다.



폭풍우를 견뎌낸 후 다음날 아침. 서봉에서 운장대로 넘어가는 나무 데크 계단길이다.


Let's go 호남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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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종주 코스가 있다. 전국 12대 종주로 꼽히는 종주 산행 중 난이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코스다. 종남산(608m)~서방산(612m)~위봉산(558m)~원등산(714m)~연석산(928m)~운장산(1,125m)~구봉산(1,002m) 7개 산을 잇는 43km 종주. 그 이름도 멋있는 호남알프스스톡웰
다.
호남알프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매우 심하게 반복되는 대표적인 종주 산행 코스다. 체력 소모가 크고 난이도가 높은 종주로 잘 알려져 있다. 중간에 식수 보급처가 없어 난이도가 더욱 높이 평가된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정비되지 않은 구간이 많기도 하다. 험한 종주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43km의 장거리가 망설여지는 사람을 위한 호남알프스 축소 버전이 있다. 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연석산~운장산~구봉산을 잇는 약 18km 미니 종주다. 호남알프스의 주인공인 운장산과 아홉 개 암봉을 오르내리는 구봉산 코스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알토란 같은 코스다. 1박2일 백패킹 코스로도 적당하다. 암릉 박지로 유명한 운장산 서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구봉산을 넘어가는 계획을 세웠다. Let's go 호남알프스.



산죽이 가득한 운장산 등산로.


콸콸콸. 취재 며칠 전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가득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손이 닿는 물길마다 멈춰 손수건을 적시고 간다. 들머리부터 연석산 정상까지 쉴 틈 없이 오르막이다. 3km가 안 되는 거리 동안 700m 고도를 높여야 한다. 배낭엔 뜯지 않은 물이 가득하다. 최대 무게의 배낭이다. 뜨거운 햇살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산행 초반부터 온몸이 낑낑거린다.
"하늘 열려요!"
정상 직전, 드디어 보이는 하늘이 반갑다. 힘겹게 올라온 암릉에서 펼쳐지는 풍경에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낀다. 가파르게 각도를 세운 산들이 마을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다. 유독 뾰족해 보이는 산들의 모습에 감상평을 나눈다.
"호남 산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멀리 오늘의 목적지인 운장산 서봉도 보인다.



운장산 서봉. 봉우리 끝쪽 암부는 유명한 박지다.


연석산(928m)은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벼루 연硯, 돌 석石 자를 쓴다. 벼루를 만드는 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벼루돌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완주군의 최고봉인 연석산은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조망이 좋다. 물이 많은 계곡과 커다란 바위, 우거진 수풀. 볼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산이다.
연석산을 넘어 운장산으로 향한다. 능선을 따라 쉬운 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힘들게 높여 놓은 고도를 야금야금 깎아먹는 내리막이 야속하다. 서봉으로 향하는 길엔 중간 중간 멋지게 생긴 바위들이 있다. 산행을 함께한 오늘의 게스트는 한양대 산악부 23학번 최재원군이다. 한창 암벽 등반에 빠져 있는 그에게 바위는 반가운 존재다. 손을 올려 바위를 잡아본다. 올라가기 좋은 바위들을 보며 추석 연휴에 가기로 한 운일암 반일암 이야기를 꺼낸다.
운일암 반일암은 운장산 북쪽에 있는 약 5km 길이의 계곡이다. 큰 바위가 많아 볼더링 등반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구름이 오가는 곳이라 '운일암',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 둘을 붙여 '운일암 반일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연석산에서 하산해 운장산으로 넘어가는 길. 나무 데크 계단을 따라 걸어내려간다. 멀리 운장산 서봉의 암부가 보인다.


운장산 등산로는 정비되어 있지 않은 험한 구간이 많았다. 야생 그 자체다. 산죽을 헤치며 오른다. 키 높이까지 자란 산죽은 얼굴을 긁어댄다. 거미줄도 줄곧 등장한다. 스틱으로 앞길을 휘휘 저으며 걸어야 했다.
운장산(1,125m)은 호남알프스의 주인공 같은 산이다. 운장산 동봉은 주화산~연석산~운장산~피암목재~장군봉~대둔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송익필 선생의 호를 따서 운장산이라 부른다는 이야기와 산이 높아 항상 구름에 덮여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주장이 있다. 과거에는 주줄산 혹은 구절산이라 불렸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정상에는 3개의 봉우리가 있다. 가운데 운장대(1,125m)와 서봉(1,100m), 동봉(1,133m)이 500m 간격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서봉은 칠성대로, 동봉은 삼장봉으로도 불린다.
칠성급 박지, 서봉에서 만난 폭풍우
서봉 직전에는 '죽음의 계단'이라 불리는 계단 구간이 유명하다. 에너지 젤을 하나씩 나눠 먹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본다. 차곡차곡 고도를 올려가며 계단을 오르고 나면 짧은 암릉 구간을 지나 서봉에 닿는다.
"도착이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 던지고 터벅터벅 자리를 골라 그대로 드러눕는다. 바위에서 전해지는 냉기가 온몸을 시원하게 식혀 준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도 지친 취재진의 땀을 말린다.
"우리 10분만 이러고 있자."
온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눕는다. 바닥을 치던 몸속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18km 백패킹 종주의 박지로 고른 서봉은 정상부의 멋진 암부와 넓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명품 박지라 소문난 곳이다. 운장산의 이름에 맞게 운이 좋으면 운해를 볼 수 있는 운해 명소이기도 하다. 서봉의 다른 이름인 칠성대는 북두칠성의 일곱 성군이 운장산에 내려와 공부하던 선비들을 일깨워 주고 갔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해가 지면 검은 하늘에 총총 박힐 별을 상상하니 설렜다.



비비를 설치하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지켜본다. 폭풍우가 들이닥치기 10분 전쯤이다.


텐트 대신 챙겨온 비비색을 설치하고 한 숨 돌리려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방금까지 파랗던 하늘에 어두운 구름이 깔렸다. 회색 구름은 점점 커지더니 순식간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푸르게 보이던 산들이 희미하게 색을 잃는다. 산, 뒤의 산, 또 그 뒤 산들이 회색빛으로 깔린다. 첩첩산중의 풍경에 구름 사이 새어나오는 햇살 몇 가닥이 얹힌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은 것도 잠시 똑, 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두 방울로 시작된 비는 바람과 함께 거세지더니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챙겨온 음식을 조금 먹으려던 참이었다. 급한 대로 손으로 집었던 빵 조각을 입에 넣고 빠르게 각자의 공간으로 대피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텐트 어디에 칠래?



서봉에는 텐트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세 곳 있다. 서봉에 들어서는 길 입구에 벤치가 있는 공간은 평평하게 다져진 흙바닥으로 텐트를 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두 동 정도 넉넉하게 설치할 수 있다. 깊숙이 들어가 서봉 끝자락에 있는 암부에는 텐트 세 동 정도 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절벽에서의 멋진 텐트 풍경을 찍을 수 있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고 팩다운 할 만한 흙바닥이 거의 없어 자립식 텐트가 아니면 제대로 된 피칭이 어렵다. 끝자락 암부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텐트 두 동 정도가 들어갈 흙바닥이 있다. 텐트 설치하기에 편하고 조망도 좋아 가장 추천하는 공간이다.
비상탈출, 피암목재 하산
다음날 아침 내린 결론은 '산행 중지'였다. 쫄딱 젖은 상태로의 하룻밤은 치명적이었다. 비는 그쳤지만 모두 추위에 벌벌 떨며 밤을 지새워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사진기자는 텐트 안으로 들이친 비로 물바닥에서 자야 했다. 양말과 등산화도 밤새 마르지 않아 축축했다.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정답이다. 가장 빠른 하산길인 피암목재로 중도탈출하기로 했다.



피암목재로 하산 중. 야속하게도 날씨가 좋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며 이번 산행의 문제점을 곱씹어보았다. 억울하고 속상했다. 예보만믿고 준비가 부족했던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웠다. 구봉산의 구름다리를 기대했던 재원군에게도 왠지 미안했다. 원래 계획했던 18km 코스의 반절도 진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잔뜩 풀이 죽어 하산하던 중 넓은 계곡을 만났다.
"발 씻고 가요!"
배낭을 나란히 모아두고 축축하게 젖은 등산화를 벗는다. 발만 살짝 담그려던 계곡은 들여다보니 꽤 깊었다. 여벌옷이 있었다면 당장 풍덩 빠졌을 것이다. 무릎까지 담그고 나와 바위에서 발을 말리니 피로가 조금은 날아간다. '그래, 배웠다고 생각하자.' 맞은 비만큼의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운장산 서봉은 칠성대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상부의 바위는 누워 쉬기 좋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오늘 올랐어야 할 구봉산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다음을 기약하며 눈을 붙인다. 이틀간 쌓인 피로가 밀려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운장산~구봉산 패자부활전 기사에서 계속.



비가 그친 새벽. 사진기자가 찍은 별 사진이다. 사진보다 훨씬 많은 별을 보았다고 한다.





밤새 함께한 서바이벌 블랭킷. 이미 젖은 상태로 덮어 그런지 효과가 거의 없었다.


물水! 얼마나 챙겨야 돼?산에서의 하룻밤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계획한 코스 내에 식수 보급이 가능한 샘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다. 보급처가 없다면 휴대용 정수기를 챙기는 것도 방법이다. 1박2일 백패킹 시 1인당 3L 정도면 충분하다. 날씨와 산행 난이도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하면 된다. 바람이 없고 기온이 높은 날은 특별히 물을 넉넉하게 챙기도록 하자.
*만화등산백과 『즐거운 백패킹, 물을 챙겨라!』 참고



출처 네이버 지도(https://map.naver.com/)





산행길잡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구간이 많은 산행이다. 거리에 비해 체력소모가 크다. 총 43km의 호남알프스 종주 코스 중 운장산과 구봉산을 잇는 18km 압축 코스를 계획했다. 해당 코스는 당일 주파하기도 하지만 체력을 분배해 1박2일로 진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산행 들머리인 연석산 등산로 주차장에 화장실이 있다. 짧은 평지를 지나 숲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연석산 정상까지 쉴 틈 없는 오르막길이다. 중간의 내리막이나 평지길이 거의 없어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연석산 정상에는 따로 정상석이 없다. 들머리에서 연석산 정상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된다. 서봉으로 가는 내리막길에는 데크 계단길이 있다. 계단길을 따라 내려온 후 산죽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운장산 서봉 방향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길을 따라 오르다 길게 이어지는 데크 계단을 오르면 정상 직전에 선택할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는 암릉길과 우회길이 있다. 10분 정도 길을 따라 오르면 운장산 서봉 정상이다.



서봉 정상에서 가장 빠른 하산길은 피암목재로 내려오는 길이다. 2.5km 정도로 2시간이면 하산이 가능하다. 심하게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지만 정비가 잘되어 있지 않아 신경 쓰며 하산해야 한다. 구봉산으로 이어 산행하려면 운장대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서봉에서 600m 정도 이동하면 운장봉의 주봉인 운장대가 나오고 또 다시 600m 이동하면 동봉이다. 이후 복두봉을 지나 구봉산까지 이어 산행할 수 있다.
교통
완주·진안의 대부분의 산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다. 자차로 이동해 산행 후 차량을 회수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다. 원래 계획대로 연석산~운장산~구봉산 산행을 하게 될 경우, 구봉산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해 두고 택시로 들머리로 이동해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구봉산 주차장에서 연석산 등산로 주차장까지는 약 35km, 4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4만5,000원 정도 나온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