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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표정을 또 버렸다. 자신을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라면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먼저 반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그렇다. 2016년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뒤 그는 길거리의 폴란드 시민들이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됐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라파엘 블레하츠가 협업하려 김봄소리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올해 여름엔 파리에 있던 10만여명이 에펠탑 아래에서 공연하는 김봄소리를 지켜보기도 했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인 '2025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 가능하십니다 립교향악단 공연은 유럽인들이 사랑한 김봄소리의 음악을 한국에서 만끽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휘자였던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는 이미 합을 맞춰보길 수  차례. 경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홍콩 필하모닉 등 악단만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 뉴욕에선 2022년 야외 콘서트로 다섯 차례나 뉴요커를 함께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김봄소리는 정작 츠베 대출갈아타기 덴 감독의 색채가 점점 진해지고 있는 서울시향과 합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서울시향과의 첫 협연이 특별했던 이유다.
김봄소리의 초가을은 프러시안 블루
공연의 시작은 현대음악이었다. 서울시향은 신동훈이 2023년 내놨던 작품 ‘그의 유령 같은 고독 위에서’를 첫 곡으로 골랐다. 츠베덴 감독과 서울시향이 그 해 연말에 장애인기업 확인서 발급신청 이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 악단은 관악기와 타악기의 다양한 질감을 살리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띄웠다. 통통거리는 글로켄슈필 소리는 바이올린 협주곡에 앞서 관객들의 귀를 간지럽히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했다.
이어 김봄소리가 무대에 올랐다. 협연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가 입은 드레스는 인어를 떠올리게 하는 머메이드 라인에 색상은 카드비교 짙은 파란색인 프러시안 블루에 가까웠다. 초가을 독일 음악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색감이었다. 김봄소리는 웨인 린 악장과 츠베덴 감독에게 인사한 뒤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 김봄소리가 관객들의 집중을 끌어내기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알 만한 1악장의 절절한 바이올린 멜로디가 공연장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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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인 '2025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렷했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화려한 고음을 내고, 누군가는 비올라 같이 둥그스름한 소리를 낸다. 김봄소리에게선 두 매력이 같이 느껴졌다. 그의 소리는 속주에서도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다. 고음은 고음답게, 저음은 저음답게 내다보니 음의 높낮이 차에서 느껴지는 쾌감도 컸다. 격정적인 부분에선 몸의 방향을 바꿔가거나 허리를 숙이며 시각적으로도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헛되이 에너지를 쓰진 않았다. 그의 몸은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있더라도 활과 현은 언제나 수직에 가까웠다. 격정을 안정적으로 표현하고자 그가 들였을 노력의 무게가 느껴졌다.
섬세한 2악장, 카리스마 넘치는 3악장 
안단테(느리게) 빠르기인 2악장은 유럽의 어느 공연장이 부럽지 않은 연주였다. 여린 음량으로 절실함을 표현할 땐 감정의 온도가 세밀하게 달라졌다. 김봄소리의 피아노(여리게)와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속엔 잘게 쪼개진 조그마한 피아노와 피아니시모들이 담겨 있었다. 바이올린에도 방향이 있다면 그의 연주는 동서남북 같은 네 방향만으론 표시할 수 없었다. 동남동, 남동, 남남동과 같이 더 세밀한 분절이 필요했다. 김봄소리는 쫀득하고 알알이 들리는 소리들로 카덴차(독주 대목)를 채웠다. 단원들도 따뜻하고 여린 소리를 그대로 받아 온기와 생기가 섞인 연주를 이어갔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인 '2025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화려함이 돋보인 3악장은 김봄소리의 카리스마가 빛났던 시간이었다. 연주자들은 이따금 버거울 때면 악기가 자신을 이끄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자신이 악기를 이끄는 게 이상적인 연주라고. 김봄소리의 3악장은 악기뿐 아니라 악단 전체를 이끄는 듯했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바이올린 소리에 기민하게 반응해준 악단의 환상적인 호흡이 있었기에 나온 풍경이었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터졌다. 합창석까지 가득 채운 공연이었던 만큼 환호성도 컸다. 츠베덴 감독도 다른 공연에서보다 환하게 웃는 듯했다. 김봄소리는 앙코르 곡인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으로 생동감 넘치는 소리들을 이어 나가며 앞선 연주의 고양감을 이어갔다.
공간감을 한껏 살린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공연 2부는 협연자 없이 악단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었다. 축약 버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이 작품의 녹음본 분량은 60분 남짓이다. 츠베덴 감독은 이 곡을 53분 만에 소화했다. 이 때문에 다른 연주에선 느낄 수 없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연주 전반에서 느껴졌다. 3악장을 빼면 작품 대부분이 ‘알레그로(빠르게)’ 속도에 기반하고 있기에 서울시향은 곡의 특징을 극대화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였다. 애끓는 정서나 그윽한 정취를 한껏 살리기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인 '2025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2악장부터는 원근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츠베덴 감독은 1~2초 남짓한 시간에 여렸던 소리를 빠르게 강한 소리로 키우기를 반복했다. 트롬본 주도로 금관 악기가 우렁찬 소리를 낼 땐 음악이 눈앞에 다가와 “나를 들어라”고 외치는 듯했다. 이 대면이 부담스러워질 때면 클라리넷, 오보에와 같은 목관들이 섬세하고 가녀린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음악을 끌고 달아났다. 관악 소리가 앞뒤로 폭을 늘렸다면 현악 소리는 가로로 넓어지며 드넓은 공간을 빽빽이 채웠다. 이렇게 츠베덴 감독은 꽉 찬 음향으로 공간의 수축과 팽창을 빠르게 반복하며 서울시향만의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악단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선언 같은 연주였다.
서울시향의 이번 무대는 미국 투어를 준비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이 악단은 오는 27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김봄소리와 협연한다. 김봄소리는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을 다니면서 카네기홀과 친숙함을 쌓아왔다. 이날 공연에서 서울시향은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 제작을 맡았던 작곡가 정재일이 쓴 곡 ‘지옥’도 연주한다. 29일엔 미국 오클라호마주로 건너가 맥나이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공연인 '2025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과 김봄소리'.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주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