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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노동신문=뉴스1) = 평안북도 수해 지역에 파견된 인민군 장병들의 모습. (자료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이 지난해 기간협의 러시아 각지 건설 현장에 파견한 노동자는 수천 명에 이른다. 청년층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되면서 부족해진 건설 현장 인력이 북한군들로 채워졌다.
러시아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 입국한 북한 주민이 1만3221명으로 2023년에 비해 12배로 급증했다. 이 중 입국 목적을 '교육'으로 밝힌 인원이 7887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 발주기관 북제재가 강화되면서 회피 수단이 진화된 것이다. 이제는 수많은 북한 노동자가 당국에 의해 유학생 신분으로 전환돼 국제 사회의 눈을 피하고 있다.
지난 24일 뉴스1과 만난 이은평(34)씨는 북러가 교묘하게 북한 노동자들의 출입국 방법을 바꾼 시기를 경험한 군인 출신의 파견 노동자다. 그는 지난 2017년 러시아에 파견됐다가 대북 제재로 잠 12학점 시 북한에 돌아왔는데, '유학생 비자'로 다시 러시아에 파견됐다.
러시아어, 생활규칙, 러시아법 등 공부…파견되기 위한 北 군인들의 노력
은평 씨는 19살에 입대했다. 그가 들어간 131부대는 핵실험 관련 설계 및 건설에 직접 참여하는 기구로 '131원자력지도국'으로도 불렸다. 당시 당에서는 유일하게 직속 부대를 보유하고 유급휴가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러시아에 파견될 노동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는 2014년에 발표됐다. 그때부터 은평 씨를 비롯한 131부대원들은 러시아어 공부와 함께 그곳에서 지켜야 할 법과 생활 규칙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들 공부는 힘들었지만 정해진 삶에서 잠시 벗어나 밥도 주고 돈도 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들떠있었다고 채무자 한다. 장기 복무를 하는 북한 군인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그러기 위해선 영어 자격증 '토플'처럼 러시아어 자격증 시험이 일정 점수 이상이어야 했다. 군대에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다들 하루에 단어 약 600개씩을 외우며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일상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학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실 모든 노력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출신 성분이었다. 신원 조회를 통해 직계 가족부터 사촌까지 '행방불명자'는 없는지, 당원이 있는지, 남쪽과 연관된 사람이 있는지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또 소학교(초등학교) 시절 담임 등 그동안 살아온 행적과 관련된 모든 주변을 찾아가 평판을 듣고 그들이 지장으로 신분을 보장해 줘야 비로소 신분이 증명됐다고 한다.
"당시 제가 선발될 수 있었던 건 저를 믿어준 24명의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추천하고 보증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거예요. 저를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 선생님, 친구들이 도와줘야 가능한 거죠. 그리고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안 계시거나 하면 그것도 자격 미달이었어요.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클 가능성이 높거나 정신력이 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런 믿음들은 결국 나중에 부대 이탈을 결심하는데 큰 족쇄가 됐다. 자신을 보증해 준 사람들이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걱정과 죄책감 때문이다.
검증 과정에는 신체검사도 포함된다. 건강한 청년들이 1년도 넘게 걸리는 준비와 검증 과정을 거친다. 당시에는 약 34명 정도가 선발됐다. 한 중대에 약 150명 정도가 있었는데, 중대당 2~3명밖에 통과하지 못했다. 그만큼 극소수의 '엘리트'가 뽑힌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 다들 그래서 '뽕'이 장난 아니었다. 거의 미국 외교관이나 엔지니어로 발탁되어서 가는 느낌이었다. 원래는 북한에서 파견을 나갈 때 무조건 아내와 자식이 있어야 조건이 되는데, 저는 현역 군인이었으니 검증 과정이 더 엄격했다. 김정은이 그 자리에서 죽으라면 죽을 만큼 사상 검증도 많이 받았다"



고려항공 자료사진 .2018.5.26/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이륙과 함께 느껴진 '이상함'…무조건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삶
2017년 부푼 마음을 안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러시아 파견에 선발되기 위한 큰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가문의 영광이자, 마을의 자랑으로 국가의 선택을 받은 은평 씨는 당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청난 흔들림과 함께 밤하늘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몇시간이 지나자 창문 밖으로 현실이 보였다. 평양 상공은 암흑 그 자체였는데, 경유해야 하는 중국의 '상하이' 상공에 가까워지자 온통 '불바다'였다. 그때부터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환승한 비행기는 평양에서 난생처음 탄 비행기와 달랐다. 북한이 보유한 구식 비행기보다 신식이었던 보잉기는 훨씬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날았다. 게다가 기내식도 맛있었다. 러시아에 내렸다가 북한에 다시 돌아가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하늘에서 경험한 것이 은평 씨 인생에 전례 없던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삶은 기대와 달리 여전히 규율 속에 파묻힌 과제의 연속이었다. 도착 다음 날부터 작업장에 투입돼 오전 7시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일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오후 8시부터 또 11시~12시까지 집을 짓는 건설장에서 노동했다고 한다.
"자정까지 일을 해야 하는 규정은 없었어요. 다만 자기 할당량을 채우려면 그때까지 수행해야 하는 겁니다. 작업 환경이 안 좋고 신체적 조건이 좋지 않으면 새벽 2~3시까지 넘어가기도 합니다. 과제를 못 끝내면 숙소에 들어올 자격이 없고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북한에서 잘 단련 받고 교육받은 '인간 병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임무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조건성의 원칙'에 어긋나면 안 되는 게 북한 군인들의 사명입니다."
규칙상 그곳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의 대화, 휴대전화 사용과 외출도 금지된다. 건설장에 수도 시스템도 좋지 않았는데, 겨울에도 찬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된 노동에 찬물로 씻으면 코피가 나기 일쑤여서 추울 때는 거의 씻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임금이었다. 당시 은평 씨가 들었던 러시아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의 2~3배 정도를 받았다. 현장에 있던 러시아 노동자는 6만~9만루블(101~151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은평 씨는 16.5만루블(278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받았다고 한다. 식사는 제공됐지만 거기서의 생활비와 당에 대한 '충성 자금' 등을 제외하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해외 노동자들과 친분으로 얻은 휴대전화…"대한민국에 편견 점점 사라져"
반복되는 일상이 지속되면서 감시를 틈타 같은 현장에 있는 해외 노동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등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을 줄이고 일을 도와주는 대신 그들의 도움으로 중고 휴대전화를 살 수 있게 됐다.
"어릴 때는 미국의 식민지 생활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고, 외국에 나오기 전에는 안기부라는 곳에 잡히면 우리의 피를 뽑고 선동 수단으로 삼는다는 교육을 받기만 했는데, 휴대전화를 통해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됐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해 온 대한민국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조금씩 자본주의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궁금증이 새로 생길 무렵, 2017년 유엔 대북제재 결의가 발표되면서 2019년 12월까지 모든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의 거주가 불가능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제2375호)로 북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 허가 부여가 금지돼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은 비자 연장을 할 수 없어 불법 체류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북한 땅을 밟은 은평 씨가 가장 먼저 들은 것은 부대에서 5달러를 걷는다는 말이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만수대의사당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고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는 일이 모든 일의 시작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5달러는 복귀한 군인들이 내야 하는 꽃값이었다.
"러시아에서 아무리 노예처럼 생활을 해도 북한에서의 일상에 비하면 자유인의 삶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상인데 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죠. 거기서는 그래도 제대로 된 밥을 줬는데, 오니까 원래대로 습기 찬 곰팡이 밥을 주니까 이제는 못 넘기겠더라고요. 그때부터 비교가 하나씩 되면서 탈북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계속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처음 생겼어요."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를 위해 군인들을 오랜 시간 놀리지 않았다. 약 20일간 북한에서 머물다가 2017년 12월에 다시 대사관으로부터 '유학생 비자'를 받아 은평 씨를 비롯한 군인들을 러시아로 재파견했다.
은평 씨는 "명색은 외국대학의 유학생으로 나왔는데 저는 그 대학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가보지도 못했다"면서 유학생 신분으로 가장해 나온 뒤에는 북한 당국에 내야 하는 계획금에 대학 등록금까지 부담해야 했다고 말했다.
생활도 그전보다 더 열악해졌다. 그나마 보급품으로 주던 옷 한 벌도 없고, 식사 제공도 되지 않아 러시아 일반 주택가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옷을 주워 입기도 하고, 마트에서 버린 상하기 직전의 버려지는 과일과 채소를 주워 먹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유일한 낙은 휴대전화로 다운받아 본 해외 영화와 드라마들이었다. 2019년에는 실시간으로 '사랑의 불시착'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노동자들 간에도 세대 격차가 있어서 연세가 있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젊은 노동자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운받은 영화나 드라마를 공유해주거나, 심지어 넷플릭스 보는 방법을 전수하며 일상을 견뎠다.
"코로나19 시기 병원 못 가 동료 '죽을 고비'…벗어나야겠다는 확신 들어"
그곳에서의 탈출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결국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였다. 벽돌을 자르는 일 등을 하면서 다리뼈가 보일 정도로 다치고 피를 많이 흘려도, 병원에 실려 가 다 아물기도 전에 바로 일터로 복귀를 하는 일이 흔했다.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동료들의 몫이 되기에 일과를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2020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유행하면서 상황은 악화했다. 공장 일부는 문을 닫은 상황에서 당시 동료가 위궤양에 걸려 쓰러졌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위급한 상태였지만, 코로나19를 병원에서 옮아오면 전체 노동자들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사람 생명을 돈 버는 기계 이하로 보는 행위에 더는 못 참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아픈 친구도 그렇고 저도 계속 여기 있으면 언젠가 그냥 죽을 게 뻔하거든요. '살기 위해서는 이 땅을 떠나야 돼'라고 확신이 들어서 러시아에 있는 유엔지부에 연락을 하게 됐습니다."
은평 씨는 유엔 연락 후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진 난민수용소라는 곳에서 난민 지위를 얻을 때까지 약 4개월간 숨어지냈다. 다만 난민 지위 심사는 러시아 경찰서가 진행하는데, 북한 출신이 맞는지 등을 확인받는 재판 과정에서 불행히도 북한 관리자를 마주치게 되면서 그곳을 다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은평 씨는 난민수용소에서 이미 난민 지위를 얻은 한 수용자의 도움으로 러시아 경찰서와 연계된 마피아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 몸에 늘 칼을 들고 다녔는데, 당시에는 잡히면 무조건 자결한다는 다짐으로 목숨을 걸고 생활했다고 한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5개월을 숨어지내다가 2021년 3월, 터키 등 나라를 경유해 한국 땅을 밟게 됐다.
은평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으로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어린 청년 병사들의 송환을 언급했다. 전직 북한 군인으로서, 그들의 선배로서, 비슷한 과정을 겪은 한 사람으로서의 진심을 담았다.
"제일 자유가 없는 곳은 북한이라고 생각합니다. 못 사는 곳 하면 아프리카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먹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먹고, 하기 싫은 것은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나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이 내 생각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꼭 도와주세요."
youmj@news1.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