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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거절도 부탁도 잘 못하는 친구가 있었다. 약속을 정할 때는 무조건 상대가 편한 시간과 장소로만 잡았고, 아무리 어려운 부탁을 받아도 거절하지 못했고, 지적을 받으면 옳고그름을 따지기 전에 사과부터 먼저 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에게는 고교 시절부터 붙어다니는 단짝친구가 있었다. 그 단짝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했다. 부탁이나 제안도, 거절도, 따지기도 잘 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따지거나 거절을 할 때도 예의가 발랐고 양보와 타협도 잘 했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주도적이고, 한 사람은 순응적이었기에 둘의 케미는 잘 맞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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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준 팔찌 “돌려달라” 말도 못하고
내 친구는 매우 검소했다. 명품이나 사치품은커녕, 생필품도 가성비를 꼼꼼히 따진 뒤 조심히 구매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친구가 처음으로 꼭 필요하지도 않는데 꽂힌 물건이 생겼다. 팔찌였다. “어느 날 이상하게 팔찌에 꽂힌 거야. 원래는 액세서리 하는 사람을 전혀 이해 못했는데 말이야.”삼영전자 주식
게다가 마음에 드는 팔찌는 가격이 꽤 나가는 백화점 고급 브랜드였다. 평소 소비철학에 맞지 않는 가격대였지만 친구는 큰 마음을 먹고 구매했다. 하지만 너무 마음에 들어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 팔찌를 하고 단짝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단짝의 눈에도 팔찌가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그 팔찌 너무 예쁘다! 나 내일모레 경봉 주식
소개팅 하는데 그거 좀 빌려주면 안 될까?”
평소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친구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잠시 망설이게 됐단다. 자신도 차고 다닌 지 몇 일 되지 않은 데다 너무 아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짝에게 팔찌 따위도 안 빌려주는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일까봐 흔쾌한 척 팔찌를 빼서 빌려주었다. ‘내일모레 소개팅이 끝나고 돌려줄 100%수익나는주식은패턴이있다
테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일주일이면 돌려받겠지’라며 자신을 달래면서 말이다.
일주일이 지나도 단짝은 연락이 없었다. 두어 주 지나서 단짝을 만났을 때도 팔찌 얘기는 전혀 없었다. 먼저 팔찌를 돌려달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친구는 ‘팔찌를 돌려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걸로 보일까봐’ ‘혹시 빚독촉처럼 보일까봐’ ‘먼저 돌려줄 때까지 기다리지MDS테크 주식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등등의 이유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1개월, 2개월 흘러가다 마침내 3개월째에 접어들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는 돌려달라는 말을 하는 걸 더 어려워했다. 빌려주기 싫었지만 흔쾌한 척 빌려준 데다 지금까지 돌려받지 걸로 전전긍긍하고 있었기에, 돌려달라고 말하는 순간 그 모든 마음이 들킬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속앓이 3개월째, 남자친구가 준 선물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생일이었다. 사귄 지 몇 달 안 된 남자친구가 집에 가서 풀어보라며 생일 선물을 건네주고 갔다. 친구는 집에 가서 선물 포장을 풀었다가 펑펑 울었다. 선물 상자 안에는 단짝에게 빌려준 것과 똑같은 팔찌가 들어있었다.
나의 친구는 말했다. “내가 팔찌를 돌려받지 못하는 사연을 여동생에게 얘기했을 때, 동생은 나를 엄청 한심해 했어. ‘언니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남들이 언니를 호구로 대하는 거’라며 닦달을 하더라고. 또 다른 친구에게 얘기했을 때 그 친구는 엄청 분개하면서 당장 자신이 대신 돌려받아주겠다며 날뛰었어. 모두가 나를 안타까워 해서 하는 말인 줄은 알아.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더 쪼그라들었어. 내 물건도 돌려달라고 말을 못하는 내가 정말 문제가 있고 한심한 사람이구나 하는 자괴감만 들었어. 하지만 남자친구는 내 얘기를 그냥 듣기만 했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생일날에 조용히 그 팔찌를 준 거야. 그때 나는 사랑이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 사랑이라는 건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내가 원하는 걸 주는 거라는 걸.”
성격을 고치는 건 ‘관계의 재경험’
심리학에서 성격이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온 생존전략의 총합이다. 특히 정신분석가 설리번은 성격을 ‘자신에 대한 거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취하는 대인관계 전략의 집합’으로 봤다. 이에 따라 성격은 생존을 최대화하면서 거절과 고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발달한다. 즉 성격은 생존전략이자 고통회피전략이다. 관계에서 버림받고 단절되는 걸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착한 아이’ 캐릭터로 성장하며, 관계에서 지거나 틀리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전사적인 성격을 발달시킨다. 성격은 개인이 걸어온 삶의 역사적 산물이며 자존감은 그 역사의 무늬다. 성격이 한마디의 조언이나 충고로 고칠 수 없는 이유이며, 프로이트가 만 44살 이상의 내담자를 거절했다고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만 44살이 넘으면 성격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봤다.
인간은 ‘인지’를 통해 변하거나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는 게 공부를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는 게 운동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 물건을 돌려달라’는 말이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라는 걸 안다고 해서 그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경험이다. 공부를 해보니 뿌듯했던 경험이 공부를 하게 만들고, 운동을 했더니 상쾌했던 경험이 운동을 하게 만든다. 성격과 자존감은 오직 관계의 재경험을 통해서만 변화할 수 있다. 상담은 상담가와 내담자의 관계를 통해 거절을 해도 부탁을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실존주의 심리상담가인 어빈 얄롬은 “상담실에서 치유하는 것은 오직 관계”라고 말했다. ‘죽음학의 대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진정으로 인간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조건 없는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위로는 해결이 아니라 사랑
친구가 자신의 팔찌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사연을 주변에 얘기했을 때 그가 원했던 건 해결법이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건 위로였다. 오랜 시간 그렇게 착한 아이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생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알아주는 것이었다. 남자친구는 그에게 정확한 위로를 선물했다. 어떤 위로는 사랑 그 자체이며, 대부분의 경우 사랑은 최고의 위로다.
나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김이후의 정확한 위로는?

필자는 언론사에서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한 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먹고 삽니다. 현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누구라도 찾아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정확한 위로’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입니다. 인터넷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더 많은 ‘정확한 위로’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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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후의 정확한 위로 연재

https://www.hani.co.kr/arti/SERIES/3305

김이후 afterthislife@nat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