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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는 여자에게 곁눈질하며 그것이 수 없었다. 없이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이다. [헤드라인제주]는 길 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나누고 모두가 길 위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을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타이틀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다시 쓰는 올레길 편지

#와랑와랑 원정대의 해단식은 끝이 아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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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에 시작한 와랑와랑 원정대는 갑작스러운 돌발변수가 생기는 바람에 8월 26일을 끝으로 해단식을 가졌다. 본디 대장과 대원 한 명만 있는, 가끔씩 지인들 한두 명이 따라붙는 극소수 원정대였다. 말만 원정대였을 뿐, 올레길 전체 27개 코스를 완주할 원대한 포부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이 더운 여름, 와랑와랑한 햇살이 내리쬐는 제주에서복리상품
도 충분히 걸을 수 있음을 스스로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나름 여름답게 즐기는 방식도 개발해보자는 게 유일한 포부였다. 그러다보니 날씨와 컨디션, 오후 일정에 따라 코스의 절반만 걷고 끝내는 날도 있었고 걸은 시간보다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그늘에서 멍 때리면서 쉬는 시간이 더 많은 날도 있었다.
대장과 대원의 일정에 따라서 이삼일씩 건너뛴 날도삼환까뮤 주식
있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 원정대였던 것! 그나마 무더위가 가실 때쯤 접으려던 것을 아직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접게 된 것은 대장이 9월 1일부터 알바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대장하고 따져보니 우리가 걸은 코스는 모두 11개. 걷다가 몸을 담근 해수욕장은 열군데쯤이었다. 어느 바닷가가 가장 해수욕하기에, 혹은 스증권차트분석
노쿨링하기에 좋았는지 돌이켜보았다. 그러나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 바당은 이런 점이 좋았고, 저 바다는 저런 점이 좋았기에! 마치 어느 코스가 가장 아름다운가, 걷기 좋은가 물어올 때 대답하기 곤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이견없이 의견의 일치를 본 것도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여름 올레길도 어떻게 응용, 활용하면서 걷느외도주
냐에 따라서 충분히 걸을 만하다는 것! 이를테면 되도록 아침 일찍 출발하기, 걷다가 바당에 풍덩 빠져들기 등등.
두번째는 올 여름 올레길의 풍광이 지난 18년을 통틀어 역대급으로 아름다웠다는 것! 무슨 까닭인지 미세먼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대신, 하늘과 바다는 유난히 푸르렀고 구름은 날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하면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는 와랑와랑 올레 만세를 외치면서 9코스 대평포구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멈췄다.
​내년 와랑와랑 원정대는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더 멋지고 즐겁게 해내리라 다짐하면서!

#선배님도 올레길? 너도 걸엄시냐?#







와랑와랑 올레를 하는 내내 어린 시절 동네 후배이자 최고참 올레 안내소 근무자인 순심이가 아카자봉 함께 걷기에도 한 번 와달라고 졸라댔다.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이제 원정대도 접은 이상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명분이 없어졌다.
8월 28일 9시 30분 출발 시각에 아슬아슬하게 12코스 시작점인 무릉외갓집에 도착했다. 벌써 참가자들이 다 와 있었다. 오늘의 리더는 15코스 안내소의 김순오와 18코스 안내소의 강순심! 참가자는 서울, 전주, 부산, 제주 등지에서 온 올레꾼 7명. 오늘의 길동무들이다.
길을 떠나기에 앞서 무릉외갓집ㅡ무릉초등학교가 폐교된 뒤에 무릉생태학교이자 여행자숙소가 되었다가 이제는 마을 사회적기업인 무릉외갓집 판매장 겸 실습장으로 변모했다ㅡ이 이 학교 공간을 참 예쁘고 정갈하게 가꾸고 있음을 확인하고 저으기 기뻤다. 마당에 핀 억새꽃, 반질반질한 교실 복도,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장실, 절로 손길이 갈 만큼 정갈하게 전시된 갖가지 마을 특산품들. 이 폐교 공간과 맺어온 세월, 그간 스쳐간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앗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두번쯤은 본 듯한 얼굴도 있다. 그중 한 장년 남성이 내 곁에 바싹 붙어서 자기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첫 마디만 들어도 척 짐작이 간다.
"제주도 출신이지예? 어디우꽈?" 내가 물었다.
본가는 한림읍 귀덕이지만, 여덟살 때 제주시 성안으로 이사해 서안에서 자랐단다. 제주고등학교(구 제주 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 출신으로 당시 도내 교련대회에서 연대장도 지냈단다.
어라, 교련이 있었다면 연식이 제법 된다는 얘기다. 알고 보니 나보다 겨우 한 살 적은 58년 개띠란다. 제주 전문대 토목학과를 졸업하고 졸업과 동시에 공기업에 취직했고, 30년 가까운 세월 온갖 술접대를 다 도맡아 치러냈단다. 골프에서 홀인원보다 더 어렵다는 알바트로스 기록도 세웠다니, 골프 접대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언제부터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나요?" 내 주특기가 슬며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2024년 10월 23일이 처음 올레길을 걸은 날이란다.
그러면 그렇지. 사실 제주 토박이일수록 더 올레길을 안 걷고, 올레에 무심하다. 주말이면 골프 치느라 올레길 걸을 시간을 낼 수 없었겠지!

올레길 생긴 지 17년 되는 해에 뒤늦게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걸까? 뜻밖의 시시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년퇴직 이후 부인에게 석 달 휴가를 얻어 제주 여기저기 핫 스팟을 차량으로 돌아다니던 중, 시흥리 근처에서 갑자기 화장실이 급했더란다. 마침 근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니 그 맞은 편에 올레 1코스 시작점이라는 표식이 눈에 들어왔단다. 들어보기는 한 터라 내친 김에 걸어보자고 시작했는데 첫 오름인 말미오름에서 지치고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더란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다음날 다시 와서 1코스를 걸었고, 그 다음날에는 2코스를 걸었더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게 중독의 시작이었단다.







본디 자신은 저녁 7시 술시에 마시기 시작해 새벽 2시까지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면 해장술을 또 마시는 1일 2회, 365일 중 360일은 술을 마시는 애주가였단다. 그러다 보니 처음 걸을 당시 몸무게는 74킬로그램. 허리 협착증을 앓고 있어서 좋아하던 한라산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허나 올레길 중독에 빠져들면서, 몸도 서서히 달라져갔단다. 7번 완주를 끝낸 그의 현재 몸무게는 66킬로그램. 얼마 전에는 한라산에서 하산길 내내 달려서 내려왔단다.​
그는 평생 농업 전문가로 살아온지라 올레길을 걸을 때면 육지서 온 도시 출신들에게 이런저런 제주의 식물, 작물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게 너무 기쁘단다. 하지만 그에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물어볼 때만 설명해주고, 가급적 짧게 설명할 것! 안 그러면 꼰대소리 듣기 십상이라고!
난 격하게 찬성했다. 아주 잘하고 계시다고! 번아웃 상태에서 멍 때리면서 자연에서 위로받고 싶은 이들에게 원치 않는 설명, 과한 설명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모름지기 과유불급, 역지사지가 최고다.
틈만 나면, 죽자사자 올레길을 찾는 그에게 주위 지인들이 가끔 묻는단다. "대체 올레길이 뭐가 그추룩 좋은가" 라고. 그럴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단다. "여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이 빠져들지 않았냐고. 올레도 바로 그렇다고!"
# 6번 완주할 때까지도 늘 혼자만 걸었수다#
그런 양방수 씨가 뒤를 돌아보면서 한 남자를 가리킨다. "저 친구가 내 중고교 1년 후배우다. 겅헌디 올레길에선 내 스승입주!"
그가 가리킨 인물은 나도 예전에 센터에서 인사를 나눈 적 있는 김병국 씨. 59년생 토박이다. 내친 김에 그의 사연도 들어보았다. 올레 스승이라고 하지만, 그의 구력도 그닥 길지는 않다. 원조, 찐 올레꾼들에 견주자면!
그가 처음 올레길에 입문한 날은 2024년 4월 16일. 선배인 양씨보다 반 년 정도 앞선 셈.
화장실을 이용하려다가 올레길에 접어든 선배와 달리 후배 김씨는 절박한 심정으로 올레에 입문한 경우였다.
"삼년 전쯤 몸무게가 갑자기 80킬로 대로 불어났는데, 혈압을 재보니 165까지 나왔어요. 심한 두통에 어깨 결림에 목디스크에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죠. 그러다보니 심한 우울증이 찾아와서 사람들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살았어요."
올레길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거라도 함 걸어보자 싶었다.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길가의 풀과 나무와 대화하고, 특히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거르면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몸의 상태는 점점 나아졌고, 살은 빠졌고, 목도 절로 돌아갔다.
"풍경을 보느라고 자꾸 고개를 돌리다보니 언젠가부터 목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더라고요."
​하지만 마음이 열리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6번을 내리 완주하는 동안 그는 오로지 혼자 길을 나섰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더란다.
그러다가 조금씩 마음 문을 열고 안내소에 들러 인사도 나누기 시작할 무렵! 15코스 안내소 문을 누군가 열고 들어오더란다.
"아이고 여기 어떤 일이꽈? 형님도 올레길 걸엄수과?"
"아니, 병국이 너도 올레길 걸엄시냐?"

그렇게 간만에 뜻밖의 장소에서 해후한 두 중고교 선후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올레길을 걸었고 걷고 걸을 예정이다. 육지에서, 외국에서 오는 초보 올레꾼들에게 든든한 프리랜서 자봉 역할을 기꺼이 떠안으면서!




두 제주 토박이 소나이들과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는 그 날은 한여름 중에도 가장 기온이 높은 날 중 하루였고, 하필 그늘이라곤 1도 없는 도원리 빈 들판과 바람 한 점 없는 도원리 바당이 내내 펼쳐졌다.
허나 그날 나는 가슴이 뻥 뚫리고 속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제 이 고집불통, 어지간해서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려 들지 않는 제주 아주방들이 걷기 시작했으니, 그리고 그들이 제주 경관의 보물적인 가치와 그 영험한 치유의 능력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또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제주올레 길을 걸은 외국인들, 육지 사람들이 영어로, 표준어로 온갖 감탄사를 연발할 때마다 나는 내심 뿌듯하면서도 한 켠으로는 늘 불안하고 아쉬웠다. 이걸 제주인들이 걸어야 하는데, 알아야 하는데, 인정해야 하는데, 길이길이 보존하고 지켜내야 하는데 싶어서!
이번 와랑와랑 올레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제주 토박이 두 사나이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간증은 내게 '제주인들이 이 길을 지키겠구나' 하는 확신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