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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의 본사 따라주었다. 시간 역시 울지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미술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 모아 둔 내용을 바탕으로 유럽 7개국 미술관의 대표 작품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김상래 기자]
병오년(丙午年)의 붉은 태양처럼 힘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폴 기욤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조종사'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시대를 앞서간 한 수집가의 심미안이 틔운 싹이 어떻게 르누아르라는 거장의 따뜻한 선율로 피어나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파리 오랑주리 무료릴게임 미술관의 핵심인 '발터-기욤 컬렉션'을 통해, 무명 화가들의 든든한 '선장'이 되어주었던 폴 기욤의 혜안과,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미소로 기억되는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속에 숨겨진 다정한 변주곡들을 차례로 만나보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예술로 바꾸어 놓았던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올 한 해 우리가 마주할 평범한 순간들도 얼마나 손오공릴게임예시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을지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인상주의 작품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캔버스 너머로 건네는 화가들의 다정한 안부와, 그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한 수집가의 혜안이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인상주의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을 통해, 우리가 교과서나 피아노 학원 벽면에서 숱하게 보았던 바로 그 그림, 르누아르의<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한국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나먼 파리의 온기가 지금 우리 곁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셈이지요.
모딜리아니가 '조종사'라 불렀던 남자,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예술의 항로를 바꾼 폴 기욤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우리는 프랑스 근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미술상, 폴 기욤(Paul Guillaume)의 흔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20세기 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아프리카 조각의 원시적인 생명력과 비서구권 예술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이를 현대 황금성게임다운로드 미술의 중심부로 끌어들인 선구자였습니다.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는 그동안 주류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저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이 바로 폴 기욤(Paul Guillaume)입니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기욤의 초상 (Novo Pilota)〉 모딜리아니가 그린 자신의 후원자이자 미술상 폴 기욤의 초상
ⓒ Musee de l'Orangerie
기욤은 화가의 재능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남다른 심미안을 가졌습니다. 그가 주목한 명단은 그야말로 현대 미술의 '올스타'라 할 수 있죠.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세잔... 당시에는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의 가능성을 믿고 과감히 투자하며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모딜리아니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못해 뜨거웠습니다. 오랑주리에 전시된 <폴 기욤의 초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끔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 청년이 비스듬히 앉아 우리를 응시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우면서도 지적인 기운이 풍기는 이 얼굴 위로, 모딜리아니는 큼직한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상단에는 이름 PAUL GUILLAUME을, 왼쪽 아래에는 이탈리아어로 NOVO PILOTA(새로운 조종사)라고 말이죠.
예술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모딜리아니에게 기욤은 미술상 이상의, 새로운 항로를 열어준 '선장'이자 '안내자'였습니다. 기욤의 후원 덕분에 모딜리아니는 비로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품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지요.
먼저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버전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의 완성작과 비교하면 훨씬 자유로운 붓 터치가 살아있는 스케치 같은 느낌을 줍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상주의 작품 중 하나인 르누아르의 그림입니다.
ⓒ Musee de l'Orangerie
금발의 소녀는 허리에 파란 리본을 두른 흰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악보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건반을 누르며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하죠. 그 옆에서 갈색 머리의 소녀가 주홍빛 드레스를 입고 언니의 어깨너머로 악보를 살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배경입니다. 커튼인지 벽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배경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채들이 거칠고 자유롭게 칠해져 있습니다. 마치 화가가 어떤 색으로 마무리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듯하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두 소녀처럼, 그림 역시 어딘가 미완성의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르누아르와 각별했던 예술 후원자 앙리 르롤(Henri Lerolle)의 딸들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금발의 소녀가 언니 이본, 곁에서 지켜보는 소녀가 동생 크리스틴이지요.
르누아르는 화가 앞에서 굳어있는 모델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의 한복판에 있는 자매의 공기를 포착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저희 자매처럼 화음을 맞추다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틀린 음표를 보며 수다를 떠는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르누아르가 가진 마법 같은 힘입니다. 그는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가정의 일상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특별한 예술적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태어난 색채들은 마치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는 선율처럼 우리 마음속에 부드럽게 스며듭니다.
드라마처럼 이어진 예고편과 본편, 르누아르가 '같은 장면'을 고집한 이유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 두 미술관을 모두 다녀온 이들이라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두 작품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오르세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공간의 공기부터가 다릅니다. 오랑주리 버전에서 몽글몽글한 색채로만 남아있던 배경은 이제 구체적이고 아늑한 '살롱'의 풍경으로 탈바꿈했습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오랑주리 미술관의 스케치 버전과 대비되는 보다 정교한 완성작입니다.
ⓒ Musee d'Orsay
스케치에서는 볼 수 없던 푸른 빛과 초록 빛의 커튼이 웅장하게 드리워졌고, 그 사이로 우아한 소파와 액자가 슬쩍 고개를 내밉니다. 피아노의 매끄러운 나뭇결은 만져질 듯 생생하고, 그 위에는 화사한 꽃이 꽂힌 화병과 정갈하게 놓인 책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밤이 깊어지면 불을 밝혔을 섬세한 촛대까지 그려 넣어, 집안의 온기를 시각적으로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자매의 차림새입니다. 수수한 도트 무늬를 벗어던진 언니 이본의 흰 드레스와 동생 크리스틴의 옷은 이제 한결 매끄럽고 우아한 선을 그립니다. 어린아이의 귀여움보다는 숙녀의 기품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캔버스의 폭 또한 넓어지면서 전체적인 구도는 훨씬 안정적이고 당당해졌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아름다운 연주가 파리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지요. 미국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또 다른 버전이 존재합니다. 오랑주리의 생동감과 오르세의 화려함 그 사이 어디쯤, 조금 더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작품이죠.
르누아르는 왜 이토록 집요하게 같은 장면을 다듬고 또 그렸을까요? 아마도 그는 가장 완벽한 순간의 '행복'을 붙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붓 터치 하나, 소품 하나를 더할 때마다 자매의 웃음소리는 더욱 선명해지고, 그들이 나누는 음악의 농도는 깊어갔을 테니까요.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이 풍경은 화가가 수없이 고뇌하고 덧칠하며 완성해낸,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집착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그림 속에 숨겨진 드가의 그림, 일상이 예술이 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이제 오랑주리의 또 다른 보물, <피아노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작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앞서 본 소녀들이 솜털 보송보송한 유년의 상징이었다면, 이 그림 속 자매는 어느덧 세월의 흐름을 입어 제법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깁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언니 이본의 손놀림은 한층 능숙해졌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동생 크리스틴은 여전히 언니의 곁을 지키며 악보를 짚어줍니다. 피아노 실력이 늘어난 만큼이나 그들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여유가 흐릅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르누아르가 같은 주제로 여러 번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이 배경에 걸려 있습니다.
ⓒ Musee de l'Orangerie
재미있는 것은 자매의 뒤편, 배경으로 그려진 벽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시겠어요? 왼편에는 힘차게 달리는 말이, 오른편에는 우아한 발레리나의 다리가 보입니다. 바로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들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들은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를 자매의 배경으로 배치함으로써 이 가정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한 공간에서 공명하는, 그야말로 '예술적인 가정'의 완성을 그려낸 것이죠.
그렇다면 르누아르는 왜 이토록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그렸을까요? 아마도 그는 같은 풍경이라 할지라도 감상하는 이의 마음과 시선에 따라 매 순간 다른 감동이 전해지길 바랐을 겁니다. 모네가 빛의 변화를 쫓아 수련 연작을 그렸다면, 르누아르는 사람의 미소와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찰나를 영원히 기록하고 싶었던 겁니다.
르누아르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예술이란 결코 거창한 무대 위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거실의 한구석, 자매가 나누는 사소한 수다, 서툴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속에서도 얼마든지 위대한 예술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독 르누아르의 그림을 곁에 두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 따스한 색채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해 아침을 깨우는 이 따뜻한 선율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잔잔하게 머물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김상래 기자]
병오년(丙午年)의 붉은 태양처럼 힘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폴 기욤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조종사'였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 나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시대를 앞서간 한 수집가의 심미안이 틔운 싹이 어떻게 르누아르라는 거장의 따뜻한 선율로 피어나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파리 오랑주리 무료릴게임 미술관의 핵심인 '발터-기욤 컬렉션'을 통해, 무명 화가들의 든든한 '선장'이 되어주었던 폴 기욤의 혜안과,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미소로 기억되는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속에 숨겨진 다정한 변주곡들을 차례로 만나보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예술로 바꾸어 놓았던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올 한 해 우리가 마주할 평범한 순간들도 얼마나 손오공릴게임예시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을지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인상주의 작품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캔버스 너머로 건네는 화가들의 다정한 안부와, 그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한 수집가의 혜안이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인상주의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을 통해, 우리가 교과서나 피아노 학원 벽면에서 숱하게 보았던 바로 그 그림, 르누아르의<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한국 관람객들을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나먼 파리의 온기가 지금 우리 곁에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셈이지요.
모딜리아니가 '조종사'라 불렀던 남자,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예술의 항로를 바꾼 폴 기욤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우리는 프랑스 근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미술상, 폴 기욤(Paul Guillaume)의 흔적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20세기 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아프리카 조각의 원시적인 생명력과 비서구권 예술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이를 현대 황금성게임다운로드 미술의 중심부로 끌어들인 선구자였습니다.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는 그동안 주류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저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이 바로 폴 기욤(Paul Guillaume)입니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기욤의 초상 (Novo Pilota)〉 모딜리아니가 그린 자신의 후원자이자 미술상 폴 기욤의 초상
ⓒ Musee de l'Orangerie
기욤은 화가의 재능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남다른 심미안을 가졌습니다. 그가 주목한 명단은 그야말로 현대 미술의 '올스타'라 할 수 있죠.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세잔... 당시에는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의 가능성을 믿고 과감히 투자하며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모딜리아니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못해 뜨거웠습니다. 오랑주리에 전시된 <폴 기욤의 초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말끔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 청년이 비스듬히 앉아 우리를 응시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우면서도 지적인 기운이 풍기는 이 얼굴 위로, 모딜리아니는 큼직한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상단에는 이름 PAUL GUILLAUME을, 왼쪽 아래에는 이탈리아어로 NOVO PILOTA(새로운 조종사)라고 말이죠.
예술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모딜리아니에게 기욤은 미술상 이상의, 새로운 항로를 열어준 '선장'이자 '안내자'였습니다. 기욤의 후원 덕분에 모딜리아니는 비로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작품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지요.
먼저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버전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의 완성작과 비교하면 훨씬 자유로운 붓 터치가 살아있는 스케치 같은 느낌을 줍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상주의 작품 중 하나인 르누아르의 그림입니다.
ⓒ Musee de l'Orangerie
금발의 소녀는 허리에 파란 리본을 두른 흰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악보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건반을 누르며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하죠. 그 옆에서 갈색 머리의 소녀가 주홍빛 드레스를 입고 언니의 어깨너머로 악보를 살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배경입니다. 커튼인지 벽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배경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채들이 거칠고 자유롭게 칠해져 있습니다. 마치 화가가 어떤 색으로 마무리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그대로 멈춰있는 듯하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두 소녀처럼, 그림 역시 어딘가 미완성의 풋풋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르누아르와 각별했던 예술 후원자 앙리 르롤(Henri Lerolle)의 딸들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금발의 소녀가 언니 이본, 곁에서 지켜보는 소녀가 동생 크리스틴이지요.
르누아르는 화가 앞에서 굳어있는 모델의 모습이 아니라, 일상의 한복판에 있는 자매의 공기를 포착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저희 자매처럼 화음을 맞추다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틀린 음표를 보며 수다를 떠는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르누아르가 가진 마법 같은 힘입니다. 그는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가정의 일상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특별한 예술적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태어난 색채들은 마치 피아노 건반 위를 흐르는 선율처럼 우리 마음속에 부드럽게 스며듭니다.
드라마처럼 이어진 예고편과 본편, 르누아르가 '같은 장면'을 고집한 이유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 두 미술관을 모두 다녀온 이들이라면,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두 작품의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오르세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공간의 공기부터가 다릅니다. 오랑주리 버전에서 몽글몽글한 색채로만 남아있던 배경은 이제 구체적이고 아늑한 '살롱'의 풍경으로 탈바꿈했습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오랑주리 미술관의 스케치 버전과 대비되는 보다 정교한 완성작입니다.
ⓒ Musee d'Orsay
스케치에서는 볼 수 없던 푸른 빛과 초록 빛의 커튼이 웅장하게 드리워졌고, 그 사이로 우아한 소파와 액자가 슬쩍 고개를 내밉니다. 피아노의 매끄러운 나뭇결은 만져질 듯 생생하고, 그 위에는 화사한 꽃이 꽂힌 화병과 정갈하게 놓인 책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밤이 깊어지면 불을 밝혔을 섬세한 촛대까지 그려 넣어, 집안의 온기를 시각적으로 완성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자매의 차림새입니다. 수수한 도트 무늬를 벗어던진 언니 이본의 흰 드레스와 동생 크리스틴의 옷은 이제 한결 매끄럽고 우아한 선을 그립니다. 어린아이의 귀여움보다는 숙녀의 기품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캔버스의 폭 또한 넓어지면서 전체적인 구도는 훨씬 안정적이고 당당해졌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아름다운 연주가 파리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지요. 미국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또 다른 버전이 존재합니다. 오랑주리의 생동감과 오르세의 화려함 그 사이 어디쯤, 조금 더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작품이죠.
르누아르는 왜 이토록 집요하게 같은 장면을 다듬고 또 그렸을까요? 아마도 그는 가장 완벽한 순간의 '행복'을 붙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붓 터치 하나, 소품 하나를 더할 때마다 자매의 웃음소리는 더욱 선명해지고, 그들이 나누는 음악의 농도는 깊어갔을 테니까요.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이 풍경은 화가가 수없이 고뇌하고 덧칠하며 완성해낸,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집착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그림 속에 숨겨진 드가의 그림, 일상이 예술이 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이제 오랑주리의 또 다른 보물, <피아노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작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앞서 본 소녀들이 솜털 보송보송한 유년의 상징이었다면, 이 그림 속 자매는 어느덧 세월의 흐름을 입어 제법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깁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언니 이본의 손놀림은 한층 능숙해졌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동생 크리스틴은 여전히 언니의 곁을 지키며 악보를 짚어줍니다. 피아노 실력이 늘어난 만큼이나 그들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여유가 흐릅니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 르롤> 르누아르가 같은 주제로 여러 번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이 배경에 걸려 있습니다.
ⓒ Musee de l'Orangerie
재미있는 것은 자매의 뒤편, 배경으로 그려진 벽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시겠어요? 왼편에는 힘차게 달리는 말이, 오른편에는 우아한 발레리나의 다리가 보입니다. 바로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들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들은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를 자매의 배경으로 배치함으로써 이 가정이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고 후원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 한 공간에서 공명하는, 그야말로 '예술적인 가정'의 완성을 그려낸 것이죠.
그렇다면 르누아르는 왜 이토록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그렸을까요? 아마도 그는 같은 풍경이라 할지라도 감상하는 이의 마음과 시선에 따라 매 순간 다른 감동이 전해지길 바랐을 겁니다. 모네가 빛의 변화를 쫓아 수련 연작을 그렸다면, 르누아르는 사람의 미소와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찰나를 영원히 기록하고 싶었던 겁니다.
르누아르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예술이란 결코 거창한 무대 위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거실의 한구석, 자매가 나누는 사소한 수다, 서툴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속에서도 얼마든지 위대한 예술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유독 르누아르의 그림을 곁에 두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 따스한 색채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해 아침을 깨우는 이 따뜻한 선율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잔잔하게 머물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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